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성 전 국세청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국세청은 전군표 전 청장이 뇌물수수로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이 전 청장까지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오르자 적지않게 당혹해하는 눈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검찰의 수사가 일선 세무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이 전 청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D 유흥업소 마담이 실명까지 거론해가며 자신이 상납해온 일선 세무공무원들의 명단을 진술했다고 한다.
만약 검찰이 이 마담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한다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세정 당국의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다는 데 국세청의 고민이 있다.
검찰은 지난달 11일 이 전 청장이 서울 강남의 D 유흥업소 여주인의 계좌를 통해 비자금 중 일부를 관리한 정황을 포착하고 이 업소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의 비자금이 국세청 재직 시절 직무와 관련된 뇌물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 자금의 출처를 확인하던 중 D 업소의 주인이 이 전 청장의 차명계좌에 수억 원을 송금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수사관 10여 명을 D 업소에 보내 회계장부 등을 압수했으며, 제3의 인물이 이 전 청장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D 업소 주인의 계좌를 이용한 것이 아닌지를 조사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후 D 업소의 마담인 서 아무개 씨를 소환조사했다. 서 씨는 이 전 청장과도 적지 않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서 씨는 검찰 조사에서 이 전 청장의 비자금 의혹뿐만 아니라 일선 세무서 공무원들에게도 세무조사 무마를 조건으로 금품로비를 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서 씨는 검찰에서 “이주성 전 청장 재임시절이었던 지난 2005년 일선 세무서에서 세무조사를 받을 당시 국세청 고위급 출신 K 씨가 일하는 G 회계법인을 내세워 세무조사를 받았으며 K 씨를 통해 세무조사를 축소 혹은 무마하기 위해 돈을 상납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 씨는 또한 “K 씨를 통해 5급 이상 직원에게는 정기적으로 한 사람당 300만~500만 원씩을 상납했으며 6급 이하 직원들에게는 K 씨를 통해 2000만 원을 나눠 지급하도록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지난 2005년 이 전 청장이 재임하던 시절 국세청은 고소득 자영업자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33개의 대형유흥업소도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된 바 있다.
당시 업소에 D 업소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D 업소는 강남에서도 일반인은 손님으로 받지 않을 정도로 손꼽히는 고급유흥업소로 당시 세무조사에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검찰이 입수한 D 업소의 회계 장부 항목 중 ‘세’라고 적혀 있는 부분이 상당수 발견됐는데 이것이 국세청 관계자들을 접대한 항목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일각에서는 이 전 청장이 차명계좌를 통해 확보한 비자금으로 이 형제회 멤버들을 관리한 것이 아니냐는 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이 전 청장이 형제회와 연관이 깊은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전 청장은 김흥주 씨로부터 강남 고급술집에서 접대를 받다가 국무총리실 암행감찰반에 걸리면서 낭패를 본 적이 있다. 당시 강남 고급술집이 이번에 차명계좌로 문제가 된 D 업소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김흥주 씨를 중간에 두고 형제회와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이 이 부분을 수사할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이 전 청장과 형제회의 연관 여부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열어두고 있기는 하나 수사계획은 아직 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 전 청장이 실제 차명계좌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면 이것을 어디에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용처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형제회로까지 그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여러 방면에 걸쳐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검찰의 행보는 상당히 신중한 모습이다.
차명계좌로 의심되는 부분은 여럿 있지만 실제 계좌추적을 통해 확보된 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계좌이체나 송금기록 등 외부에서 돈이 들어온 흔적이 없는 데다 대부분 현금으로 입금이 돼 자금원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차명계좌 명의인 가운데 대기업 임원 3~4명이 포함돼 있어 ‘뇌물 보관용’ 계좌일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이들은 “고향후배여서 명의만 빌려준 것” “이 전 청장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최근 대기업 임원과 여비서 명의 등으로 개설된 차명계좌에 보관돼 있던 거액의 돈이 이 전 청장의 부동산 매매 대금으로 사용된 정황을 추가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이 2006년 6월 국세청장 퇴임 이후 오피스텔 등 부동산 재산이 크게 늘어난 사실을 확인하고, 이 부동산의 매입 대금 출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청장의 차명계좌임은 분명해 보이는데 워낙 치밀하게 관리돼 누가 어떤 목적으로 돈을 보냈는지 규명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단 이 전 청장에 대한 수사는 추석 이후까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 전 청장에 대한 기소는 분명하지만 구속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전 청장에 대한 수사에는 국세청 인사들의 눈과 귀가 쏠려있다. 이 전 청장이 받고 있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뇌물수수로 수감 중인 전군표 전 청장건과 더불어 국세청의 명예를 또 한번 실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