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양이 두 달째 지내고 있는 대구시 아동학대예방센터. | ||
대구 지역의 한 변호사가 서연양의 무료 변론을 맡았고 후원금 등 각계의 온정이 답지하고 있으며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서연양도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현재 서연양의 소원은 하나. 입양을 무효화하는 파양 신청이 받아들여져, 이제부터라도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딸로 살아가고 싶다는 것.
도대체 무엇이 어린 소녀에게서 ‘믿음’이란 소중한 가치를 빼앗아 가고 한 가족사에 씻을 수 없는 비극을 안겨주게 된 것일까.
2001년 2월 어느날. 아홉 살 생일을 맞은 서연양은 온 가족이 외식을 하러 나간다는 말에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생각지도 않은 비극이 어린 서연양을 덮쳤다. 1.5t 트럭 운전사의 졸음운전으로 서연이네 가족이 타고 있던 승용차가 순식간에 사고를 당한 것. 서연양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를 잃고 혼자가 됐다.
친척들이 모여 혼자된 서연양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를 했다. 그러나 친척들 중 일부에게는 서연양의 문제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인천 부평 소재의 육군 모 부대 정비대장(소령)으로 일하던 서연양 아버지의 퇴직금과 유족 보상금, 교통사고 피해 보상금, 보험료 등의 명목으로 나온 9억3천만여원이 유산으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서연양의 경우 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직계 가족이 모두 사망해 후견인(법정대리인)의 자격은 최연장자인 외할머니에게 돌아가는 상황. 그러나 당시 서연양의 외할머니가 76세의 고령자였고 외가보다는 친가에서 키우는 게 낫다는 결론 끝에 서연양의 삼촌인 김아무개씨(43)가 친권을 갖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서연양 친조부모측과 외가측에 각각 1억9천만원씩을 주고, 자신도 양육비 명목으로 같은 금액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나머지 3억5천만원이 서연양의 몫으로 남겨져 만 18세 이후에 찾을 수 있도록 보험에 가입해 두었다.
몇 개월 뒤인 그 해 10월, 김씨 부부는 정식으로 서연양을 입양했고 동시에 친권자로서 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권리까지 갖게 됐다. 그러나 서연양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돈 때문에 맺어진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정상일 수는 없었다.
1년쯤 지난 2003년 1월께 김씨 부부는 친권을 이용, 보험을 해약하고 원금과 이자를 합법적으로 빼돌리는 등 서연양의 남은 유산까지 모두 빼앗아 버렸다. 학대가 시작된 것도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다.
김씨 부부는 서연양의 식사 시간을 초시계로 재가며 “밥을 빨리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리기도 했고, 구토한 음식까지 핥아 먹으라는 등의 모욕적인 학대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서연양이 얻은 병은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 등. 몸으로 얻은 병도 병이지만, 마음으로 얻은 상처가 크기 때문에 약물 치료와 함께 지속적인 상담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연양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짐승’이라는 말을 자주 썼으며 “‘네가 우리 집에 들어온 이후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운 없는 년’ ‘너는 인간도 아니다. 나가 죽어라’ 등의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연양을 돌보고 있는 아동학대예방센터의 한 관계자는 “아이에게 유산이 없었다면 삼촌 부부는 물론 친척들이 오히려 사랑을 베풀었을지 모른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서연양을 지도하고 있는 아동학대예방센터 관계자는 “서연이가 친척들에게 의지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에게도 나쁜 감정은 없지만 학대를 견디다 못해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보호해 주지 않았던 것에 상처를 받은 듯하다”고 전했다.
서연양이 친척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올 7월부터다. 모범생이던 서연양이 가출을 시도, 친구의 집과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외가와 친가를 찾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시작된 학대를 2년 가까이 참아온 뒤의 일이었다.
5, 6년 전의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려 마산에 있는 외할머니 댁을 찾아 나섰지만 외가집은 이사를 가고 없었다. 결국 이웃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이사 간 곳을 찾고 나니 한밤중이 되어서야 외할머니를 만날 수가 있었다.
“외가에 한번만 더 가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삼촌 부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몇 번이나 내려가 도움을 청했지만 어느 누구도 서연양의 절박함을 눈치 채지 못했다.
친가에서도 서연양이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삼촌 부부에게 “앞으로는 잘 키우라”고 주의만 준 채 번번이 돌려보낸 것은 마찬가지.
현재 서연양의 친할머니는 큰아들을 잃고 작은아들까지 구속되자 ‘홧병’으로 병원에 입원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고모부 옥아무개씨로부터 서연양이 부산으로 찾아왔을 때의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지난 8월께, 마산 외가에서 “삼촌 집에서 정 못 있겠으면 고모한테 가 있어라”는 얘기를 듣고 서연양이 부산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찾아 왔더라는 것. 당시 서연양의 몸에 멍이 든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나 사진까지 찍어 두었다고 한다.
옥씨는 처남인 김씨에게 “차라리 내가 키우겠다고 말했다가 되레 서연이 앞으로 돼 있는 돈 때문에 그러느냐며 김씨가 대드는 바람에 오해를 받을까봐 더 이상 말을 못했다”고 말했다. 이후 서연양이 다시 부산으로 찾아왔을 때는 삼촌 김씨가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앞에서 “다시는 학대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하고 데려갔다는 것.
대구 모 중학교에서 만난 서연양의 담임 교사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털어놨다. 전교에서 상위권에 들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학교생활도 차분하게 잘해 가정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연양의 집에서 차로 10분 남짓 거리에 살고 있는 외사촌 조아무개씨(39)는 “입양한 이후로는 외가에 보낸 적도 없고 같은 대구에 살고 있어서 초등학교 졸업식에 가려고 했지만 ‘올 필요 없다’고 딱 잘라 거절하더라”며 “학대 사실을 숨기려고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렵게 찾아간 친척집이었지만 외가나 친가 모두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했던 서연양의 위기감과 절박함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결국 그녀는 친구의 언니를 통해 모 방송국에 학대 제보를 하기도 하고, “납치됐다”는 허위 신고를 하기도 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번 사건을 지켜 본 경찰과 아동학대예방센터 관계자들은 “도움을 요청한 서연양을 학대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한 어른들의 무관심이 서연양에게 ‘경계심’을 심어 준 것이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친척들과 후원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서연양의 입양 문제는 너무 이르고 민감한 사안이라는 게 서연양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의견이다. 어린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삼촌 부부에게 입양됐고, 결국 학대까지 받아왔기 때문.
더욱이 서연양은 최근에서야 자신에게 거액의 유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연양도 모르게 친척들 간에 유산 분배가 이루어졌고 삼촌 부부한테 마지막 남은 유산까지 빼앗길 동안 이를 막을 수 있는 보호 장치는 없었던 것. 현행 민법상 미성년자일 경우, 법정대리인이 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연양의 경우 다행히도 한가닥 희망이 있다. 서연양의 무료 변론을 맡은 대구의 강아무개 변호사(39)에 따르면 아동복지법상 친권자가 친권을 남용한 경우, 관할 시도지사가 법원에 친권상실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서연양 삼촌에 대한 재판 결과에 따라 잔여 재산 환수, 보증금 압류, 유족 연금 회수 등을 추진할 수 있어 적은 금액일지라도 유산 상속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는 것.
비록 늦었지만 법적으로 어떻게 됐든 서연양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방안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양하나 프리랜서 hana01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