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Y 건설. 지난해 9월 부도를 맞았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지난 11월 말부터 나돌기 시작한 이 루머의 내용은 최 교수가 서울 방배동에 있는 Y 건설에 연 30%의 고리로 30억 원에 이르는 돈을 빌려줬는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를 갚지 못한 Y 건설로부터 원금과 이자 대신 130억 원대에 이르는 건물을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수십억 원의 고액 연봉자인 대기업 부회장이 남편이고 자신도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사람이 사채를 굴렸다는 소문은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돈에 관한 한 최 교수는 아쉬울 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재결과 이 루머는 상당 부분 와전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소문이 나돈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도 있었다. 과연 Y 건설과 최 교수 간에는 어떤 거래가 있었던 것일까.
Y 건설은 지난 2003년 설립돼 강남과 분당 일대에서 고급 빌라만을 지어온 나름대로 탄탄한 중소기업이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B 아파트 5차 단지를 완공하는 등 서울 방배동 일대에서는 제법 알려진 업체였다.
그런 Y 건설이 부도를 맞은 것은 지난 9월 18일. Y 건설의 최 아무개 이사에 따르면 부도가 나기 직전 Y 건설은 서울 압구정동 인근에 B 아파트단지 6차 시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최 이사는 부도 원인에 대해 “당시 토목공사까지 마쳤지만 구청의 건축허가를 받지 못해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Y 사와 ‘특별한 거래’를 하면서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부동산 컨설턴트 김 아무개 씨도 “건축허가가 떨어지면 주민들에게 계약금을 받아 잔금을 치르려고 했는데 허가가 자꾸 늦어졌고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부도를 맞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회사 관계자들은 Y 건설 부도에는 다른 사정도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복수의 Y 사 관계자들은 “Y 건설의 대표이사 김 아무개 씨(34)가 무리하게 사채를 끌어다 쓴 것이 회사 부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Y 건설 사무실이 있었던 방배동 Y 빌딩에서 수개월째 근무하고 있다는 A 씨는 “9월 초부터 십수 명의 사채업자들이 빌딩에 몰려왔었다”고 증언했다.
이들 관계자에 따르면 사채에 시달리던 Y 건설은 급기야 부도 직전 회사 건물인 Y 빌딩까지 채권자에게 넘겨주게 됐다고 한다. Y 건설의 원 아무개 이사는 “은행 거래 얘기를 직접 들었기 때문에 건물이 넘어간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면서 “계속 채무가 늘어나니까 그 사람(현재 건물주)한테 가등기(매매예약)가 됐다가 이번에 부도 나기 직전에 본등기(소유권 이전)로 넘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확인결과 원 이사가 말한 현재 건물주, 즉 Y 건설로부터 건물을 넘겨받은 채권자는 바로 앞서 거론했던 사채설 루머의 주인공인 최 아무개 교수였다. 건물 등기부등본을 보면 최 교수는 2007년 12월 24일 매매예약을 이유로 Y 빌딩에 대해 소유권이전청구권을 가등기했고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2008년 9월 4일 실질적인 소유자로 등재된 것으로 나와 있다. 소유권 변경 때 최 교수는 전 소유주이자 Y 건설 김 대표의 부인인 성 아무개 씨(33)의 채무를 고스란히 승계한 것으로 나와 있다. Y 건설의 최 아무개 이사는 이에 대해 “건물을 가져간 사람이 받을 돈이 더 있었다. 그 사람도 Y 건설 부도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교수 측에서는 “Y 건설에 돈을 빌려준 적도 없고 건물은 정상적인 매매를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최 교수는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본인은 이 빌딩을 매입하기 전에는 전혀 Y 건설의 김 대표와 알지 못하는 사이였고 2007년 12월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처음 만난 사이”라고 설명한 뒤 “적법한 매매절차에 따라 총매매대금을 완납하고 Y 빌딩의 소유권을 넘겨온 것이지 건물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준 사실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Y 빌딩의 매매를 직접 알선했다는 컨설턴트 장 아무개 씨(39)도 이 점을 시인했다. 그는 “최 교수는 7~8년 전부터 알고 지내온 고객”이라고 운을 뗀 뒤 “Y 건설은 2007년 말에 돈이 급했다. 하지만 건물을 공개적으로 팔면 회사가 어렵다는 소문이 날까봐 조용히 팔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최 교수를 소개시켜 준 것이고, 그 당시 건물이 싸게 나와서 거래가 성사됐던 것”이라면서 “최 교수가 김 대표에게 돈을 빌려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장 씨는 최 교수로부터 계약금 25억 원을 넘겨받은 Y 건설이 지난 2007년 12월 그 돈으로 급한 불을 끈 뒤 최 교수에게 계약 파기를 요청해 50억 원의 위약금 얘기가 오간 적은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지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건물이라 양도세가 20억 원에서 30억 원 정도 나올 것 같으니까 Y 건설 측에서 계약 파기를 요청했었다”며 이에 대해 최 교수 측에서 통상적인 위약금을 요구해 계약파기는 성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와전돼 최 교수가 Y 사에 연 30%의 고리로 돈을 빌려줬다는 사채설이 퍼진 것 같다고 그는 전했다.
하지만 최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Y 건설 내부 측 사람들은 최 교수를 “돈을 빌려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Y 건설의 최 아무개 이사는 “(최 교수는) 작년(2007년)부터 우리를 도와준 사람”이라고 했고, 장 아무개 이사 역시 “(최 교수가) 그런 일(사채)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최 교수와 Y 건설 간의) 채무관계 때문에 건물이 넘어간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이들 역시 김 대표가 최 교수에게서 얼마의 돈을 빌렸고 이자가 얼마였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지만 분명한 것은 최 교수가 Y 건설 측에 돈을 넘겨준 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돈의 성격에 대해 Y 건설 측 내부인사들은 “최 교수가 건물을 담보로 어려울 때 빌려준 것”이라고 하고 있고, 최 교수는 “건물 매매에 대한 계약금으로 건네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2008년 9월 4일 최 교수는 Y 빌딩의 실질적인 소유자가 됐고 사채에 시달렸던 Y 건설은 2008년 9월 18일부로 최종 부도를 맞았다.
한편 Y 건설과 최 교수 간에 구체적으로 어떤 채무 관계가 존재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김 아무개 대표이사와 김 대표의 부인인 성 아무개 씨에게 지난 몇 주간 개인 연락처와 측근들을 통해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끝내 응답이 없었다. 김 대표와 성 씨는 Y 사의 부도 이후 줄곧 잠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Y 건설 측에서도 최 교수를 원망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최 교수가 빌려준 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마저 최 교수에 대해서 “도와준 사람”이라거나 “고마운 사람”이라고 했고 심지어는 “그도 피해자”라고 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최 교수가 설사 매매가 아닌 금전대여로 부동산을 취득했더라도 비난할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부회장의 부인이며 대학 교수가 사채업을 했다는 의심이 그같은 악성루머를 부른 것으로 보인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