3일 후인 지난 8월 13일 수요일 저녁 7시. 평소 같으면 ‘수요예배’가 있을 시간이었지만 ‘찬송가’ 대신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교인들과 용역업체 직원, 전경 등이 한데 얽혀 심각한 충돌사태가 벌어진 것. 교회에 들어가겠다는 신도들과 전경, 용역업체 직원들의 대치상태가 1시간도 넘게 이어지다 결국 폭력사태로 번졌다.
신도 김 아무개 씨(45)는 이 과정에서 얼굴을 맞아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옮겨졌다.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은 김 씨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쇠파이프를 마구 휘둘러 얼굴을 맞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씨처럼 이날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신도는 여섯 명이나 된다. 반대편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십수 명에 달했다.
교회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신도들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원로목사인 김창인 목사와 담임목사인 이성곤 목사의 갈등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이 교회의 오랜 신도라는 A 씨는 “4년여 전 김창인 목사가 내부에 따르는 신도가 많은 이성곤 목사를 두고 외부에서 유 아무개 목사를 영입해 교회 담임목사로 임명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교인들은 지지하는 목사를 중심으로 나뉘어 치열한 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것.
이 같은 내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무렵부터 광성교회의 교세도 움츠러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분쟁이 있기 전에 광성교회에서 대외적으로 밝힌 교인의 수는 2만 5000여 명. 하지만 두 목사의 갈등이 빚어진 후엔 1만 명도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교세의 몰락에도 목사들의 다툼은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목사 간의 교권 싸움은 재산권 분쟁으로까지 이어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당초 교회에서 쫓겨난 김 목사는 2005년 건물명도와 공탁금출급청구권 등 재산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고 이 목사도 “교회는 교인의 것이고 교인이 내세운 대표자인 나에게 모든 권리가 있다”라며 팽팽히 맞섰다.
3년여간 이어진 기나긴 법정공방이 끝난 것은 지난 7월 31일. 법원은 결국 “김창인 목사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 따라 임명된 적법한 대표자”라며 김 목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 목사가 법원의 판결에도 교회를 비우지 않자 결국 법원에서 ‘강제명도’ 집행을 결정했던 것.
지난 8월 13일 벌어진 폭력사태는 바로 김 목사 측에서 법원 집행관을 앞세워 ‘강제명도명령’을 집행하던 중 생긴 일이다. 교회를 점거하고 있던 이 목사 측 신도들과 김 목사 측이 앞세운 용역업체 직원, 전·의경 간의 충돌이 빚어졌던 것. 하지만 당일의 폭행사태는 양측 교인들 모두에게 큰 아픔을 남겼다.
목사들의 다툼을 보다 못해 아예 교회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한 신도는 “교회는 신도들에 의해 세워진 공공의 재산인데 이것을 두고 목사끼리 싸움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두 목사가 하느님의 종이 맞다면 이제라도 함께 사퇴해 교회를 교인들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신도들의 항변엔 아랑곳 않고 교회 출입을 저지하는 김 목사 측과 교회를 다시 차지하겠다는 이 목사 측 간의 몸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지난 17일에는 살수차까지 등장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