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서도 대회 초반 특히 집중 조명을 받는 팀은 다름 아닌 A조의 러시아다. 러시아 대표팀 선수들이 대회 기간 중 대형 브로마이드 형식으로 제작된 부인과 애인들의 누드 사진을 선물로 받아 화제가 된 것. 러시아 대표팀 부인과 애인 9명이 ‘이 사진을 보고 힘내서 꼭 우승하라’는 절실한(?) 메시지를 담아 옷을 벗은 것이다.
지난 12일 대회 개막일에 맞춰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를 통해 공개된 이 사진은 축구 열기에 빠진 유럽에 최고의 화제 거리로 떠올랐고 급기야 큰 대회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선수들의 ‘섹스 허용’문제를 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사실 축구팬들은 오랫동안 진행되는 대회 기간 중 선수들에게 어느 정도의 금욕이 요구될 것인가에 호기심 어린 시각이 많았다. 따라서 대회가 열리면 감독들은 대회 기간 중 선수들에게 섹스를 허용해야 할지 말지를 놓고 골머리를 앓게 된다. 이번 유로2004에서도 각국 코치진이 대회 기간 중 섹스 허용 여부를 놓고 고심한 흔적들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팀의 우승을 위해서 ‘섹스 코드’를 ‘당근’과 ‘채찍’의 양면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우선 러시아와 같은 조의 개최국 포르투갈은 최고의 ‘금욕 팀’으로 꼽힌다. 이미 포르투갈 선수들은 감독으로부터 대회 기간 중 ‘섹스 절대 불가’ 통보를 받은 상태다. 평소 선수 관리에 철저하기로 소문난 스콜라리 감독은 “오랜 기간 섹스 없이 지낼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도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이성이 없는 동물”이라며 성과 관련된 행위의 금욕을 강조했다.
D조의 ‘전차 군단’ 독일도 금욕을 강조하는 팀이다. 독일 대표팀의 담당 의사는 선수들에게 경기 시작 전까지 성관계를 하지 말고 대신 물을 많이 마실 것을 조언했다. 경기 전의 섹스는 육체적, 신체적 긴장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고 말한 것.
C조의 이탈리아 역시 대회 기간 중 성행위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에 이탈리아의 트라파토니 감독은 예선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선수들이 부인이나 애인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한 시간으로 제한했다. 그러면서도 트라파토니 감독은 ‘섹스’를 우승을 위한 달콤한 ‘당근 카드‘로 들고 나왔다. “만일 이탈리아 팀이 준결승에만 진출하면 배우자나 여자 친구와 하루 종일 보낼 수 있는 특별 휴가를 주겠다”고 말해 선수들을 독려한 것. 하지만 여성 편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금욕 작전이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갈 지는 미지수다.
반면 B조의 크로아티아 팀은 “섹스를 막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대회 기간 중 선수들에게 섹스를 허용할 뜻을 내비쳐 대조를 이루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오토 바리치 감독은 “섹스를 막으면 선수들이 무슨 재미로 사느냐”며 “대회 기간 중 시합이 끝나면 선수들에게 하루 동안 자유 시간을 줘 아내나 애인을 만나게 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조의 프랑스와 잉글랜드 또한 대회 기간 중의 섹스에 대해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전통적으로 선수들의 성행위 문제와 관련해선 자유스런 입장을 취해왔고 잉글랜드 역시 “선수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이처럼 섹스가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각국의 사령탑에 따라 긍정론과 부정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긍정하는 쪽에서는 적절한 성행위가 스트레스를 줄이고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다 준다는 입장인 반면 부정론은 섹스에는 매우 큰 에너지가 소모되므로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떠할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준으로 한다면 ‘금욕 팀’의 압승이라 말할 수 있다. 당시 공개적으로 섹스를 허용했던 국가는 남아공, 프랑스, 폴란드, 포르투갈, 스웨덴 정도. 하지만 스웨덴을 제외한 4개국은 모두 예선 탈락이란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으며 그나마 16강에 진출한 스웨덴의 경우도 16강전에서 세네갈에 패해 8강에 오르지는 못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선수의 아내와 애인들을 훈련장에 동행시키는 등 드러내놓고 ‘즐기다’ 단 한 골도 뽑아내지 못하는 졸전 끝에 예선 탈락이라는 세계적 망신을 당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반면 철저하게 금욕생활을 강조했던 벨기에, 이탈리아, 브라질, 일본 등은 모두 16강에 진출했다. 게다가 스콜라리 감독이 이끌던 브라질 팀이 우승을 차지했으니 금욕주의를 철저히 지킨 팀들의 압승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유로2004에서 포르투갈의 사령탑 스콜라리 감독이 금욕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더욱이 프리섹스를 표방한 러시아와 금욕주의를 주장한 포르투갈의 대진으로 관심을 모았던 경기에서 포르투갈이 2-0으로 승리함으로써 스콜라리 감독의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경기 전 섹스가 경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찾아 볼 수 없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선수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서울대학병원 내과 이상민 전문의는 “섹스 한번으로 소비되는 열량은 500m를 전력 질주한 정도다. 탄탄한 체력을 가진 선수들이 이만한 열량 소비로 경기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오히려 예비 운동의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말해 섹스로 인한 경기력 저하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축구 국가대표팀 주무인 김대업씨는 “섹스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대회에서 선수들에게 섹스를 허용하게 되면 선수단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 있다”며 문제의 본질은 정신력에 있다고 말했다.
섹스 허용은 결국 선수들에게 대회 기간 중 외출과 외박을 허락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럴 경우 감독의 선수 장악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것. 국가 대표팀 선수라면 자신의 사생활은 알아서 컨트롤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춰야 하겠지만 일부 선수들의 돌출 행동이 선수단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잉글랜드의 ‘축구 영웅’ 베컴이 유로2004를 앞두고 부인 빅토리아와 같은 숙소를 잡았다가 선수단 숙소로 복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멤버로 활약했던 권정혁(25·울산 현대)도 “대회 기간 중 자위행위도 할 수 있고, 몽정도 할 수 있다. 섹스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면 자위행위도 금지해야 할 것”이라면서 “감독의 입장에선 선수 관리차원에서 섹스 허용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고 말해 김대업 주무의 말에 힘을 보탰다.
결국 섹스 허용 문제는 선수단 분위기 문제와 결부시키지 않을 수 없는 일. 하지만 호사가들은 섹스 자체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큰 대회가 치러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두가 ‘섹스’인 것이다. 더욱이 베컴, 지단, 토티 등 세계적인 섹스 심벌들이 등장하는 이번 유로2004에서 섹스 문제가 화제 거리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프리섹스’와 ‘금욕주의’ 팀 간에 벌어질 한판 승부, ‘섹스 유로2004(?)’에선 과연 어떤 팀이 승리를 거두게 될까. 유로 2004를 즐기는 색다른 관전 포인트다.
최혁진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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