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조풍언 씨가 관련한 로비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 ||
하지만 이는 조 씨의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한 것일 뿐 가장 관심이 모아졌던 대우그룹 회생 로비에 대해서는 무죄를 판결했다.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해 조 씨를 기소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수사팀 내부에서는 ‘검찰에서 15년을 구형했는데도 재판부가 대부분 무죄를 선고하고 집행유예로 조 씨를 풀어준 것은 수사팀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불만이 팽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때문에 당분간 조 씨 사건을 두고 검찰과 재판부 간에 신경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조 씨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자 재판부에 대한 로비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재판결과를 둘러싼 논란을 되짚어봤다.
검찰에 따르면 조풍언 씨는 대우그룹이 부도나기 직전인 1999년 자신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점을 이용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접근했다. 그는 “대우그룹 퇴출을 막기 위해 정·관계 로비를 해 주겠다”며 김 전 회장으로부터 자신이 대주주인 홍콩법인을 통해 4430만 달러를 송금받은 뒤 로비를 벌인 혐의로 지난 7월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이외에도 조 씨는 △대우정보시스템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배임혐의 △주식은닉혐의 등 총 다섯 가지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은 조 씨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조 씨가 김 전 회장으로부터 로비 청탁과 함께 이익을 약속받았다는 의심이 들지만 김 전 회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정·관계 로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한 조 씨가 대주주인 대우정보시스템의 전환사채(CB)를 저가에 발행해 회사에 239억~314억 원의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CB의 전환가격(주당 5000원)이 현저히 낮다고 볼 수 없고, 회사에 대한 손해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 역시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2001년 9월 조 씨가 김 전 회장 재산에 대한 예금보험공사의 가압류 집행을 피하기 위해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163만 주를 은닉한 혐의(강제집행면탈) 등에 대해선 유죄로 인정, 집행유예 등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 씨가 국가의 공적자금 회수를 저지하려 한 것은 죄질이 좋지 않지만 주식이 현재 수사기관에 압수돼 있고 국가에 귀속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한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검찰이 기소한 혐의 중 정·관계 로비 혐의나 배임 등 네 가지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주식은닉에 대해서만 일부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재판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이번 사건을 수사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발칵 뒤집혔다. 검찰에서는 증거가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죄질을 고려해 징역 15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굴욕’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재판부에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검찰이 징역 15년을 구형한 사건을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매우 드문 일로 검찰 입장에서는 치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판결문을 보고 재판부가 무죄를 내린 부분과 그 이유에 대해 꼼꼼히 분석하고 있으며 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항소심에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검찰은 조 씨를 기소할 때는 혐의 입증에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쳤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법원이 대우그룹 구명 로비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검찰은 수사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정치적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특히 최근 공기업 수사와 관련해서도 법원이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면서 정치권 등에서는 중수부의 수사력 약화 또는 ‘정권 교체 이후 너무 욕심을 앞세웠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검찰이 항소심에서 조 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가 검찰의 의도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조 씨는 서울 모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건강상의 이유’로 수사를 받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검찰의 수사 재개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 씨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항소심 재판부가 김우중 전 회장의 진술에 무게를 실어줘야 하지만 김 전 회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1심 재판부의 입장이 항소심에서도 그대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전 회장도 이번 일로 더 이상 사법부에 끌려 다니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검찰이 1심에서 내세운 증거보다 한 발짝 더 나간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검찰의 구형과 법원의 양형이 워낙 차이가 큰 탓에 일각에서는 재판부에 대한 로비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특히 조 씨를 변호한 강 아무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의 모 판사와 대학 동문이자 사법시험 동기로, 상당히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 변호사는 지난해 3월 조 씨의 귀국을 조율하는 등 이번 재판과 관련해 조 씨 측의 로드맵을 그려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조 씨의 연고가 있는 미국 LA에서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조 씨의 석방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인사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LA에 거주하는 한 재미교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 씨의 아내인 이덕희 씨 등 주변에서 조 씨의 석방을 확신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조 씨가 구속된 이후부터 변호인에게 거액을 쓰면서 재판에 대비해 왔다는 소문이 있어 무슨 말인지 의아해했는데 재판결과를 보니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 씨의 아내 이 씨는 조 씨가 석방될 것을 대비해 조 씨 명의로 고급승용차인 벤틀리를 구입하는 등 남편의 귀국준비를 착실히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에서는 그동안 조 씨를 면회한 사람들과 법조계 사람들을 상대로 한 물밑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사건이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법원의 판결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검찰이 과연 2심에서는 어떤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