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보 김태영을 잇는 차세대 수비수로 손꼽히고 있는 김진규. 그는 다혈질에 까칠한 성격으로 유명하지만 최근 주변에서 “성질 많이 죽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격 개조’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홍명보, 김태영의 뒤를 잇는 한국의 대표 수비수 김진규(22·전남 드래곤즈). 튀는 성격 탓에 칭찬보다는 욕을 더 많이 먹는 선수다. 그러나 어느덧 그 비난마저도 넉넉히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를 가지게 됐다. 아시안컵과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축구 수비라인의 대들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를 만나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싸가지 있는’ 운동 선수를 만난 것 같아 뿌듯한 행복감이 넘쳐흘렀다.
# 드디어 철 들었다?
김진규의 별명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경기장 안에서 특유의 강한 파워를 바탕으로 한 몸싸움이 장난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판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거친 항의도 불사한다. 2004아시안컵축구대회 이란과의 8강전에서 상대 벤치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며 ‘××’했던 일화는 지금까지도 동영상이 나돌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다.
“처음 대표팀에 들어갔을 때는 의욕만 앞섰어요.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충돌을 빚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됐어요. 그런 ‘막가파식’ 스타일이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요즘에는 싸우다가도 그냥 돌아서요. 더 하다간 퇴장이니까. 주위에선 ‘김진규 성질 많이 죽었다’면서 재미있어 하는데 나 혼자만이 아닌 선수들, 팀을 위해선 제 성질대로 못 하는 거죠.”
# 좌충우돌 과거사
18세 때 청소년대표팀에 처음 뽑혔던 김진규가 절친한 친구 백지훈(수원 삼성)이 청소년대표팀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단으로 대표팀을 나온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평생 소원이었던 대표팀 발탁보다도 친구가 더 중요했다는 김진규에게 진짜 이유를 물었더니,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재미없었다”라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대답을 내놓았다.
“제가 그땐 ‘똘끼’가 있었나봐요. (백)지훈이가 없으니까 대표팀 생활이 너무 갑갑한 거예요. 짐 싸놓고 선수들 밥 먹으러 간 사이에 무작정 숙소를 나와 버렸어요. 박성화 감독님이 엄청 황당하셨을 거예요. 그래도 나중에 다시 불러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 지난 6일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2차 예선경기 전 김진규. 에스코트 꼬마에게 비를 막아주는 모습이 퍽 다정해 보인다. 뉴시스 | ||
“못 나간다고 버텼어요. 내가 왜 나가냐면서. 날 내보내려면 상대 선수도 내보내 달라고 항의했죠. 저 때문에 경기가 15분 이상이 지연됐어요. 나중에 감독님이 ‘김진규, 너 빨리 못 나왓!’하시며 고함을 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선생님이 항의 좀 하세요. 저 못 나가욧!’ 감독님은 ‘알았다, 일단 나와라’하셨지만 계속 버텼어요. 결국 선수들한테 이끌려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유니폼 벗어던지고 심판들이 앉아 있던 탁자를 뒤엎어 버리고, 하여튼 난리 아니었습니다. 축구 안 할 생각이었어요. 할 생각이었으면 그런 짓 못하죠. 그 즉시 감독님한테 엄청 두들겨 맞았는데 감독님은 오히려 저 때문에 징계 받으셨어요.”
‘착하고 순한’ 김진규로의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는 그에게 지난 과거들을 나열하는 일은 그동안의 수고가 말짱 도루묵이 될 것만 같다. ‘인생 자체가 파장’이라는 김진규의 축구 인생이 아득하면서도 재미있고 재미있으면서도 순수하게 다가온다.
# 2006월드컵의 의미
생애 처음으로 월드컵 대표팀에 뽑혔던 김진규. 대표팀 최종 엔트리 발표를 한 달 앞두고서부터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실신 직전까지 갈 만큼 초긴장, 초예민 상태였던 그는 소원했던 대로 월드컵대표팀 수비수 자리를 꿰찼지만 독일월드컵이 열리는 동안엔 이호와 함께 ‘공공의 적’으로 불리며 가장 많은 비난과 안티 팬을 갖게 된다.
