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보스턴의 TPC 골프장에서 ‘탱크’ 최경주와 만났다. 기자는 최경주와 클럽하우스로 걸어가면서 수많은 팬들이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기분 좋은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사진=소피 J. 신 프리랜서 | ||
8월 29일 현재 세계 상금 랭킹 3위, 세계 랭킹 8위. 한국, 아니 동양 선수가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든 것은 최경주가 처음이라는 역사적인 기록도 최경주와의 인터뷰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비록 도이체방크챔피언십 1라운드가 끝난 뒤 허리 통증으로 기권을 했지만 최경주가 PGA 투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충분히 가늠케 했던 PGA 투어 현장이었다.
드라이빙 레인지에 있는 많은 골퍼들 중 눈에 확 띄는 진분홍색 컬러의 셔츠를 입고 샷 감각을 다져나가는 최경주. 드라이빙 레인지 밖에서는 대회 날도 아닌데 갤러리로 참관한 어린아이들이 땡볕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모자에 사인을 받기 위해 최경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경주가 연습을 마치고 걸어나오자 저마다 ‘KJ!’를 외치며 모자를 내미는 갤러리들. 최경주는 너무나 익숙한 솜씨로 걸어가면서 손에 닿는 대로 그 많은 모자들에 일일이 사인을 해나갔다.
기자를 발견한 최경주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인터뷰 장소로 정해진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클럽하우스에는 미디어 출입이 금지돼 있었지만 최경주가 대회 관계자에게 부탁을 하고 그 관계자가 직접 입구까지 나오는 등 복잡한 절차 끝에 클럽하우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최경주와의 인터뷰에서는 골프 인생의 스펙트럼을 읽을 수 있는 주요 단어들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반듯하고 빈틈없는 생활, 투철한 직업 정신, 갖지 못한 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등 최경주의 PGA 투어 인생은 골프와 철학이 공존하는 스토리를 안고 있었다.
랭킹 》한때 랭킹 100위 안에 드는 게 소원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랭킹 10위 안에서 세계적인 골프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매 대회 때마다 타이거 우즈와 함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최경주. 몇 년 사이 확 달라진 PGA 투어에서의 그의 위상을 자신도 실감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어떤 분은 제가 너무 잘나가니까 겁이 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3년 전에 톱 10 안에 드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것만 이루면 바랄 게 없을 것도 같았고요. 이젠 메이저대회에서만 우승하면 더 이상 욕심 안 낼 거예요. 어려운 숙제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딪쳐야 할 난관들이 많지만 분명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습니다. 될 거예요. 거의 다 왔으니까.”
체력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의 야구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미국 선수들이 동양인들보다 체력 면에서는 두 수 위’라는 것이었다. PGA에서도 그런 부분에 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우린 흔히 ‘보이지 않는 천장’이라고 말해요. 우리는 볼 수 없지만 ‘걔네들’은 볼 수 있는 천장이요. 힘의 차이는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골프는 지구력에 의존하는 다른 운동 종목이랑 약간 다르죠. 힘도 중요하지만 기술도 못지않게 중요하거든요. 게임하는 능력도 그렇고요. 심리적인 압박과 멘탈 싸움에서 얼마나 잘 이겨내는지도 간과할 수 없어요. 그래서 재미있어요. 정답이 없는 게임을 하니까. 우승 후보는 정해지지만 우승자는 매번 바뀌잖아요. 드라마틱한 승부들의 연속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천장을 보려고 노력하는 거죠.”
영어 》최경주의 PGA 투어 생활을 가장 힘들게 했던 ‘숙제’가 영어였다. 처음 미국 땅을 밟을 당시엔 입도 뻥긋 못하고 마치 벙어리가 된 것 마냥 말문을 닫고 지냈던 시절도 있었다.
“영어 때문에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게 골프였기 때문에 영어 못하는 부분에 대해 크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골프도 그렇고 영어도 마찬가지로 배짱으로 밀고 나간 것 같아요. 그들이 한국 말 못하는 것처럼 내가 영어 못한다고 위축될 일이 아니잖아요. 알아들으면 다행이고 못 알아들으면 자기들이 불편하겠죠. 영어 때문에 기죽지는 않았어요.”
계단 》최경주가 인터뷰할 때마다 즐겨 쓰는 단어가 있다. 바로 ‘계단’과 ‘빈 잔’이다. 먼저 계단의 논리에 대해 ‘강의’를 들어본다.
“계단을 쌓을 때 제일 중요한 부분이 어딘가요? 바로 첫 번째 계단이잖아요. 밑바닥을 잘 쌓아야 무너지지 않죠. 제가 PGA 투어에 처음 왔을 때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내가 이들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1999년 미국으로 건너와 2000년 PGA 퀄리파잉스쿨을 준비하는 동안 굉장히 혼란스럽고 복잡했고 또 외로웠습니다. 당시만 해도 최경주는 굉장히 뾰족한 돌이었죠. 한국서 잘 친다고 자신했는데 여기 와 보니까 폼도 이상하고 샷도 들었다 놨다 내 맘대로 치고…. 그걸 다지는 데 2년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기초공사를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어떤 비바람이 몰아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 최경주와 기자 | ||
“잔은 비워야지 채울 수 있는 거잖아요. 마음속에 아무리 좋은 걸 가지고 있어도 속에 있으면 썩게 마련입니다. 자꾸 내놓고 다시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잔이 채워져 있으면 건방지거나 거만해져서 배우려 하지 않거든요. 전 배우는 걸 좋아해요. 샷도 그렇고 골프 클럽도 좋은 게 있다면 새로운 걸 사용해 보려고 노력하죠. 왜냐고요? 제 잔은 항상 비어 있기 때문이죠.”
