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 ||
수지 김 살해 혐의로 복역 중인 윤 씨가 자신이 운영하던 패스21의 주식을 박연차 회장 등 3인이 편취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해 검찰이 내사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윤 씨는 지난 5월 중앙지검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지난 10월 24일부터 부산지검 동부지청에서 이 사건에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패스21은 생체인식장비 특허기술로 각광받았던 업체로 윤태식 씨의 로비의혹, 회사 지분 소유권을 둘러싼 법정공방 등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현재는 L 사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대표이사도 두 번이나 교체됐고 주가도 폭락했지만 윤 씨가 수지 김 사건으로 수감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해외에서 100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업체로 평가받으며 투자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윤 씨가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에 등장하는 세 명은 박 회장과 2002년 3월 윤 씨로부터 패스21을 넘겨받았던 김경민 전 대표이사(49), 윤 씨의 소송을 맡았던 K 변호사(45)다. K 변호사는 김 전 대표를 윤 씨에게 소개한 사람으로 알려진다.
윤 씨는 이들 3명이 공모해 자신의 주식을 편취하는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 씨는 자신이 구속되기 직전 운영하던 생체인식기술 업체 패스21 주식 31만 주를 김 전 대표에게 넘겨줬다. 명목상으로는 100억여 원에 넘겨준 것으로 돼있지만 복잡한 이면계약(박스기사 참조)을 해 실제로는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박 회장이 이를 다시 50억 원에 양수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의 주장대로라면 김 전 대표는 50억 원을 남긴 셈이고 박 회장도 100억여 원에 달하는 주식을 50억에 산 셈이다. 하지만 박 회장이 주식을 인수했을 때는 2년이 지난 후였기 때문에 주가의 변동을 고려하면 사정이 전혀 다를 수 있다.
먼저 윤 씨와 김 전 대표의 관계를 살펴보자. 윤 씨와 김 전 대표는 이미 지난 2004년 한 차례 법정공방을 벌인 바 있다.
지난 2002년 5월 당시 스포츠마케팅 전문회사 ‘피코코’ 운영자였던 김 전 대표는 윤 씨가 운영하던 패스21 주식 42%(31만 주)와 패스21이 보유하고 있던 생체인식기술 특허권을 90억여 원에 인수했다고 밝히면서 큰 이목을 끈 바 있다(금액이 차이가 나는 것은 양쪽이 이면계약을 체결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계약을 체결한 지 2년여 후인 지난 2004년 김 전 대표가 “계약시 윤 씨에게 받기로 약속된 잠원동 소재의 한 빌라를 넘겨받지 못했다”고 윤 씨를 상대로 소송을 걸면서 이들의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당시 윤 씨 측에서는 “김 전 대표가 주장한 90억 원에 이르는 인수금 자체도 전혀 받지 못했고 본 계약에 앞서 서명한 이면계약서 상의 약속을 김 전 대표가 전혀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빌라를 넘겨주지 않은 것”이라고 맞섰다.
▲ 윤태식 씨. | ||
하지만 소송 이후에도 윤 씨 측에서는 “김 전 대표가 K 변호사와 짜고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윤 씨의 누나 윤숙자 씨는 “김 전 대표와 애초 계약할 때부터 동생이 받은 돈은 없었는데 집마저 내줬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연차 회장은 어떻게 패스21 주식 싸움에 휘말리게 됐을까. 박 회장이 패스21 주식을 처음 소유한 시점은 2004년 3월이다. 당시 박 회장은 패스21 주식 8.56%(221만 주)를 매입했다고 밝히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박 회장은 “김 전 대표가 찾아와 부탁해 투자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 차원의 투자로 해석됐고 윤 씨 자신도 이 부분에 대해 당시엔 전혀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 윤 씨가 지금에 와서 박 회장을 걸고 넘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윤 씨에게도 구체적인 정황이나 물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정서 내용도 김 전 대표와 박 회장의 친분 및 김 전 대표가 조기에 주식을 매각했다는 점에 주목한 윤 씨의 추측이 대부분이다.
윤 씨는 자신이 김 전 대표에게 패스21을 넘겨준 지 2년여도 안된 시점에서 박 회장이 패스21의 최대주주로 떠오르고 김 전 대표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점에 의혹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패스21의 전자공시를 살펴보면 당시 박연차 회장이 L 사의 주식 221만 주(8.56%)를 취득하면서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그해 9월 김 전 대표는 사임했다.
김 전 대표가 윤 씨로부터 받은 주식수와 박 회장이 인수한 주식수가 크게 다른 것은 김 전 대표가 패스21을 인수해 L 사로 바꾼 이후 액면분할 등으로 발행주식 총수를 4000만 주(액면가 500원)로 늘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가 윤 씨로부터 회사를 넘겨받을 때는 액면가가 5000원이었고 주식발행 총수는 400만 주였다.
수지 김 사건 때부터 윤 씨를 도왔다는 한 지인은 “김 전 대표와 박연차 회장은 서로 동향 출신인 데다 대학 동문으로 사업상 얽혀있는 부분도 있었다. 윤 씨가 보기엔 김 전 대표가 박 회장과 짜고 자신에게 접근한 것으로 생각하는듯 하다”고 말했다.
윤 씨가 운영할 당시 패스21 경영에 참여했던 또 다른 인사는 “김 전 대표가 패스21을 인수한 지 2년도 안돼 주식을 박 회장에게 양도했다”며 “이런 점 때문에 윤 씨가 박 회장을 김 전 대표의 배후로 의심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태광실업 측에서는 이와 같은 윤 씨의 주장에 대해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총무실 한 관계자는 “박 회장도 L 사 주식을 인수한 후 막대한 손해를 봤다”며 “지금은 그 주식이 휴지조각에 가까운 상황인데 박 회장도 김 전 대표에게 당했다면 당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모의해서 인수한 것이라면 회사가 이 상태가 될 리 있겠느냐”고 배후설을 일축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관련자들을 조사한 후 혐의가 확인될 경우 박 회장 등 관련자들을 소환조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 전 대표가 현재 행방이 묘연해 검찰의 이번 내사는 상당히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전 대표는 L 사와 관련된 다른 사건으로 수배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패스21의 후신인 L 사는 최근 최대 주주가 또 한 차례 바뀌었다. 지난 10월 2일 박 회장 등 4인으로부터 595만 주를 양도받은 S테크(주)가 지분 25.3%를 확보함으로써 리얼아이디재팬(지문 17.92%)을 2대 주주로 최대 주주가 됐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