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것은 출입금지를 당하는 이들 중에 상당수가 도박중독자이거나 가진 돈을 모두 잃어 평정심을 잃게 될 때 돌출행동을 한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출입금지를 당한 사람들의 사유를 통해 강원랜드 객장 내에서 일어나는 천태만상을 엿보았다.
강원랜드에서 출입을 금지당하는 사람은 매년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한나라당 안형환 의원이 강원랜드 측에서 받은 ‘최근 3년간 강원랜드 출입금지자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3년간 출입금지자 수는 총 1026명으로 2006년 84명에서 지난해 169명, 올해 9월 현재 773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연말까지 늘어날 숫자를 감안하면 2년 만에 무려 10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1026명의 사연 중 가장 흔한 것은 신분증 위조나 사채업 등으로 출입금지를 당하는 경우다. 강원랜드 출입과 관련된 신분증 위조·변조·대여 등이 전체의 40.44%인 415명에 해당한다.
신분증 위조는 말 그대로 출입금지를 당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위조해 게임장에 입장하는 것이다. 몇 해 전에는 현직 경찰서장이 신분증을 위조해 출입하다 적발돼 옷을 벗은 일도 있다.
사채알선 행위도 주요 출입금지 사유 중 하나다. 강원랜드 내에 있는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인출하다 보면 ‘돈이 필요하지 않냐’며 접근하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런 사채업은 객장 내에서도 은밀히 일어난다. 돈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고객에게 다가가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부분 사채업자들이거나 사채업자들이 심어놓은 ‘바람잡이’들이다. 이곳의 일부 악덕 사채업자들은 하루 1%, 주 5%, 연 240%에 달하는 엄청난 이자를 챙겨온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객장 내 절도행위나 구걸행위도 출입금지를 당하게 되는 주된 원인이다. 위조칩스를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도 다반사.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 말고도 색다른 사연으로 출입을 금지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막기 위해 119 구급차가 출동하는 것은 비단 한강다리 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강원랜드에서도 1년에 한두 번은 자살 소동이 벌어진다. 돈 잃고 재산까지 잃은 사람들이 최후에 벌이는 일이다.
강원도 강릉에 사는 C 씨는 지난해 7월 강원랜드에서 돈을 몽땅 잃게 되자 가족을 볼 면목이 없어 자살을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문자메시지로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보냈다. 메시지를 받은 가족들은 119에 신고했고 강원랜드 인근 119 구급대에서는 위치추적을 통해 C 씨가 있는 곳을 파악해 긴급출동, 불상사를 막았다.
‘롤링업자’들도 마찬가지. ‘롤링업자’란 강원랜드의 우수고객을 다른 외국 카지노로 빼돌리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강원랜드에서 많은 돈을 베팅하는 고객들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마카오나 라스베이거스 등 해외 유명카지노로 데리고 간다. 강원랜드 측에서 보면 일종의 ‘고객 빼돌리기’인 셈. 이들도 영구적인 출입금지를 당하게 된다.
강원랜드에는 여직원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스토킹이나 성희롱 같은 범죄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지난해 7월 서울 강남에 사는 J 씨는 여자 직원의 명찰에 적혀있는 이름을 기억했다가 후에 싸이월드 등을 통해 연락처를 알아내 스토킹을 하기 시작했다.
여성 직원들만 스토킹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강원랜드 관계자의 귀띔이다. 그는 남녀를 불문하고 직원들이 심한 불쾌감을 느끼게 되면 스토킹을 가한 고객을 카지노 관리팀이나 안전 관리팀에 고객 정보를 통보하고 ‘이유 있다’고 인정될 경우 바로 출입금지 조치를 한다고 했다. 여자 딜러들에게 언어나 스킨십을 통해 수치감을 주는 성희롱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얌체’ 게임업자들에게도 출입금지의 ‘철퇴’가 내려진다.
타 고객의 당첨금을 무단으로 수령하는 것은 약과다. 옆자리에 있는 칩스를 주인이 잠시 한눈 파는 틈을 이용해 슬쩍 자기 앞으로 갖다놓는 ‘꾼’들도 있다. 베팅시 워낙 주변이 번잡하다는 것을 노리는 것. 주인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눈 뜨고 코를 베인 셈이다. 실랑이가 벌어질 경우 설치된 CCTV를 통해 범인을 잡아낸다. 바카라 게임판에서 게이머들의 뒤에서 카드를 카운트하다가 적발돼 출입금지를 당하기도 한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B 씨는 자신을 ‘타짜’라고 속여 게임을 하다 3개월 출입정지를 당했다.
이외에도 돈을 잃고 흥분을 가라앉지 못해 객장 내 기물을 파손하는 행위도 적지 않다.
전체 출입금지자 명단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강원도 정선 출신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채업과 관련된 사람들이거나 신분증 대여를 하다가 적발된 사람들이다. 강원랜드가 지역경제를 떠받드는 주요 사업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애초의 취지와는 달리 지역주민들이 강원랜드의 주 수혜자가 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출입금지자 명단에서도 이 같은 그늘이 드러난다는 지적이다.
한편 강원랜드가 개장한 지난 2000년 이후 올 9월까지 금품수수와 폭행, 회사기금 횡령, 성희롱 등으로 징계받은 직원 수도 152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안 의원은 “신분증까지 위·변조하면서 요행과 한탕의 도취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출입제한 조치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예방조치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