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의 역사는 짧지 않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유통된 것이 대략 20년이 넘는다. 오래된 만큼 독자층도 두텁다. 정치인부터 기자까지 정보를 필요로 하는 계층은 누구나 찌라시의 독자라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독자가 때로는 생산자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여러 사람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찌라시의 출처를 찾기도 어렵고 그 현황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분명한 것은 적지 않은 수요가 있고 이 때문에 공급도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찌라시의 모든 것’을 집중취재했다.
“A 의원, 후원금으로 계보 관리” “○○그룹, 후계구도 변화” “검찰, ○○그룹 수사 속도 내는 배경.”
최근 몇 개의 찌라시에 실린 내용의 제목들이다. 찌라시에는 청와대 ‘인사’ 뒷배경이나 정치인과 관련된 각종 뒷얘기, 재벌 총수의 기업 후계 구도, 심지어는 최근의 문제가 된 연예인 스캔들까지 온갖 내용이 다 담긴다.
알려진 대로 최진실 씨 자살의 한 원인이 된 사채업 관련 루머도 ‘찌라시’를 통해 확산됐으며, 지난 1월 가수 나훈아 씨를 기자회견까지 자청하게 만들었던 ‘괴소문’도 수개월 전부터 찌라시에서 나돌았다. ‘삼성그룹 비자금설’이나 ‘이명박 후보의 BBK 연루설’ 같은 이슈도 공식 거론되기 전부터 찌라시를 통해 정보맨들에게 알려졌다.
이런 이슈들 중 일부는 결국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찌라시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황당한 내용들도 상당부분 실려있다. “모 기업의 총수는 이름만 회장일 뿐 실제로는 어머니가 뒤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한다”는 식의 기업 관련 루머나 “톱스타 아무개가 계약 동거 중이다”는 등의 연예인 관련 루머가 그런 것들이다.
물론 가끔 사실에 근거한 ‘특종’도 실린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같은 경우 사건 발생 4일 뒤에 한 찌라시에 실렸다.
하지만 정보지에 실린 각종 정보 중 실제로 사실과 딱 떨어지는 경우는 정보지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20~30% 수준에 불과하다. 프리미엄 찌라시도 50%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정보지 루머 중에는 흥미 차원에서 올린 연예인과 관련한 자극적인 내용도 있고, 기업 관련 소식 같은 경우 상대기업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악의적으로 흘린 거짓 정보도 종종 있다. 정보지의 폐해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찌라시에 대해 “악성 루머와 쓰레기 정보의 발원지”라거나 “출처도 없는 음성 정보”라는 평가는 이래서 나온다.
이런 폐해가 발생하다 보니 이른바 정보맨들끼리는 찌라시에도 등급을 매긴다. ‘어디에서 나오는 찌라시가 괜찮다더라’ 하는 식이다. 1~2년 전에는 모 기관에서 나오는 찌라시가 호평을 받았다. 고급정보가 많이 실려있다고 알려지면서 이것이 다른 찌라시보다 몇 배나 비싼 가격에 팔린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현재 시중에 도는 찌라시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간행물 등록을 하고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3~4개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간행물 등록이 된 만큼 확인되지 않은 루머는 거의 실리지 않는다. 한 언론사에서 나오는 정보지는 사실 여부까지 확인해 친절하게 ‘코멘트’까지 달아주기도 한다. 결국 각 언론에 보도됐거나 또는 지면관계상 보도되지 못한 기사 중에서 정보가 될 만한 것들을 요약해서 싣는 수준이다. 보통 한 번 발행하는데 A4 용지 20~30장 분량으로 1년 구독료는 300만~600만 원 수준이다.
다른 하나는 간행물로 등록하지 않은 채 사설정보업체에서 만드는 유가지다. 몇 년 전 경찰 단속에 걸렸던 사설정보지가 여기에 속한다. 당시는 전직 사정기관 직원들이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런 형태의 정보지에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이 많이 실린다.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맨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정보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찌라시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하나는 이른바 정보맨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정보가 메신저를 통해 오가며 찌라시로 진화하는 형태다. 특히 증권가 직원들끼리 메신저를 통해 주고받는데 종류와 분량이 다양하다. 루머도 있고 ‘팩트’도 있다. 루머는 가십거리로 ‘팩트’는 보고용으로 돌아다닌다. 하지만 메신저를 통해 도는 만큼 다른 데로 흘러나갈 가능성도 높다. 물론 돈이 오고가지는 않는다. ‘기브 앤 테이크’만 있을 뿐이다.
그럼 이런 찌라시는 대체 누가 만들까. 기업 정보팀, 전·현직 사정기관 정보맨, 금융기관 관계자, 국회의원 보좌진 등이 주생산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도 소문일 뿐 확인하기는 어렵다. 전해지는 바로는 여의도와 광화문을 중심으로 소위 ‘관계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열리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참가 인원은 대개 10명 전후. 정보 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들은 일명 ‘선수’라고 불린다. ‘월요모임’ ‘목요모임’ 등 요일별 이름이 붙은 이 모임에서는 참석자들이 자기가 가지고 온 정보를 서로 교환한다.
그리고 여기서 교환된 정보는 각자 속한 기관에 보고용으로 올라가고 며칠이 지나면 ‘주간 동향’ 등의 다소 생소한 이름이 붙어 시중에 돌기 시작한다. 국회의원들이 청문회 때 폭로하는 내용 중에도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이런 정보 모임에서 얻은 것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정보맨들을 가장 솔깃하게 하는 정보는 검찰이나 경찰발 ‘사정’ 소식이다. 정보지의 생산자인 정·재계의 생사 여부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인사 및 동향도 주요 정보로 꼽힌다. 업계 고위층의 진퇴 여부, 동향 등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잖기 때문이다.
언론사 동향도 주요 정보다. 최근에는 KBS나 YTN 동향 등이 핫이슈다. 정치권 정보는 예상보다 선호도가 떨어진다. 파급력이 있는 것도 있지만, ‘~카더라’ 통신이 많기 때문이다. 이래서 차라리 정치인들과 직접 접촉해 작성한 신문기사를 보고 동향을 파악하는 게 낫다는 말도 정보맨들 사이에 나온다.
최근 검찰과 경찰에서는 이 찌라시에 대한 단속을 대대적으로 천명하고 나섰다. 증권업 협회에서도 증권가 찌라시가 문제가 되면서 실태 파악에 나섰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최근 해외출장 중에 검찰에 전화를 해 “찌라시를 발본색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경찰에서도 찌라시 현황 파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찌라시 단속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정보맨들도 반신반의한다.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은 물론이고 청와대, 국무총리실 심지어는 여의도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정보는 곧 힘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도 찌라시의 소비자다. 이들 기관에서 나온 정보원들은 그들만으로 시중의 모든 정보를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떤 때는 찌라시의 도움도 받는다.
참여정부 때도 찌라시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도 잠시 주춤했을 뿐 얼마 못가 ‘원위치’되고 말았다. 결국 생산자가 소비자가 되고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는 찌라시는 각종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서 그만큼 퇴출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찌라시 색출을 주장하는 정치인들도 사실은 정보지에 실린 소문에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찌라시와 관련한 ‘아이러니’다. 한마디로 찌라시 시장도 수요가 있는 한 공급도 끊임없이 지속되리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