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우면서 커피도 한잔 할 수 있는 ‘스모킹 카페’가 등장해 주목을 끈다. 운영자 황세원 씨는 “보건복지부 문의를 거쳐 허가를 받은 합법 흡연공간”이라고 강조한다. 고성준 인턴기자
“요새는 흡연자들은 ‘죄인’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본인은 물론이고 타인의 건강을 해치는 위험한 존재.”
서울 지하철 신림역 인근의 한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던 조 아무개 씨(35)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푸념을 늘어놨다. 지인을 기다리는 중이었던 그는 담배 피울 곳이 마땅치 않아 10분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조 씨는 “실내에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없으니 길거리에 꽁초가 버려진 곳을 찾아다니면서 피운다. 보통 대로변에서 떨어진 골목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서 있던 곳은 버려진 꽁초가 수북했다. 하수구는 담배꽁초로 막힌 듯 빼곡했다.
이 골목 안 주택가에 사는 한 주민은 담배연기와 꽁초 때문에 구청에 수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소용이 없다고 한다. 그는 “쓰레기통을 설치할 수도 없으니 무단 투기가 늘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근처 음식점 운영자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담배 연기가 흘러들어오는데, 영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피우지 말라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시나 구에서 설치한 흡연 부스 근처도 흡연자와 비흡연자들의 불만은 높기만 하다. 부스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시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한 아무개 씨(40)은 “흡연 부스에 두세 명만 들어가서 담배를 피워도 연기 때문에 숨을 쉬기도 힘들다. 들어갔다 나오면 머리와 옷에 담배 냄새가 배어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근처를 지나는 시민은 “이곳을 지날 때면 코를 막고 다닌다. 기침을 하고 눈치를 줘도 모른 체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쌓여만 가는 불만은 정부의 금연구역 확대 정책이 시행된 이후 인구밀집도가 높은 모든 지역이 안고 있는 난제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울 곳을 찾아 헤매다 길거리로 나오고, 비흡연자들은 담배 연기와 냄새에 얼굴을 찌푸린다. 그러는 동안 거리엔 꽁초와 침 자국은 쌓이고 흩어져 간다.
지난 2012년 12월 8일, 국민건강증진법 시행으로 점포 면적이 150㎡ 이상인 음식점에서의 흡연이 전면 금지됐다. 지난 2014년 1월부터는 100㎡ 이상인 음식점으로 제지 대상이 확대됐고, 2015년 1월부터는 모든 음식점과 소규모 호프집, 커피 전문점 등에서 흡연이 전면 금지됐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대로변, 공원, 지하철 출구 등의 공간에서도 흡연을 금지했다. 늘어나는 금연구역에 비해 흡연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길거리에서 흡연자와 비흡연자들은 ‘눈치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불만이 높아지는 사이에서 생겨난 신종 업소가 있다. ‘스모킹 카페’, 즉 흡연방이다. 지난해 11월 초, 경기도 용인의 한 대학가 앞에서 처음 문을 연 이 카페에선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거나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이미 성행하고 있던 ‘안티 카페’와는 다르다. 안티 카페는 커피나 음식 값을 지불하는 대신 이용 시간만큼의 비용을 내야 하지만, 이곳은 별도의 ‘입장료’도 없다.
실제로 지난 19일 기자가 찾은 스모킹 카페에선 시민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고, 테이블엔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건물 내 흡연은 불법’이란 최근의 상식은 이 공간에선 통하지 않았다. 매장 안에는 음식 진열대나 메뉴판은 없었다. 커피 전문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계산대와 관리자도 없었으며, 주방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매장 한편에 자판기 3대만 나란히 설치돼 있을 뿐이었다.
고성준 인턴기자.
이 공간에서 흡연이 가능한 것은 스모킹 카페가 ‘식품자동판매기영업’으로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증진법을 보면, 휴게음식점에 흡연실 설치는 허용하지만 의자와 탁자와 같은 영업 설비는 구비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흡연실이라도 자리에 앉아 음료를 마시는 것은 영업의 연장으로 보고 있어, 담배를 피우면 범법 행위가 된다.
