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일 최진영의 유골이 누나 고 최진실 묘역에 나란히 안치됐다. 아래 사진은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최진영의 영결식과 발인이 눈물 속에 엄수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한 편의 시, 혹은 수필 같은 글을 남기고 고 최진영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3월 29일 낮 최진영은 자신의 침실에서 목을 매고 세상을 떠났다. 외부의 침입이나 저항에 의한 외상 등이 없어 경찰은 자살로 판단했지만 끝내 유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일요신문>은 어렵게 고인이 생전에 남긴 글 몇 편을 발견했다. 이 가운데에는 유서로 추정되는 글도 있다. 또한 고인의 모친이 고인에게 보낸 편지도 몇 통 발견됐다. 이런 글들을 통해 자살을 앞둔 고 최진영의 심경과 상황을 따라가 보도록 한다.
지난 3월 29일 오후 연예계에 최진영 자살이라는 비보가 전해졌다. 2008년 10월 고 최진실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 지 1년 6개월여 만에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이다.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톱스타 남매의 연이은 자살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러나 갑작스런 비보는 섣부른 추측으로 연결되면서 무수한 설들이 양산해냈다. 타살설이 제기되더니 약물중독설 상습도박설 등 자살 이유를 둘러싼 자극적인 루머가 확산됐다. 그러나 지난 3월 30일 오전 강남경찰서 곽정기 경정은 브리핑을 통해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누나의 자살 이후 우울증에 빠져 잠도 잘 이루지 못했지만 병원 진료 및 치료를 거부한 채 약만 구입해 복용해왔다”며 “사는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이 힘들다는 얘길 자주 했으며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고인의 어려운 상황은 그가 남긴 글들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일요신문>은 고인이 남긴 편지지 한 장 분량의 유서로 추정되는 글, 조카들과의 일상에 대해 적은 글 등을 발견했다. ‘내 무덤가에 꽃을 심어라’ 등의 표현이 담겨 있어 유서로 추정되는 편지지 한 장 분량의 글은 상당히 시적이다. 앞부분은 주로 ‘죽음과 영원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인생은 꿈이야. 한여름 밤의 꿈’ ‘죽으면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영원으로의 세계. 영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육신은 무엇이며 영혼은 머릿속에 있나 가슴에 있나’ ‘모든 영원 속으로 사라지고 떠나가고 육신을 벗어나 영혼은 훨훨 어디로 가는 것일까’ 등의 문장이 눈에 띄는데 그만큼 고인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간 부분에선 ‘언젠가는 다 버리고 떠날 것이며, 죽음도 고통도 다 버리고 떠나갈 것이며 불어라 씽씽 바람 불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글의 마 지막 부분에 이르러선 ‘내 무덤 가에 꽃을 심어라 바람아 씽씽 불어라. 모든 영혼을 날려버리고 모든 것 다 두고 떠나리라’는 표현으로 자살을 결심한 듯한 심리도 엿보인다.
이 글에는 고인의 연예계 활동 흔적도 남아 있는데 자주 반복되며 등장한 단어 ‘영원’은 그가 발표했던 노래의 곡목이고 ‘한여름 밤의 꿈’은 지난해 그가 출연했던 연극의 제목이다. 둘 다 고인에겐 연예계 활동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들이다. 톱스타인 누나의 그늘 아래 있던 최진영은 ‘SKY’라는 이름만 공개한 얼굴 없는 가수로 ‘영원’이라는 노래를 히트시키며 비로소 스스로의 힘으로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또한 누나의 죽음 이후 힘겨워하던 고 최진영은 연극 <한여름 밤의 꿈>에 출연,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다만 두 번째 터닝 포인트는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함께 <한여름 밤의 꿈>에 출연했던 홍석천은 “형(고 최진영)이 연극을 할 땐 많이 밝아졌지만 연극이 끝난 뒤 더 힘들어했다”고 회상한다. 3월 초 연예기획사와 계약하며 본격적인 연예계 컴백을 시도한 고인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고인의 한 측근은 “힘겨운 상황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고인이 컴백작 선정에 난항을 겪으며 더 큰 고통 속으로 빠져든 것으로 보인다”고 얘기한다.
유서로 추정되는 한 장 분량의 글이 적힌 편지지 뒷장에는 ‘2010. 3. 23 화요일 흐림’으로 시작되는 일기 형식의 글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는 두 조카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두 조카의 학교생활과 관련된 내용과 함께 조카들의 장난을 재치 넘치게 표현한 부분도 눈에 띈다. 앞선 유서로 보이는 글과 달리 상당히 밝은 내용이다. 다만 마지막에 담긴 ‘○○야(큰조카) 이제 앞으로는 △△를(작은조카) 보살피고 많이 도와주어라’는 당부의 글귀가 눈길을 끈다.
▲ 위는 최진영의 메모. 아래는 모친이 고인에 보낸 편지 | ||
고 최진영이 남긴 글들을 통해 자살을 앞둔 그의 심경을 알 수 있다면 고인의 모친 정옥숙 씨가 고인에게 보낸 몇 통의 편지에는 고인의 사망 직전 행적과 유가족의 상황이 담겨 있었다. <일요신문>은 모친 정 씨가 고인에게 보낸 다섯 통가량의 편지를 입수했지만 찢어진 상태였다. 이 가운데 두 통가량은 절반가량의 내용을 알아볼 수 있었고 나머지 세 통은 극히 일부분뿐이었다. 내용 파악이 어려운 두 통은 앞부분만 쓰다 만 편지로 보인다. 비교적 온전한 복원이 이뤄진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는 것이 너무 어리석고 잔인하구나. 네가 강해야 이 엄마도 살 텐데. 너는 자꾸 나날이 움츠러 들기만 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타협하지 않고, 불평불만 한다고 누가 알아주니. 세상은 너무나 냉정하단다. 우리가 일어서지 않으면 아무도 일으켜 주지 않아. 쓰러지면 더욱 짓밟고 뭉개 버리는 세상이야. 일어서라. 어떻게든 일어서야지. 이 세상에 누가 우릴 위해 아파해 주겠느냐. 스스로 망쳐봐야 허망할 뿐이다. 나도 기운이 없고 어찌해야 하는지. 용기도 없고 재미도 없고 희망도 없고.’
