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6월9일 베트남과의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전을 마치자마자 설기현과 함께 강원도로 바람처럼 사라졌던 송종국은 모처럼 자연에 파묻혀 세상과의 연락을 끊고 낚시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고 한다. 정확히 일주일 만에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온 송종국은 자신이 홍보대사로 있는 강남의 라마다 서울 호텔에서 기자를 만나 훨씬 진지하고 사려 깊으며 인생살이의 다양한 맛들로 버무려진 멘트를 쏟아내 ‘상투’ 튼 남자의 실체를 확인케 해주었다.
더 이상 자신을 지난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의 피구를 상대했던 선수로 인식하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네덜란드리그에서 네덜란드 프로팀은 물론 유럽의 각국을 상대하며 매주 월드컵을 치르고 있다는 송종국을 ‘리얼토크’에서 만나본다.
강원도에서 맛본 낚시가 어지간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송종국은 강릉과 속초 등을 돌며 동해의 푸른 물결 속에서 물고기들과 친밀한(?) 유대 관계를 맺었다고 자랑이 한창이다. 바다낚시가 스릴과 파워,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을 느끼게 해준다면 민물낚시는 아기자기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에다 ‘족대’의 손맛을 완성시킨다는 나름대로의 체험담을 설파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만끽한 자유와 여유 있는 시간들에 흠뻑 취해 있었다.
2002월드컵 직후 네덜란드에 진출할 때만 해도 송종국의 어깨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월드컵을 통해 세계 강호들과 ‘맞장’을 뜬 경험이 그의 기량과 맞물려 충만한 자신감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무서울 게 없었어요. 외국의 어느 팀을 가더라도 성공할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그 중에서도 네덜란드리그는 특히 자신 있었죠. 그런데 막상 부딪혀보니까 자신감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정확히 6개월이 지나면서부턴 한국 생각이 간절해지더라구요.”
특히 그를 힘들게 만든 건 다른 데 있었다.
“부상이 절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어요. 처음에 발목부상을 입고 3개월가량 쉴 때만 해도 그런 대로 괜찮았어요. 팀 닥터가 재활 치료를 열심히 하면 이상 없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복귀전에서 아킬레스건을 또 다치며 다시 운동장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심각해지더라구요. 컨디션 저하에다 자신감마저 잃고 말았으니까요.”
송종국의 축구인생에서 부상은 그와 큰 인연을 맺지 않았었다. 당연히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쉬는 쓰라린 경험도 네덜란드에서가 처음이었다.
“사실 많이 힘들었어요. 월드컵의 영향도 컸죠. 엄청난 관심과 인기 속에 파묻혀 있다가 갑자기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니까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어요. 만약 포기했더라면 한국으로 돌아왔겠죠. 계속 몸을 만들어 간다면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어요. 몸만 회복되면 추락한 자존심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고 다시 도전해 보자고 결심했죠.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줬는데 특히 (설)기현이가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됐어요.”
월드컵 멤버들 중 송종국처럼 다양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선수도 없었다. 대부분 여자 연예인과의 스캔들이 주를 이뤘고 심할 때는 열흘 동안 3명의 각기 다른 상대와 열애중이라는 기사가 스포츠 신문 1면 톱으로 나간 적도 있었다. 물론 결혼 전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동안 스캔들과 관련해선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던 송종국이 편한 웃음을 지으며 옛 일을 회상했다.
“그 당시만 해도 전 대한민국의 영웅 대접을 받았어요. 어딜 가나 절 좋아해주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 일색이었죠. 그런 가운데 스캔들이 터지더라구요. 기분 좋았죠. 제 이름이 1면에 오르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어요. CF모델, 인기가수, 미스코리아 등 직업도 다양하더군요. 언제 그런 ‘사치’를 누려보나 싶어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상황을 지켜봤었죠.” 이름만 대면 쉽게 알 만한 인기 연예인들과의 스캔들 중 진짜와 가짜는 어느 것이냐고 물었다. 조용히 미소만 짓던 그가 머뭇머뭇 거리다 이렇게 말한다. “그 중에서 하나 정도는 진짜 아니겠어요?”
