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문화재연구원에서 근무했던 한 문화재 연구원이 문화재 조사 범위를 축소시켜 주고 건축 시공사들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경북문화재연구원은 경상북도에서 전액 출자해 설립된 단체로 경북도내의 문화유산을 발굴해 보존, 관리활동을 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원장은 따로 있지만 경북도지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비영리재단이다. 이렇게 세금으로 운영되는 문화재 ‘지킴이’ 단체의 상급 연구원이 문화재를 보호하기는커녕 조사를 빌미로 건설업체들로부터 금품을 받고 눈감아주다가 적발됐다. 뿐만 아니라 이 연구원이 못본 척하는 바람에 빛도 못 본 채 사장되거나 훼손된 문화재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도대체 얼마나 큰 유혹을 받았기에 자신의 본분까지 망각하게 됐을까. 그리고 사장된 문화재는 또 어떤 것이었을까.
대구지검 특수부는 지난 11월 20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뇌물수수혐의)’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을 지낸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의 이 아무개 전 실장(46)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 전 실장이 시공사 등으로부터 문화재 발굴 조사에 대해 축소 혹은 무마 청탁을 받고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정황이 드러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결과 지금까지 이 전 실장이 시공사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은 총 두 차례. 하지만 검찰은 이 실장이 다른 업체들로부터도 금품을 수수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지금까지 밝혀진 이 전 실장의 뇌물 수수 과정을 살펴보자.
검찰 조사결과 이 전 실장이 처음 뇌물을 받은 것은 지난 2006년 12월의 일이다. 그해 8월 대구시 수성구 상동의 한 아파트 단지 건축 시공을 맡은 D 사는 공사 진행 도중 그곳에서 청동기 시대 유적지를 발견해 곧바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 조사를 의뢰했다.
D 사의 신고를 받은 후 연구원에서는 곧바로 5명의 조사단을 꾸렸다. 단장은 당시 연구원의 원장이었던 박 아무개 씨가 맡았고 문제의 이 실장은 당시 3명의 조사원을 이끌고 현장에서 모든 작업을 지휘하는 책임조사원이었다.
2006년 11월부터 현장 조사에 착수한 조사단은 그곳에서 청동기 시대 유물에서부터 통일신라시대 토기, 고려시대 자기 등 상당한 양의 유물을 발견했다고 한다. 연구원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한마디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확인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유적지였던 셈.
반면 출토되는 유물의 양이 많아지고 조사가 길어질 기미를 보이자 D 사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조사 기간이 더욱 길어질 것을 우려한 D 사의 박 아무개 이사는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된 지 한 달여 만인 그해 12월 당시 현장의 책임 연구원이었던 이 실장에게 접촉해 조사를 서둘러달라는 청탁과 함께 2000여 만 원의 돈을 건넸다고 한다.
조사단의 현장조사는 2007년 2월경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가 시작된 지 4개월도 안된 시점이었다. 출토된 양에 비하면 지나치게 짧은 기간에 조사가 끝나 현장조사 자체가 부실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당시에도 일었다고 한다.
이 전 실장이 두 번째로 눈감아준 일은 ‘끔찍’하다. 이때는 공사 현장의 문화재가 아예 빛도 못 보고 완전히 훼손돼 버렸던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실장이 두 번째로 금품을 받은 것은 지난 2007년 10월. 뇌물의 액수는 이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고 한다. 업체에서 이 전 실장에게 조사 범위 자체를 축소시켜달라는, 즉 자신들이 공사를 하고 있는 지역은 아예 문화재 발굴 조사 대상에서 빼달라는 청탁을 했고 그 대가로 1억 5000여 만 원에 이르는 거액을 이 전 실장에게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 전 실장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이는 대구 월배지구에서 아파트단지 건축에서 토목 시공을 맡았던 G 업체의 K 부사장. G 업체는 지난 2007년 9월 현장에서 문화재를 발견하고 공사가 전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공사 지역 대부분의 곳에서 문화재가 쏟아져 나왔다는 것.
하지만 G 업체의 공사는 잠깐 주춤했을 뿐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 전 실장이 G 업체 부사장에게 뇌물을 받은 대가로 조사 범위를 축소시켜 그곳을 조사대상에서 제외시켜줬기 때문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실제로 검찰 조사 결과 해당 지역에 있었던 대부분 유물은 이미 공사 중에 훼손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를 보호해야 하는 업체의 연구원이 문화재를 훼손하는 데 앞장선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
이 전 실장의 여죄를 추궁하고 있는 검찰은 “이번 사건이 한 개인에 의해 이뤄졌을 것으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업계에선 이 같은 비리가 토착화된 것일 수도 있어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연구원의 금품수수 혐의로 시작된 이번 사건이 대구 지역 문화재 조사 전반에 대한 수사를 불러올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