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달수 바둑학회 부회장. | ||
중국이 바둑 실력 대결에서 한국을 따라잡는 일로 만족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세계 바둑계의 주도권 장악을 외칠 것이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바둑의 체육 전환을 기치로 발족한 지 2년쯤 되는 대한바둑협회가 ‘바둑 종주국화 사업’이란 것을 시작했다는 것은, ‘종주국화’라는 용어의 적절성 여부는 숙고할 여지는 있다하더라도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
한국 바둑의 세계화는 수십 년간 우리 바둑계 공동의 화두다. 그걸 이제라도 실천하려고 하니 다행이다. 누구나 말하듯 세계화는 바둑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둑은 실로 폭넓은 게임이다. 바둑 자체를 자연과학적 이론으로 연구·정립하는 것이 하나의 축이라면 바둑의 역사·문화적 함의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또 하나의 축이다. 바둑의 세계화나 주도권을 위해서는 후자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달수 씨(59)는 주목할 만한 사람이다. 그는 1970~80년대 대학 바둑의 강자였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개인 사업가로 변신해 성공한 케이스인데, 바둑을 못 잊어 2002년 쉰이 넘은 나이에 명지대 바둑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바둑학 석사가 되었고, 지금은 명함에 한국 바둑학회 부회장, 대한바둑협회 국제분과위원장의 직함을 병기하고 있다.
▲ 선조들의 바둑 두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왼쪽)와 1300년 전 바둑 판. | ||
왜 그런 오류가 오랜 세월 세인의 공감을 얻으며 통설로 굳어졌을까. 요컨대 ‘기(棋)’ 자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다는 것. 기(棋)는 ‘바둑 기’지만, 그래서 오늘날은 모두들 ‘기’ 하면 ‘바둑’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옛 문헌에 나오는 ‘기’는 바둑에 대한 특정한 지칭이 아니라 그 비슷한 류의 놀이에 대한 통칭이었다는 것. 바둑의 원형이라고 알려져 있는 ‘고누’도 기였고 ‘윷놀이’도 기였다는 것. 흔히 ‘말’이라고 부르는 어떤 모양의 기물을 사용하는(움직이는) 놀이는 모두 기였다는 것이다. 장기나 체스의 말, 윷놀이의 말도 마찬가지.
그가 바둑의 기원에 천착한 것이 이제 햇수로 9년째. 한·중·일의 문헌을 찾고 뒤지고 구입하는 데 들어간 돈이 1억 원이 넘는다. 도서만 3000권이 넘는다. 사전류까지 합하면 5000권쯤 된다. 돈도 돈이지만 평균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보니 몸도 망가졌다. 본업, 생업이 저절로 굴러가 준 것이 고맙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바둑의 기원에 대해 세 편의 논문을 연달아 발표했다. 바둑의 기원에 대해선 앞으로 두 편이 더 나온다. 여기까지가 A4용지로 약 100매 분량. 그리고 바둑의 기원이 그러면 뭐냐 하는 것에 대한 추론 성격의 논문을 세 편쯤 준비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국내외에서 토론·반론의 공방을 펼칠 상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 당연하다. 그가 연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미리 알았던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튼 그의 논문들이 다 묶여서 책으로 나오는 날이 기다려진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