모친 정 씨는 이 편지에서 힘겨워 하는 아들에게 냉정한 사회 현실을 얘기하며 보다 강해지라고 충고하고 있다. 또한 자신도 힘들다는 심경을 전했다. 다른 편지들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다른 편지의 일부분에서 발견되는 ‘네가 좀 강하고 활발해야지. 활기 있게 학교도 가고 사람도 좀 만나고’ ‘밝게 살아야지’ 등의 문구에서도 고인이 좀 더 힘내길 바라는 모친 정 씨의 마음이 묻어난다. 또한 ‘너만 믿고 살고 있는 나는 가슴이 아프다’ ‘진영아! 답답하다. 한없이 슬프고 허망하기만 하다’ ‘엄마는 한없이 울고 싶다’ 등의 문구에선 모친 정 씨 역시 최근 너무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처럼 정 씨가 몇 통의 편지를 고인에게 보낸 까닭은 고 최진영과의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편지들에서 ‘진영아! 내가 너와 마주 앉아 얘기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구나’ 등의 표현이 목격된다. 우울증과 스트레스 등으로 힘겨워하던 고인은 어머니와도 거의 대화하지 않고 지내왔던 것으로 보인다. ‘요즘 너를 보면 내 마음이 불안하다’는 문구도 눈에 띈다. 이런 불안감이 현실이 된 탓인지 모친 정 씨는 장례 3일 내내 혼절을 거듭하며 고통스러워했다.
고 최진영이 자살을 앞두고 상당히 힘들어 했다는 부분은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고인은 자살하기 직전에 여러 지인들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대부분 힘겹다는 내용이었다. 고인의 지인인 한 연예관계자는 “얼마 전에 같이 술을 마시면서 힘들다기에 더 힘내라고 얘기해줬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다니 안타깝다”고 얘기한다.
▲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을 통해 활동을 재개했던 최진영. 아래 사진은 3월 29일 강남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던 최진영의 빈소. | ||
그 누구보다 가슴 아픈 이는 역시 고인의 모친 정 씨와 목을 맨 고인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대학후배 정 아무개 씨다. 이날 오전 전화 통화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후배 정 씨는 낮 12시 30분경 모친 정 씨에게 전화해 ‘오빠가 좀 이상하다’고 얘기한 뒤 집 근처 커피숍에서 정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나 무슨 얘길 나눴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힘겨워하는 고 최진영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상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고인은 두 사람이 이런 얘길 나누는 동안인 3월 29일 낮 1시에서 발견된 2시 14분 사이에 세상을 떠났다.
유서로 보이는 글에서 고 최진영은 ‘언젠가는 다 버리고 떠날 것이며, 죽음도 고통도 다 버리고 떠나갈 것’이라 얘기했다. 그렇게 고인은 생전에 그 누구보다 사랑했고 의지했던 누나 곁으로 갔다. 부디 고인이 진정 죽음도 고통도 다 버리고 편히 영면하길 빈다.
혼담 오간 여성 누구
모친이 직접 결혼 권유해
고 최진영에게 결혼 얘기가 오간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이 고인의 모친 정옥숙 씨의 편지를 통해 확인됐다. 편지에서 모친 정 씨는 ‘어떻게든 그 아이랑 결혼을 해라.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 같다’고 얘기하고 있다. 부분 부분의 내용만 확인되는 다른 찢어진 편지에서도 결혼을 권유하는 내용이 발견된다. 마흔을 눈앞에 둔 아들에게 결혼을 권유하는 것은 당연하고 별다를 것 없는 내용이지만 ‘그 아이’라며 대상을 지칭해 놓은 부분이 눈길을 끈다. 결국 누군가 모친 정 씨가 결혼을 권유할 만큼 가까운 여성이 고 최진영의 곁에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결혼 얘기가 오간 여성은 누구였을까. 가장 관심을 모으는 대상은 최초 발견자이자 신고자인 대학 후배 정 아무개 씨(여·22)다. 고인과 통화가 되지 않자 집으로 전화해 모친 정 씨와 통화하며 ‘오빠가 좀 이상하다’고 얘기한 점, 모친 정 씨를 집 근처 커피숍에서 만난 점, 함께 집에 온 뒤 모친 정 씨의 권유로 혼자 고인의 방에 올라간 점 등을 놓고 볼 때 단순한 선후배 사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고인의 한 지인은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면서 “내가 듣기론 정 씨가 진영이한테 영어를 가르쳐줬다고 한다”고 얘기한다. 정 씨가 고인의 영어 개인교사였다면 고인 사망 당일의 행동들 역시 연인이 아니더라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로 볼 수 있다.
정 씨가 대학 후배라는 부분도 의아하다. 고 최진영은 09학번으로 대학후배라면 올해 3월에 입학한 10학번이다. 오리엔테이션 등에서 만났다고 해도 서로 알고 지낸 지 한두 달 밖에 안됐다는 얘기. 게다가 고인은 이번 학기 들어 학교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