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금감원 국감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종창 금감원장.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A 씨는 “법인의 공시 등을 믿고 코스닥 상장사에 투자했지만 법인대표 등의 상습적인 증권거래법 위반 때문에 거액의 투자금을 날리게 됐다”며 “이에 법인 대표 등이 2년여 동안 저지른 중대 증권범죄들을 증거자료와 함께 무려 40여 차례나 금감원에 신고했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고 고발 배경을 밝혔다.
또한 A 씨는 “금감원은 위반사항이 있는 경우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제재를 가할 의무가 있는데도 눈감아 주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다”며 유착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A 씨는 얼마 전 이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청와대에 제출했고 국세청에도 관련 법인 대표를 탈세 혐의로 고발했다고 한다. A 씨의 주장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A 씨가 투자한 I 사는 김 아무개 씨가 수개월 전까지 대표로 있었던 법인이다. A 씨는 김 전 대표 등이 유가증권신고서와 사업설명서 등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주요사항을 고의로 누락시키는 등의 수법으로 회사자산 500억여 원을 빼돌리는 중대 증권범죄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본인을 비롯한 1만여 투자자들이 경제적 파탄에 빠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A 씨에 따르면 김 전 대표 등은 2006년 11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세 차례 유가증권신고서를 허위기재해서 금감원에 신고하고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는 수법 등으로 587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10여 개의 유령법인을 설립하고 그 법인에 출자 또는 금전대여를 하는 수법으로 자금을 빼돌렸고 이를 감추기 위해 사업보고서나 반기·분기 보고서 등에 허위사실을 기재하거나 주요 사항을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그 결과 I사는 2007년 당기순손실 270억 원, 2008년 반기순손실 110억 원이 발생했다고 A 씨는 주장하고 있다.
A 씨는 이 같은 사실을 금감원에 알리고 “증권거래법대로 엄중히 처리하고 김 전 대표 등을 검찰에 고발할 것을 1년 동안 요구해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A 씨가 주장한 김 전 대표 등의 혐의들에 대해 ‘분·반기보고서상 기재된 내용을 단순히 대차대조표 계정과목만으로 비교분석해 오해가 생긴 것이다’ ‘자금사용 내역이 당초 신고서상 자금사용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신고서 허위기재로 보기는 어렵다’ ‘주요경영사항의 신고대상이 아니다’ 등으로 답변했다고 한다.
A 씨는 김 전 대표 등이 유령법인을 통해 돈을 빼돌렸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해당 법인이 법인등기부상 주소지는 야산이었다는 사실까지 제시했지만 금감원은 이마저 ‘법인등기부상 주소지에 사무실이 없다 해도 법률행위가 가능하다’고 설명,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금감원은 2007년 4월 6일 이 회사가 (주)코스프 주식 370만 주를 취득한 사실을 2007년 반기 및 3분기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올 9월 공동대표였던 또다른 김 아무개 씨에게 과징금 2000만 원(회사 과징금 7억 7000만 원)을 부과했다. 김 전 대표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벌이 없었다.
이에 A 씨는 “김 전 대표 등이 저지른 행위는 검찰통보 또는 고발이 될 만한 중대범죄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공동대표였던 김 아무개 씨에게만 고작 2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금감원이 제대로 조사했다면 이런 조치만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며 반발했다.
▲ 공시위반 법인 등에 대해 금감원이 내린 조치. 모두 과징금만 부과됐다. | ||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금감원은 상장법인들의 위법사실에 대해 여전히 과징금만 부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공시심사실이 발표한 기록을 보면 지난 5년(2004~2008) 동안 증권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로 적발된 건수는 총 129건이다. 위반 내용을 살펴보면 △주요주주 등에 대한 금전대여, 담보제공, 채무보증과 같은 사실관계 누락 △해외직접투자계획 취소 등에 대한 공시 위반 △유상증자결의 관련 허위공시 등으로 하나같이 투자자들의 증권 취득·처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적발된 129건에 대해 단 한 건도 형사고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심사실이 작성한 처분 내역에 따르면 금감원은 109건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부과했고 나머지 20건에 대해서는 유가증권발행제한 조치처분을 내린 것으로 나와 있다.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과 행위 책임자(법인대표)에게 같이 책임을 물은 사례는 4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모두 과징금이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공시심사실 관계자는 “증권거래법을 위반했다고 해서 무조건 고발 또는 수사기관에 통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위법 내용의 경중과 사안에 따라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힌 뒤 양벌규정에 대해서도 “법인과 대표이사 양측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인에만 과징금을 부과할지 개인에게도 책임을 물을지는 죄질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금감원은 발표한 자료에는 과징금 부과부분만 기재돼 있지만 실제로 검찰에 통보한 사례도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A 씨는 소액주주들과 함께 조만간 중앙일간지에 이같은 내용을 고발하는 광고를 낼 방침이다. 금감원이라는 막강한 권력기관을 상대로 진행되고 있는 A 씨와 소액주주들의 다툼이 향후 어떻게 결론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A 씨가 주장하는 I 사의 증권거래법 위반 사항
△2006년 12월 회사 최대주주에게 인터넷 서버 21억 원어치를 구입해주고 2006년 회사 사업보고서 현금흐름표에 당사비품 취득으로 허위계상했다.
△2007년 1월 유령법인 D 사에 40억 원을 출자했다고 금감원에 허위신고하고 40억 원을 빼돌렸다.
△2007년 3월 유령법인 E 사에 금전대여 하는 수법으로 20억 원을 빼돌렸다.
△2007년 4월 유령법인 L 사에 29억 7000만 원을 출자하는 수법으로 빼돌렸다.
△2007년 1년 동안 회삿돈으로 최대주주사의 직원급여 6억원을 불법지급하고 07년 사업보고서 손익계산서에 당사 직원 급여로 허위계상했다.
△2008년 2월 당사 최대주주사에 15억 5000만 원을 금전대여하고도 공시하지 않았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