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호 9단(왼쪽)과 이세돌 9단이 대국하는 장면. | ||
대 이창호 전 4연패 후 1승이다. 바둑팬들은 두 사람이 좀 자주 만나 멋진 승부를 보여 주기를 바라지만 두 사람은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아주 드문드문 만난다.
이창호와 이세돌이 생각보다 덜 만나고 있는 것은 요즘은 예전에 비해 기전 무대가 훨씬 다양해졌고 어리고 강한 후배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창호 이세돌에 비해선 조금 약하지만 그 비슷한 수준까지 근접한 어린 기사들이 두 강자에게 태클을 거는 경우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이창호와 이세돌이 만나기 전에 둘 중 한 사람이 어디선가, 누구에겐가 발목을 잡히는 것.
지금 상황이 바로 그렇다. 우선 강동윤 8단이 만만치 않다. 이 후배는 이창호 이세돌 두 선배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강동윤이 2인자일지 모른다는 소리도 들린다. 최근엔 좀 멈칫하고 있지만 최철한 9단과 박영훈 9단도 있다.
원성진 9단과 목진석 9단도 있다. 원성진은 최철한 박영훈과 동년배이면서 예전엔 두 사람보다 뒤졌지만 요즘은 날이 서서 최철한 박영훈과 대등해졌거나 앞선 느낌을 주고 있다. 목진석은 이창호의 벽을 끝내 넘지 못한 채 그냥 머물러 있거나 천천히 조금씩 내려갈 것으로 보였는데, 최근 다시금 선두 경쟁에 합류하고 있다.
이창호와 이세돌도 최근엔 그래도 종종 만나는 편이다. 삼성화재 대국이 있기 일주일 전쯤 11월 11일의 제36기 하이원배 명인전 본선리그에서 만나 이창호 9단이 이겼고, 지난 9월에 있었던 제6회 잉창치배 준결승 3번기에서도 이창호 9단이 2대 0으로 이겼다. 그 다음은 간격이 넓다. 지난해 9월이니 1년이나 된다. KB한국리그에서 이창호 9단이 이긴 것.
어쨌거나 4연패면 꽤 많이 진 거다. 요즘은 모두들 심정적으로는 이세돌이 1등이라고 믿고 있지만 상대 전적으로는 이세돌이 이창호를 앞섰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이세돌은 다른 데에서 워낙 성적이 좋고, 요즘은 이창호에 대한 바둑계의 조명이 예전에 비하면 좀 약해진 탓에 상대적으로 4연패라는 것도 크게 부각되지 않은 의미도 있다.
그런 상황이나 조건을 떠나서 이번 삼성화재배의 한판은 느낌이 또 좀 다르다. 이창호의 힘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관전 기사들의 중론이었다. 유장하고 두텁고 끈끈하고 치밀하고 서서히 압박해 오는 그런 것들이 이창호의 바둑에서는 느껴져야 하는데, 삼성화재배 대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 반면에 이세돌은 평소 때와 똑같이 깊은 수읽기와 거칠고 사나운 기세로 공격 본색 혹은 전투 본능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돌격했다는 평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