눈물 》최경주와 눈물? 별로 관련이 없을 것 같은데 최경주는 그동안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고백한다.
“제가 보기보단 눈물이 많은 편이에요. 욕망은 강한데 마음대로 안 되니까 속상해서 와이프 부둥켜안고 운 적도 있었어요. 아무리 노력하고 죽을 둥 살 둥 연습에 연습을 반복해도 안 되니까, 성과는 없고 잇단 패배만 오니까 감정에 복받쳐 울기도 했었죠. 너무나 괴로워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도 했어요. 그러나 PGA 투어에 도전하겠다고 큰소리치고 떠나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또 울고…. 하하, 이젠 우는 일이 거의 없죠. 우승컵 받아 들고 눈물 흘린 거 외엔.”
최경주는 포기와 희망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8년째 미국에 머물고 있다며 웃었다.
왕따 》고국이 아닌 외국에서 활약하는 선수들 대부분은 않는 텃세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최경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절 무시했다기보단 아예 신경을 안 썼어요. 처음 보는 동양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는데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안 하지, 인상도 그리 가까이 하고 싶은 편이 아니지, 자연스레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겠죠. 사실 남의 집에 와서 주인 행세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주인 같아요. 어느 누구도 절 함부로 대하지 않거든요.”
최경주는 갑자기 이전에 ‘당했던’ 일들이 떠올랐는지 다음과 같은 농담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과거에 날 무시했던 놈들이 이젠 굉장히 나이스하게 대해요. 진즉에 나이스하게 했으면 지들도 공 잘 쳤을 텐데….”
첫 우승 》한국에서 프로 진출 후 팬텀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을 때만 해도 최경주는 ‘얼떨결에 차지한 우승’이라고 설명했다. 우승이 뭔지도 몰랐고 그 기쁨이, 그 결과가 얼마나 대단한지도 모른 채 긴장감 없이 대회를 마쳤다고 한다.
그러나 2002년 PGA 컴팩클래식에서의 첫 우승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감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컴팩에서의 우승에는 많은 사연들이 포함돼 있잖아요. 과연 내가 PGA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풀린 계기가 됐고 그동안 무지하게 고생했던 데 대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었고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과도 같은 값진 결과였죠. 만약 그때 우승을 못했더라면 정말 한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도전 》최경주가 PGA 투어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누구보다도 골프 관계자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어느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었고 어느 누구도 도전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코스라 최경주의 미국 진출은 그리 따뜻한 격려와 환영을 받지 못했다.
“아무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제 결정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요. 그 길을 모르니까, 경험이 없으니까 그냥 집에만 있으라는 소린데 그걸 제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전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가졌어요. 선배들은 제가 1년 안에 백기 들고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나봐요. 그런데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있으니…. 2014년까지 개런티가 돼 있어 앞으로도 한참동안 못 들어갈 것 같네요. 하하.”
사명감 》최경주의 태극기 사랑은 PGA 투어에서도 유명하다. 호주하면 캥거루, 백상어가 유명하듯 자신을 통해 한국을 부각시킬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단다. 그래서 나온 게 태극기다.
“태극기처럼 예쁜 게 없어요. 다른 건 몰라도 태극기를 보면 제가 한국 선수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잖아요. 태극기를 달고 다니면서부터 말투나 행동에 더욱 조심하게 됐어요. 가끔 절 열 받게 하는 선수가 있어도 꾹꾹 참고 무시합니다. 왜냐고요? 제 신발에 골프백에 모두 태극기가 달려 있기 때문이죠. 제 애국심이 특별나다기보단 태극기를 통해 절제와 냉정을 찾는다고 설명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스타 》도이체방크클래식 대회 장소에서 만난 최경주는 타이거 우즈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미국 팬들을 몰고 다녔다. 대회 주최 측이나 골프 전문 칼럼니스트도 최경주의 성적에 대해 남다른 기대를 표시했고 최경주 또한 자신감으로 화답했다.
“그동안 톱클래스에는 있었지만 조금씩은 뭔가가 부족했어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항상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그걸 채우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들이 언론 관계자나 갤러리들에게 어필했다는 느낌이 드네요. 진정한 스타가 되려면 갈 길이 한참 남았지만 전 스타가 되기보단 그저 골프 잘 치는 골퍼가 되고 싶어요.”
독실한 기독교인인 최경주는 골프를 통해 선교 사업을 꿈꾸고 있다. 그는 PGA투어 플레이오프 페덱스컵에서 우승하면 상금 1000만 달러(약 94억 원) 전액을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선재단을 세우는 데 사용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보스턴=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