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억 강남 주상복합 그녀에게 증여했다”
문제의 ‘연인계약서’가 세간에 공개된 것은 지난 2월 17일이다. 최근 22만여 명의 성매수자 기록이 담긴 성매매 리스트를 언론에 공개했던 여론기획업체 K 대표가 이를 언론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60대 중견기업 회장과 40대 갤러리 관장이 맺은 연인계약서는 상당한 파장이 불가피한 내용이지만 언론은 잠잠했다. 기본적으로 문제의 연인계약서에는 빈틈이 많다. 우선 정식 계약서는 아니다. 갑과 을에 이름만 기재돼 있을 뿐 갑과 을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계약 일시 등이 기재돼 있지 않다. 결정적으로 갑과 을의 사인도 없다. 정식 계약서가 아닌 계약서 초안 정도로 보이는 문건이다. 게다가 계약 연도는 2012년으로 돼 있는데 약정서에는 그 이전인 2011년 12월 31일까지 주식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시점도 잘 맞지 않는다.
연인계약서로 보이는 약정서에 등장하는 갑은 A 회장이며 을은 갤러리 관장인 B 씨다. 약정서가 언론에 공개되자 회사 측은 ‘허위사실 및 음해성 주장 유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회사 측은 “약정서는 당사가 작성한 것이 아니다. 이 약정서는 당사 계약 및 협약서 양식과 상이하다”고 밝히며 “증여세를 양도세로 표현하는 등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부당이득 목적 등 불순한 의도를 가진, 외부 비전문가가 위조한 문건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약정서에 담긴 내용대로 발생한 행위도 전혀 없다”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약정서에 담긴 내용은 무엇일까. 우선 약정서에는 갑이 을에게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동안 ‘양도세를 제외한 현금 50억 원을 지급한다’고 돼 있다. 3년 동안 총 150억 원이다. 또한 ‘갑은 을이 지정하는 위치에 미술관으로 사용하기 위한 빌딩을 구입 또는 설립한다. 비용은 200억 원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외에도 계열사 주식 10%를 지급한다’고 돼 있으며 ‘갑이 을이 지정하는 위치에 아파트를 구입한 뒤 리모델링하여 사용토록 한다. 구입비용은 27억 원, 리모델링 비용은 3억 원으로 제한한다’는 내용도 있다. 제한 범위까지 고려하면 380억 원에 주식 10%까지 포함된 엄청난 규모의 계약이다. 그리고 약정서에는 ‘2015년 10월 1일 이전에 을이 갑과 연인 관계에서 이별 시 을은 갑에게서 수령한 상기 조건에 해당되는 모든 조건 및 권리를 갑에게 반환한다’고 돼 있다. 약정서가 연인계약서로 보이는 결정적인 대목이다.
우선 150억 원의 현금이 오간 대목은 확인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주식 10% 지급의 정황도 포착되지 않았다. 미술관으로 사용하기 위한 건물 구입 또는 설립 비용 200억 원도 쓰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직접 방문한 갤러리는 문이 닫혀 있었다. 갤러리 직원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신은 지방 출장 중이라며 “관장님도 해외 출장 중”이라고 말했다. 갤러리는 작은 사무실 규모로 200억 원대 건물과는 무관하다.
다만 회사 측과 갤러리가 업무적인 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부분은 확인됐다. A 회장 명의로 갤러리에 보낸 확인서가 입수됐기 때문이다. 확인서에는 2011년 회사 측이 갤러리를 통해 미술작품을 구입할 계획으로 예산 100억 원을 책정했다고 돼 있다. A 회장의 사인이 기재돼 있는 정식 확인서다. 또한 갤러리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회사 측에 판매한 미술 작품 리스트도 확보했다. 이에 대해선 회사 측도도 인정했다. 회사 측은 “전국에 위치한 7개의 호텔 및 연수원과 사옥 등에 전시하기 위해 해당 미술품을 구입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힌 것. 그렇지만 이런 미술품 거래는 회사와 갤러리의 업무적인 관계를 입증하는 자료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부분이 고가의 아파트다. 그런데 여기서 수상한 부분이 등장했다. 서울 강남 소재의 한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를 A 회장이 B 씨에게 증여한 것. 해당 아파트는 A 회장이 지난 2010년 2월에 구입했으며 거래가액이 39억 1000만 원이다. 그리고 아파트는 2011년 5월에 B 씨에게 증여됐다.
물론 이 부분 역시 문제의 연인계약서로 보이는 약정서와는 다소 다른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약정서는 2012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해당 부동산 증여는 이미 2011년 5월에 이뤄졌다. 또한 약정서는 ‘갑이 아파트를 구입한 뒤 리모델링하여 을이 사용토록 한다’고 돼 있을 뿐 증여해준다는 내용은 없다. 따라서 부동산 증여 역시 문제의 연인계약서가 사실임을 입증하는 자료라고는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왜 A 회장이 B 씨에게 40억 원 가까이 되는 고가의 아파트를 증여해 준 것인지는 의혹으로 남는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회사와 관련된 부동산 거래가 아닌 회장님의 사적인 부동산 거래이기 때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문제의 연인계약서로 보이는 약정서는 한 소송에서 증거로 제출됐다. 문제의 소송은 회사 전 직원과 회사 사이의 민사소송이다. 준비서면에서 원고 C 씨는 “임직원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피고의 돈으로 B 씨가 재직하던 갤러리 미술 작품을 구입하고 연인계약서를 체결하려고 하는 등 도저히 기업가라 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연인계약서로 보이는 약정서와 확인증, 작품리스트 등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소송은 1심에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약정서를 언론에 공개한 K 대표는 “이는 C 씨가 회사 내부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것”이라며 “당사자들 서명이 없어 실제 성사 여부는 파악할 수 없지만 제3자가 형사처벌의 위험을 감수하며 위조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법원이 약정서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며 “약정서가 소송과 무관한, 허위 사실에 기반한 음해성 주장이라는 의견을 법원에 개진했고, 법원도 당사의 의견을 인정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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