그런데 식품자동판매기영업은 다르다. 음료나 과자 등을 제조·서빙하는 게 아닌 자판기에서 구매하기 때문에 휴게음식점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강제하지는 않고 있어, 흡연이 가능한 일종의 무인 카페라고 보면 된다. 법리상 영업장 전체를 흡연실로 운영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스모킹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황세원 윈&윈 코리아 총괄사업본부장은 “미리 보건복지부에 질의해 ‘흡연실 내부에서는 자판기 설치가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고 허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스모킹 카페가 ‘법의 사각지대를 노린 편법 영업’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황 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대형 쇼핑몰이나 대기업 사옥 흡연실에 자판기를 설치해 둔 것과 같다. 그 공간을 확장시킨 것으로 보면 된다”며 “기존에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연 정책에 따랐을 뿐, 합법적으로 흡연 공간을 마련할 방안에는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랜 기간 법리적으로 검토했고, 보건복지부와 구청, 보건소 등에 수차례 질의한 끝에 정식 허가를 받았다. 편법 영업이나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게 아니라, 발상의 전환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더욱 눈길을 끄는 부분이 ‘합법적으로 흡연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이 장애인 복지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사단법인 장애인복지협회 본부장이기도 한 황 씨는 “금연 구역이 확대되면서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이 대부분 건물 옥상이나 외부로 옮겨졌다. 건물을 오가기도 어렵고 문을 여닫기도 힘든 장애인들의 접근이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라며 “법을 어기지 않고도 장애인들이 보다 쾌적하고 편하게 흡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어 “자판기 사업은 이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수익 모델로 생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스모킹 카페는 장애인복지협회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 카페는 협회에서 따로 세운 법인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장애인협회에서 자판기와 음료 등의 사업을 하고 있는데, 스모킹 카페는 협회 측과 거래를 통해 유통을 줄이고 보다 저렴하게 물품을 가져온다. 대신 수익금의 대부분은 협회에 기부를 하고 있으며, 기부금은 장애인을 위한 전동 휠체어 제공, 일자리 창출 사업 등에 쓰이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스모킹 카페를 ‘창업 아이템’으로 확장하고 있고 한다. 3년간 커피 브랜드 체인점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황 씨는 “커피 전문점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며 “커피 브랜드 체인점이라도 운영하면 가맹비와 로열티, 인건비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많은데, 흡연이 금지되면서 적자에 허덕이다 문을 닫는 곳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실제로 스모킹 카페 체인점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매출이 급격히 하락해 폐점을 고려하는 곳이 많다. 황 씨에게 체인 문의를 해온 부산의 한 커피전문점 사장은 “안락한 소파가 있고 흡연도 할 수 있어 그동안 고객들이 많이 찾았는데, 흡연이 금지된 이후 매출이 급격히 하락했다”며 “업종을 바꾸지 않고도 매장을 살리고 싶다”고 전해왔다고 한다. 서울의 한 건물주는 “소유하고 있는 건물 양 옆에 브랜드 커피 전문점이 자리해 있는데, 사람들이 커피 전문점에서 나와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며 “전문점에 몇 번을 말해도 소용이 없어 차라리 이곳에서 편하게 피우라고 하고 싶다”며 문의를 해왔다.
