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을) 두 개, 세 개 뚫어 놓고도 못 여는 거죠. 전문 털이(절도)범들은 한 번에 따고 범행 후 사라지는데, 이들은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김태욱 서울 광진경찰서 강력1팀장은 앞서의 절도단을 추적하는 과정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1월 초부터 같은 수법을 사용해 연이어 발생한 아파트 절도 범죄 19건 중 미수에 그친 경우가 11건이나 됐다. 심지어 절도단이 범행 과정에서 방 안에 있던 피해자와 맞닥뜨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절도 범죄는 미숙했고, 실수가 많았다.
절도단이 범행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됐다. 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실제로 이 절도단에는 ‘초보’ 절도범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미 경찰에 쫓기고 있던 총책 김 아무개 씨(52)와 이 아무개 씨(33)를 제외하고 나머지 절도단 2명은 전과가 없었다. 범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 다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실제로 검거된 절도단 중 한 명인 도 아무개 씨(26)의 경우, 그는 경찰 조사에서 “고졸에 특별한 기술도 없어 건축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빚으로 산 대형 트럭으로 건축 자재를 이곳저곳에 나르는 일을 했는데, 건설 경기가 점차 얼어붙으면서 일감이 끊겼다고 한다. 결국 빚만 수천만 원 남았지만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도 씨는 점차 늘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진 도 씨는 2월 초 “돈 되는 일이면 뭐라도 하겠다. 아무 일이나 시켜 달라”며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올린 글이었다. 도 씨의 절박한 호소에 ‘응답’한 것은 앞서의 절도단 총책 김 씨였다. 그는 도 씨에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 면접을 보러 서울에 오라”고 전했다. 도 씨는 김 씨의 말만 믿고 즉시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김 씨는 도 씨에게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주 5일 근무에 주당 500만~1000만 원을 벌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도 씨가 귀를 의심하기도 전, 김 씨는 말을 이어 나갔다. “불법적인 일이다. 아파트를 털러 가는 것”이라고. 김태욱 광진서 강력1팀장은 “일반 회사로 치면 이 대화는 면접의 일종이었다. 김 씨는 연락을 받고 온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범행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는 반응을 살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 씨에 앞서 몇 명이 이런 방식의 ‘면접’을 봤지만, 김 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포기하고 돌아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 씨는 달랐다. 그는 ‘아파트 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거나 포기하는 대신, 한숨을 쉬며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 씨는 도 씨에게 “동선만 잘 잡으면 된다. 경찰에 잡히지 않고 큰돈 벌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는 한 푼도 없이 상경한 도 씨에게 머물던 모텔 방 한 편을 내줬고, 곱창과 소주를 사주기도 했다. 여기에 앞서 도 씨처럼 인터넷을 통해 김 씨와 함께 ‘일’을 하고 있던 이 아무개 씨(33), 성 아무개 씨(26) 등의 이야기까지 들은 도 씨의 믿음은 점점 단단해져갔다.
이렇게 도 씨가 이틀 정도 머물자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김 씨는 본격적인 ‘직업 훈련(?)’에 돌입했다. 이들이 합숙하던 모텔에서 ‘범행 오리엔테이션’을 열고 범행 수법에 대해 교육을 하기 시작한 것. 김 씨는 절도단 3명에게 수동 드릴과 철사를 이용해 아파트 전자식 잠금장치(도어락)를 해제하는 ‘기술’을 교육했다. 드릴로 현관문에 구멍을 뚫은 뒤, 철사를 집어넣어 잠금 장치의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침입하는 수법이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머물던 모텔의 문을 뚫고 열어보는 ‘실습’을 하기도 했다.
이어 김 씨는 범행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이 씨와 성 씨는 일꾼(침입조), 도 씨는 안테나(망보기) 등으로 역할분담을 했다. 여기에 철저한 범행 행동규칙을 정하기도 했다. 총책 김 씨는 절도단에게 대포폰을 나눠주면서 “지급한 대포폰은 보고시에만 전원을 켜고 바로 끈다.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출근 보고, 정오에 밥 먹으면서 오전 범행 성공 여부 보고, 오후 3시에는 훔친 품목 보고, 5시께엔 접선 장소로 이동, 물건 처분하고 배당금 정산 후 조기 취침한다”고 지시했다. 또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택시를 3번 갈아타고 접선장소로 이동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범행을 중단하거나 임의로 탈퇴할 경우 주민등록증 사본을 경찰서에 팩스로 발송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광진서 김 팀장은 “김 씨는 절도단에게 ‘일이 잘못될 경우 변호사를 선임해 주겠다’며 부모와 가족 연락처, 개인정보 등을 달라고 한 뒤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범행 후 택시를 타고 접선 장소로 향하는 절도단. 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실전’에 투입된 절도단은 인터넷으로 고층 계단식 아파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도심에서 벗어나 외곽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위주였다. 또한 이 가운데 한 층에 하나만 있는 집, 또는 마주보는 집이 없는 곳을 ‘표적’으로 삼았다. 이런 집은 대낮에도 범행이 쉽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들은 이 같은 수법으로 서울과 경기, 인천 등의 아파트 19곳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고, 지난 1월 15일부터 2월 5일까지 단 20여 일간 1억 6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
서울‧경기에서 아파트 절도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이들을 쫓는 경찰서도 13곳으로 늘었다. 하지만 절도단이 한 번 범행했던 지역은 다시 가지 않는 데다 택시를 3번씩 갈아타면서 접선 장소를 향한 탓에 도주 경로와 거점을 파악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광진경찰서 역시 앞서 총책 김 씨 관련 첩보를 먼저 입수했지만, 그는 사건 현장에 나오지 않고 ‘직원’들만 범행을 저질러 온 탓에 추적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광진경찰서 강력 1팀은 CCTV로 이들을 얼굴을 특정하고 통신추적 등을 통해 수사망을 좁혀 나갔다. 설 연휴도 반납하고 CCTV를 분석해서 예상 도주와 거점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수사를 이어나가다 경기도 부천 인근에서 절도단이 한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월 15일 밤 12시 15분, 절도단 3명을 검거했다. 앞서의 광진서 김 팀장은 “총책 김 씨는 회사의 ‘오너’답게 방도 따로 썼다. 출‧퇴근 보고시에만 연락을 주고 받았기 때문에 절도단이 검거돼도 김 씨는 모르고 있었다. 절도단 검거 이후 김 씨에게 출‧퇴근 보고하면서 접선 장소를 알아내 이날 오후 4시 45분 추가로 검거했다”고 말했다.
범행에 사용된 수동식 드릴 등 절도단 검거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품. 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경찰은 지난 24일 김 씨와 이 씨에 대해 상습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하고 성 씨와 도 씨는 불구속 입건했다. 장물인 줄 알면서도 훔친 물건을 사들인 금은방 업자 홍 아무개 씨(68)도 장물취득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은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로 조사할 예정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