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검은 지난 11일 트랜스젠더를 성폭행한 S 씨(28)에게 강간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주거침입 및 강간 등의 혐의로 징역 5년을 구형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S 씨는 지난해 8월 31일 부산시 부산진구의 한 가정집에 침입한 뒤 트랜스젠더인 K 씨(58)를 흉기로 위협해 현금 10만 원을 뺏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호적상 남자인 K 씨를 성폭행한 S 씨에게 강간죄를 적용할 수 있느냐다.
현행 형법 297조는 강간죄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죄’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외모가 여성으로 변한 K 씨를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부녀’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가 사건의 핵심이다. 즉 K 씨를 여자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강제추행인지 강간인지가 구분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트랜스젠더 강간죄는 국내에서 인정된 전례가 없다.
사실 1996년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트랜스젠더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은 피해자 A 씨(38)에 대해 “외견상 여성으로서의 체형을 갖추고 성격도 여성화돼 개인적으로 여성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다 할지라도, 기본적 요소인 성염색체의 구성이나 본래의 내외부 성기의 구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생활한 기간, 수술 후에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은 없는 점, 또 이에 대한 사회 일반인의 평가와 태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A 씨를 성폭행한 피의자에게는 강간죄가 아닌 강제추행죄에 해당하는 처벌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수많은 성적 소수자들과 인권단체들은 내심 기대를 갖는 눈치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는 데다가 본인 스스로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는 것이 더 이상 금기시되지 않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2006년 대법원이 트랜스젠더의 호적정정을 인정한 것은 생물학적 성에서 탈피해 사회적·심리적 성을 받아들인 중요한 판례로 남아있다.
더구나 이번 사건을 심리하는 부산지법 제5형사부의 재판장인 고종주 부장판사가 당시 호적정정을 하급심에서 처음으로 받아들인 판사여서 이 사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지법 박주영 공보판사는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 아닌 성전환자에게 형사법상 여성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을지가 이번 사건이 갖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트랜스젠더 강간죄가 사상 처음으로 인정될 수 있을지 다음 달로 예정된 선고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수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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