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경기도 안양경찰서에는 폭행치사 혐의로 구로경찰서 소속 A 경위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A 경위는 전날 새벽 1시 40분경 안양시 비산동에 있는 음식점 앞에서 택시기사 양 아무개 씨(47)와 요금문제로 목을 조르는 등 시비를 벌이다 양 씨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신 후 안양으로 택시를 타고 온 A 경위는 당시 만취상태였는데 “시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목을 조르거나 살해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양경찰서는 A 경위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부검결과 사망한 양 씨의 사망원인이 지병에 의한 심근경색으로 드러났고 피해자의 부모가 A 경위와 합의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뒷거래로 한몫 챙긴 경찰도 있었다. 3월 23일 울산지방검찰청은 압수한 유사휘발유를 빼돌린 경찰을 적발했다. 지난해 6월 유사석유 단속에 나섰던 포항북부경찰서 소속 B 경사와 C 경장은 시가 8000만 원 상당의 유사석유(12만 리터)를 압수했다.
유사석유는 통상적으로 자원재생공사에서 보관하다가 공매처분되지만 이들은 일부를 민간위탁업자에게 넘겨 시중에 유통시킴으로써 2500여 만 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관이 강도로 돌변한 어이없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17일 새벽 인천 삼산경찰서 소속 D 경사는 단속을 빌미로 남동구의 한 오락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D 경사는 단속 대신 오락실에 있던 환전상(39)에게 수갑을 채운 뒤 현금 260만 원이 들어있는 가방을 빼앗아 유유히 나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은 D 경사를 파면하는 등 조기진화에 나섰지만 공권력을 악용한 한 경찰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시민들의 비난은 그칠 분위기가 아니다.
성추행 사건에 연루된 해경간부도 있었다. 24일 충남 태안해양경찰서는 고교 남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태안 해양경찰서 소속 출장소장 F 경위를 직위해제했다. 이 경위는 4년여 전 당시 근무처에서 알게 된 10대 남성 청소년을 여러 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최근 이 고교생의 가족이 피해 사실을 인터넷으로 신고함에 따라 감찰 조사를 벌였으며, 이 경위는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25일에는 성매매업소 업주에게 단속정보를 알려주는 대가로 800만 원을 받은 은평경찰서 소속 G 경사와 단속대상에서 제외시켜주는 대가로 980만 원을 받은 H 경사, 단속무마 청탁으로 100만~200만 원을 받은 일선 경찰서에 소속된 3명의 경찰들이 적발됐다.
조사결과 이들은 성매매업소에 대한 주민들의 신고를 묵살하고 되레 업주에게 정보를 귀띔해주는 식으로 뒷돈을 챙겨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믿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주민들의 비난이 뒤따랐다.
이처럼 경찰의 비위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수사과 관계자는 “사건 무마나 수사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일선 경찰 급여로 생활유지가 녹록지 않다보니 가끔 유혹에 흔들릴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심지어 한 형사는 “목적을 대가로 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수고비조로 식사값이나 담배값 정도 쥐어주는 돈까지 거절하면 생활이 안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강력반 20년차의 한 형사는 “기름값과 휴대폰 비용조차 사실상 자비로 해결해야 하는 수사팀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 실적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주변에 빚이 없는 형사들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은행에 가도 형사라고 하면 대출도 안 해주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 소속된 경찰은 “경찰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다”라고 못 박았다. 그는 “기업체나 유력인사에 대한 조사가 진행조차 되지 않고 덮인 일도 있었던 걸로 안다.
심지어 스포츠센터 특별회원권을 받았다는 식의 얘기도 한동안 파다했다. 오죽하면 우리끼리도 나사가 풀렸다는 얘기를 할까”라고 지적했다.
한 형사과 간부는 “예전엔 강남지역 일부 경찰들이 뒷돈으로 짭짤한 수입을 거둔다는 얘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강남과 강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고치는 경찰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은 경찰 내부 쇄신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이유야 어찌됐든 민중의 지팡이로 모범을 보여야 할 경찰이 온갖 비위에 연루됐다는 점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도 경찰범죄를 강하게 질타하고 나섰다. 그간 법질서 확립을 위한 경찰의 역할을 강조하며 애정을 보여온 이 대통령이 참다못해 강한 경고 메시지를 날린 것이다. 이에 경찰청은 경찰 비위근절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감찰정보팀인 암행감찰팀을 가동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암행감찰팀 가동과 관련,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 관련 금품수수, 업주 등과의 유착 등 경찰 비위를 찾아내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 감찰정보팀에서 선후배, 동료의 과오를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일선 경찰서의 청문감사실 관계자는 “객관적으로 공명정대하게 감찰을 실시하고 적정한 조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그간 사실 입장이 곤란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토로했다. 한편 과도한 감찰이 경찰의 사기저하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경찰 관계자는 “어느 집단에나 비리를 일으켜 먹칠을 하는 미꾸라지 같은 인물은 꼭 있다. 최근 문제를 일으킨 경찰들은 극히 일부분인데 모든 경찰이 매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부분의 경찰들은 ‘국민의 공복’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 근무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경찰이 새롭게 태어나겠습니다”라는 표어처럼 경찰기강을 바로잡아 스스로 공권력을 세우고 위상을 높여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