스모킹 카페는 최근 인천에 2호점 개점을 앞두고 있다. 부산과 서울 등에도 개점을 검토하고 있다. 향후 개점할 체인점에는 자판기 커피 특성상 상대적으로 커피 맛이 떨어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좋은 원두를 공수하고,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기계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황 씨는 스모킹카페가 흡연자들뿐만 아니라 비흡연자들에게도 반응이 좋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는 “나도 흡연자이며, 아이 둘이 있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흡연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에도 공감하고, 이들이 길거리로 나와 비흡연자들에게 간접흡연 등 피해를 주는 것도 이해한다”며 “흡연자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넓고 쾌적한 곳에서 편하게 흡연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좋은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전면 실내금연 1년 흡연실 편법운영 백태 “과태료 내드릴게요 담배 피러 오세요” 음식점이나 커피 전문점 등 전면적인 실내 금연정책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단속을 피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술집으로 홍보하며 교묘하게 편법 영업을 하는 업소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담배 피울 수 있어요?”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부근의 ‘흡연가능’이란 문구를 담은 약 2m 크기의 현수막을 걸어 놓은 주점이 있다. 이곳을 찾은 한 시민이 종업원을 향해 물었다. 이 주점은 실내 한쪽에 ‘흡연부스’를 설치했다.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돼 있어, 테이블과 의자가 없는 흡연실에서만 흡연할 수 있다. 해당 술집 종업원은 “최근에는 현수막까지 걸어두고 담배를 피울 수 있다고 안내해야 손님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주점과 음식점이 모여 있는 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최근 겉모양과 제조·판매하는 음식과 주류를 보면 일반 음식점이지만, 자유롭게 담배를 피울 수 있다고 홍보하는 곳이 늘고 있다. 강남의 B 주점은 ‘담배자유’라는 안내판을 입구에 걸어두고 “자유롭게 흡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 홍보했다. 무대가 설치돼 있어 술을 마시고 춤을 출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유흥주점으로 등록된 이 술집은, 바뀐 금연정책과 관계없이 실내에서 흡연할 수 있다. B 주점과 같은 ‘흡연 주점’은 정부가 유흥업소와 당구장 등에 대해서는 아직 흡연을 허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편법 영업을 하고 있다. 흡연 주점의 등장은 흡연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사실상 이 같은 주점은 현행법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현행 지방세법상 일반음식점이 아닌 유흥업소(유흥주점·단란주점 등)로 등록하면 중과세 대상이 된다. 재산세는 일반건물 세율(0.25%)의 16배인 4%, 취득세는 일반음식점(4%)의 3배인 11~12%가 부과된다. 그런데 유흥주점은 일반음식점에 비해 높은 세율이 적용된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극히 일부만 중과세 대상이다. 유흥주점에 중과세가 부과되는 경우는 ▷면적이 100㎡ 이상이고 형태가 무도유흥주점(나이트클럽)인 경우 ▷면적이 100㎡이면서 룸이 5개 이상 ▷객실 면적이 전체 면적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접대부 고용 업소 등이다. 유흥주점 허가를 받은 뒤에도 일반음식점과 다름없이 개방형으로 운영하거나 노래방으로 운영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영업이 가능하다. 특히 업소 입장에서는 중과세 조건만 피하면 바뀐 국민건강증진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흡연 술집’을 떳떳하게 운영할 수 있다. 유흥주점 허가를 받는다고 해서 영업형태와 내부 인테리어 등을 강제할 수 없다. 영업을 제재할 법적 근거도 미비한 상태다. 한 구청 관계자는 “유흥주점 허가에 맞게 운영한다면 어떤 형태로 운영하든 제재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며 “대신 유흥주점은 일반음식점보다 소방설비 구비 등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막무가내로 흡연을 허용하는 ‘반짝 주점’도 있다. 홍대의 한 주점 관계자는 “최근까지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해 놓고도 ‘자유롭게 흡연할 수 있다’고 홍보한 업소가 있었다. 3개월 반짝 영업을 하면서 호황을 누리다가 민원, 단속이 시작되자 사업을 접고 떠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손님에게 부과되는 과태료를 대신 내주면서까지 흡연을 가능하게 하는 업소도 있다. 한 주점 업주는 “단속에 걸리면 일단 손님들에게 벌금을 내라고 말한 뒤, 나중에 갚아준다”고 말했다. 업주는 적발 시 적발횟수에 따라 170만~55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되지만, 손님의 경우 1회 적발 시 10만 원을 내면 된다는 점을 이용한 편법이다. 이 업주는 “인근 업소는 금연 규정을 철저히 지켰더니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며 “차라리 손님에게 부과된 과태료를 돌려주는 쪽이 싸게 먹힌다”고 귀띔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