지난 6월15일은 결혼 1주년이 된 날이었다. 부산 아이콘스 시절 때 선수와 팬으로 만나 좋은 감정을 나누었던 김정아씨(21)와 3년간의 비밀 교제 끝에 웨딩마치를 올렸던 것. 그러나 송종국의 결혼은 일절 ‘예고편’이나 ‘소문’조차 없이 갑작스레 발표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함을 나타냈었다. 심지어 네덜란드에서 활약중인 박지성도 당시 송종국의 결혼에 대해선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던 것.
“아내의 나이가 어려도 생각이 깊은 사람이에요. 자주는 보지 못했지만 서로의 믿음을 잃지 않고 좋은 만남을 가진 덕분에 행복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 거죠. 항간에선 제 결혼을 두고 이상한 소문도 많았는데 여느 신혼부부처럼 알콩달콩 잘 살고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5일 유상철과 함께 송종국을 올림픽대표팀의 와일드카드로 선발했다고 발표했다. 인터뷰를 할 때만 해도 발표 전이라 송종국은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말 솔직히 밝혔다.
“와일드카드에 뽑힌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기회라 선발된다면 정말 잘하고 싶어요. 하지만 외국에선 우리나라의 이런 선택에 대해 좀 이해를 못하는 편이에요. 그들 눈에는 올림픽보다 아시안컵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특히 올림픽 출전 시기와 네덜란드 전기리그 시작이 맞물리는 바람에 소속팀 경기의 상당수를 포기해야 해요. 감독님이 새로 오신 터라 이런저런 적응 훈련이 필요한 상황에서 팀을 떠나 있게 돼 조금 걱정이 됩니다.”
쿠엘류 감독이 중도 하차한 뒤 송종국은 페예노르트 구단과의 인터뷰를 통해 2003~2004시즌을 마치고 페예노르트를 떠나는 베르트 반 마르베이크 감독을 한국의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추천한 적이 있었다. 송종국은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카리스마가 강하고 지도 스타일에서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분이셨어요. 페예노르트에서 거둔 성적도 무척 좋았구요. 공격 지향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분인데 직접 그분 밑에서 운동 생활을 해보니 우리나라 선수들의 축구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질 것 같더라구요. 용기를 내서 추천을 해봤지만 협회에선 아무 반응도 안보이던데요?”
결국 조 본프레레 감독이 새 사령탑에 앉게 됐는데 네덜란드 출신이라는 사실이 송종국한테는 긍정적인 ‘감’을 선사하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네덜란드 축구는 히딩크 감독이나 조 본프레레 감독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 때문. 송종국이 부상을 제외하고 좀 더 빨리 네덜란드 무대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랫동안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배운 축구 스타일과 네덜란드 축구가 별다른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 본프레레 감독도 히딩크 감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기대 심리가 깔려 있는 것.
송종국은 대표팀 경기가 벌어질 때마다 지적되는 골 결정력 부족에 대해선 현 대표팀에 황선홍 같은 타고난 골잡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단정 지었다. 황선홍만큼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슈팅력을 가진 선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건 누구 탓이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잘못 배운 탓이죠. 유럽은 철저히 약속된 플레이를 해요. 한 마디로 교과서 축구나 다름없죠. 그런데 한국은 뒤떨어지는 개인기에다 조직력까지 어설프다보니 베트남, 오만처럼 약팀을 만나도 쉽게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하는 거죠. 학원 축구를 클럽 시스템으로 바꾸고 눈앞의 성적에 매달리기보다는 10년, 20년 후를 겨냥한 장기적인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에요. 저 어렸을 때부터 나온 내용들인데도 여전히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참 서글플 따름입니다.”
‘취중토크’에서 ‘리얼토크’로 변신한 첫 번째 초대 손님으로 나온 송종국은 2년간의 네덜란드 생활에서 한층 변화와 발전을 이룬 모습이었다. 아직까지 목표를 이루진 못했지만 부상과 재기로 점철된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었다. 정말 ‘어른’이 된 송종국과의 해피 타임을 마무리할 즈음에 주인공은 이런 멘트를 날린다.
“네덜란드에 꼭 오세요. 거기선 ‘비어토크’도 가능해요. 그 나라에선 맥주가 음료수니까 음료수 마시며 ‘취중토크’를 하면 되겠네. 근데 언제 오실 거죠?” ‘주인님’만 그 해답을 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