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나온 중학교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어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복도식 아파트라 학교 운동장에서 바로 옆 동 아파트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바로 그 동 아파트에 신해철이 살았습니다. 당시는 89년으로 신해철은 막 데뷔해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오전에 신해철이 집에서 나와 아파트 복도를 걸어가면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하던 여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그 역시 여학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곤 했습니다. 이제 고인이 돼 세상을 떠난 신해철을 생각하면 그 시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지인에게 중고등학생 시절 신해철을 정말 좋아했다고 얘기하자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 시절에 누가 그를 좋아하지 않았겠냐고. 세월이 흘러 신해철이 독설 섞인 사회적 발언을 하고 때론 정치적인 성향까지 드러내면서 그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지만 적어도 음악인 신해철은 대한민국 대중들의 폭넓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쉬운 부분은 갑작스런 고인의 죽음을 두고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특히 고인이 사망하기 11일전에 받은 수술이 의혹의 중심입니다. 그 시작은 루머였습니다.
지난 22일 고인이 심정지 상태의 아찔한 위기를 겪으며 서울 아산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그리곤 3시간여의 응급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으며 6일 동안 위독한 상태로 지내다 결국 사망했습니다. 이미 의식을 잃고 6일 동안 지낸 터라 별다른 유언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사진 공동취재단
고인이 의식을 잃고 위독한 상태로 병상을 지키는 동안 루머가 제기됐습니다. 루머는 고인이 스카이병원에서 위밴드 수술을 받았는데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신해철이 3주 동안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으며 그가 수술을 받은 스카이병원은 고도비만 등 다이어트 관련 수술로 유명한 병원이었습니다. 결국 루머는 이런 공통점이 빚어진 오류였습니다. 스카이병원은 비만 수술로 유명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진료과를 갖춘 대형 병원으로 특히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입니다. 게다가 고인은 처음부터 해당 병원을 찾은 것이 아니라 복통으로 분당 소재의 한 병원을 찾았지만 대기시간이 길어져 급히 스카이병원으로 이송돼 장협착증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이는 고인의 소속사와 스카이병원의 입장이 일치하는 부분이니 의혹이 있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당시 스카이병원은 공식입장을 발표하며 루머에 발 빠르게 대처했습니다.
문제는 스카이병원의 대응이 발 빠르긴 했지만 다소 미숙했다는 부분입니다. 당시 스카이병원의 공식 입장을 보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루머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보입니다.
“신해철이 스카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의료사고를 당해 생명이 위독하게 됐다는 내용의 찌라시는 근거 없는 낭설이다. 이미 변호사를 고용해 법적인 대응책을 마련했으며 병원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철저하게 규명할 예정이다.”
이렇게 스카이병원 측의 공식 입장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후 고인의 치료 및 이송 과정을 설명합니다.
“신해철은 본원에서 장유착 수술을 받았으나 입퇴원 과정에서 흉부 통증을 호소했으며 심정지 상태에 이르러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심장은 본원의 진료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아산병원으로 이송 결정했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행여 수술 이후 뭔가 문제가 생겼다면 병원의 책임이 아닌 신해철 개인, 그리고 연예인이라는 직업 때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대목입니다.
“환자 본인이 아무래도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만큼 병원 측에서 주의를 당부한 사항에 소홀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후 다시 루머에 대한 해명과 유감의 뜻을 밝힙니다.
“무엇보다 신해철 가족과 소속사 등 최측근들도 병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다 환자의 생명이 위독한 시점에서 근거 없는 소문이 도는 것이 안타깝다. 신해철은 다이어트와 관련된 치료나 수술을 받은 적이 없으며 이는 의료기록이나 간호기록 등 명백한 증빙자료로서 남아있다. 스카이병원이 신해철의 협찬 병원으로서 무료 진료를 해줬다는 소문도 사실이 아니며 그가 정당하게 금액을 지불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스카이병원은 연예인 협찬 명목으로 고인에게 무료로 다이어트 관련 시술을 해주지 않았으며 이와 관련된 모든 증거를 갖고 있음을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결국 당시 스카이병원의 공식입장은 루머에 대한 해명, 루머에 대한 강경대응 방침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그리곤 책임 소재를 스카이병원이 아닌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신해철에게 미루는 듯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사진 공동취재단
기본적으로 매우 미숙한 대응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루머보다 더 무서운 안티 이미지가 해당 병원에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공식입장을 밝힐 때 반드시 빠지면 안 되는 부분은 ‘당시 사경을 헤매고 있던 신해철의 쾌유를 바란다’는 표현입니다. 형식적일 지라도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스카이병원의 공식입장에는 ‘환자의 생명이 위독한 시점에서 근거 없는 소문이 도는 것이 안타깝다’는 표현만 나옵니다. 이는 환자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 안타까운 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도는 상황만 안타깝다는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다시 말해 환자가 위독한 것보다 그런 상황에서 병원을 둘러싼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도는 게 더 중요하다는 내용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글과 말’은 표면적인 뜻도 중요하지만 행간의 의미가 더욱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당시 스카이병원의 공식입장은 이 부분을 간과했습니다. 당시 스카이병원 공식입장의 표면적인 뜻은 루머를 해명하고 이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것이지만 그 행간의 의미는 자칫 ‘책임 소재를 신해철에게 미루고 있는 것’처럼, 또 ‘위독한 신해철의 회복 및 쾌유보다 루머가 나도는 현실에만 더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물론 스카이병원이 그런 뜻으로 공식입장을 발표한 것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너무 많은 행각의 의미가 담긴 공식입장으로 인해 오해의 여지를 남겼으며 그 뜻이 왜곡될 여지를 남겼을 뿐입니다.
이후 ‘마왕’ 신해철은 결국 사망했습니다. 루머에 발 빠르게 대응하던 스카이병원이 이번엔 아예 입을 닫아 버렸습니다. 병원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스카이병원을 찾은 기자는 40여분 이상 기다린 뒤에야 겨우 병원관계자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 뿐, 지금은 아무런 할 말이 없다’는 입장만 듣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미숙한 공식입장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터라 이번에는 그 뜻이 왜곡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의 침묵은 병원을 둘러싼 루머에 대해선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정작 환자의 사망에 대해선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는 상반된 모습만 부각시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유가족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스카이병원이 먼저 나서서 의료사고 등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해명할 까닭은 없습니다. 아니 유가족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병원도 그 부분에 대해선 침묵하는 게 더 올바른 대응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선 스카이 병원 측이 신해철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의 짧은 공식 입장이라도 내놔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현재의 분위기는 고인의 사망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너무 스카이병원과 강세훈 원장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자칫 다시 루머로 이어지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괜한 잡음으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궁금증이 올바른 방식으로 풀리지 않을 경우 루머를 통해서라도 그 정답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입니다. 신대철 등 동료들이 ‘복수’까지 언급하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스카이병원의 오랜 침묵 역시 또 하나의 미숙한 대응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