“너무 많은 욕을 먹어서 배가 부를 정도였어요. 저 정말 최선을 다했거든요. 홍명보 코치님이 맡던 포지션이라 부담만 100만 배 갖고 죽기 살기로 뛰어다녔어요. 누군 실책, 실수하고 싶겠어요? 이호랑 저랑 마치 ‘죄인’ 취급을 받았지만 전 그 월드컵을 통해 너무나 많은 걸 배웠습니다. 프랑스전 때는 벤치에서 경기를 봤는데 프랑스 선수들의 움직임이 예술이었어요. 축구를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다고 절감케 했던 경기였죠.”
김진규는 월드컵 이후 여자친구 홍진영과의 교제를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공개했다. 여친이 평범한 여자가 아닌 신인 연기자라는 사실이 새롭게 알려지면서 김진규-홍진영 커플의 교제는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최근 김진규는 역시 미니홈피를 통해 두 사람의 결별을 밝혔다. 가수로 데뷔하길 원하는 홍진영을 위해 ‘열심히 해서 성공해라’는 격려 메시지까지 남기며 쿨하게 정리했다. 결별 후 그 이유에 대해 다양한 추측들이 나돌았는데 김진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2년간 교제했던 사람이에요. 마음씨 착하고 똑똑하고 나무랄 데 없는 친구였죠. 절 만날 때만 해도 연예계 쪽 일을 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연예계에 발을 내딛게 됐는데 그 일을 시작하면서 자꾸 다투게 됐어요. 제가 의외로 보수적인 사고를 갖고 있어 가수 데뷔를 원하는 여자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기 힘들었습니다. 내 여친이니까 그냥 나만 바라보길 바라는 욕심이 컸다고나 할까. 제가 조금 더 이해하고 한 발 물러섰더라면, 양보했더라면, 헤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후회요? 아뇨. 처음 한동안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경기도 잘 풀리고 마음도 많이 안정됐어요. 중요한 대회들이 많아서 지금 한눈 팔 시간이 없는 게 다행입니다.”
헤어지고 나서 몇 차례 문자는 주고받았지만 지금은 서로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한다.
# 스물둘, 남은 이야기
주빌로 이와타에서 3년여의 일본 생활을 했던 김진규. 유럽 진출과 국내 복귀, 그중에서도 수원 삼성의 ‘러브콜’을 제치고 친정팀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한 김진규는 스물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만큼 할 일도, 갈 길도, 목표도 많고 높기만 하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마치 전지훈련 가는 기분이었어요. 마냥 들뜨고 신났었죠. 그러나 정작 현실과 맞닥뜨린 다음부턴 6개월가량 고독과의 전쟁을 벌였습니다. 방 안에 누워서 천장 보고 있으면 ‘내가 여기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한가득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재미있었어요. 일본에서 많은 걸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유럽 진출도 모색했고 실제로 절 필요로 하는 팀도 있었지만 잠시 한국에서 호흡 고르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 나이 겨우 스물두 살이잖아요. 한때 수원으로 간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친정팀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고 그렇게 했던 거죠.”
어린시절 배추장사가 꿈이었던 김진규는 홍명보 코치의 선수 때 플레이를 보면서 축구 선수로의 희망을 키워왔다고 한다. 홍 코치가 신는 신발을 한 번이라도 신어본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만큼 김진규는 홍명보 코치를 닮고 싶어 했다.
“가끔은 꿈인가 싶어요. 그렇게 좋아했던 선수가 절 직접 가르쳐주시니까요. 솔직히 홍 코치님만큼 잘해낼 자신은 없어요. 그러나 그렇게 되도록 죽기 살기로 노력할 겁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