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소피 J. 신 프리랜서 | ||
경기 시작 30분 전에야 더그아웃에 모습을 드러낸 김병현은 20분 정도 가볍게 몸을 풀고 캐치볼을 하면서 플로리다 말린스 복귀 후 첫 선발 등판(비록 애리조나행 이후 21일 만의 짧은 복귀였지만)을 준비했다.
올 한 해만 콜로라도-플로리다-애리조나-플로리다를 오가는 트레이드로 인해 마음고생이 적잖았던 김병현. 그러나 플로리다 복귀 후 그는 ‘미스터 스마일맨’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활짝, 자주 웃는 모습을 보여줬고 코치나 동료들과도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훈련에 임했다.
김병현과의 인터뷰는 선발 등판 전날인 8월 31일(현지시간) 돌핀스타디움 클럽하우스와 경기장 내 카페에서 이뤄졌다. 다음날에도 기자가 경기장을 찾은 것은 마운드 위에서 역동적으로 볼을 뿌리는 김병현의 모습을 직접 보고 마음으로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이날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서 김병현은 5이닝 동안 4실점하며 시즌 8번째 승리를 거머쥐었다.
사실 김병현과는 사전에 인터뷰 약속이 이뤄지지 않았다. 구단에 정식 공문을 띄웠고 지인을 통해 인터뷰 요청을 한 상태였지만 김병현이 어떤 의사 표시도 하지 않은 상태라 무작정 경기장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8월 31일 돌핀스타디움에 모습을 드러낸 김병현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취재진을 보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고 인터뷰 요청에 순순히 응한 뒤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서 만나자고 양해를 구했다.
난생 처음 들어가 본 메이저리그 클럽하우스. 선수들이 중요 부분만 가린 채 기자 앞을 활보하는 ‘아찔한’ 시추에이션이 벌어진 가운데 옷을 다 갖춰 입은 김병현과 흥미진진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서 느끼지 못했던 김병현의 색다른 매력과 색깔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소개한다.
―어제 쉬는 날이었는데 포트마이어에 다녀왔다고요?
▲여기서 한 2시간 걸리는 포트마이어에 작은 콘도가 있어요.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플로리다로 올 때 그곳으로 짐을 부쳤기 때문에 그 짐들을 다 챙겨 와야 했거든요. 올해처럼 짐 싸는 게 싫을 때도 없었던 것 같아요. 풀어 놓으면 싸야 하는 일을 반복했으니까. 이젠 이력이 붙어서인지 제법 짐을 잘 싸요(웃음).
―오늘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니까 정말 잘 웃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환한 웃음이었어요.
▲항상 잘 웃어요. 그런데 한국 신문에는 찡그리거나 이상하게 눈 뜬 사진들이 주로 나가잖아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선 잘 신경 안 써요. 이젠 그럴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아주 짧은 애리조나행을 마치고 돌아왔어요. 21일 만이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게 선수의 운명이죠. 너무 힘든 상황에서 애리조나에서 방출됐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오히려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좀 쉬고 싶었거든요. 아쉬움이요? 전혀요. 그냥 쉴 수 있어서 잘됐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플로리다에서 애리조나로 옮겨갈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그때는 정말 멍했어요. 그날도 오후에 운동 열심히 했고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였거든요. 막 경기 시작하기 전에 감독이 불러선 ‘그동안 수고했다. 애리조나 가서 열심히 해라’며 당장 짐을 싸라고 하더라고요. 그날 새벽 3시까지 짐 싸서 5시에 공항으로 나간 거예요. 기분이 영 아니었어요. 애리조나는 제가 있을 팀이 아닌 것 같았고요.
―어떤 팬은 선수 김병현에 대해 미국에서 자존심 굽히지 않고 된장 냄새 나는 피칭을 보여줘서 좋아한다고 말하더라고요. 타협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가는 모습이 남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것 같아요.
▲전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선발 투수를 희망하는 것도 그런 것들 중 한 가지죠. 제가 애리조나에 입단해서 처음부터 선발을 했더라면 정말, 정말 좋았을 거예요. 그랬다면 한국에서 야구했던 거 잊어버리지 않고 그 폼을 계속 갖고 갈 수 있었겠죠. 불펜을 맡으면서 잊어버린 게 많아요. 투구 메커니즘도 그렇고…. 그거 다시 찾으려고 이것저것 하다 몸을 다쳐 보스턴에서 힘든 시간들을 보냈죠. 지금은 몸이 이전보다 많이 회복됐고 자신감도 살아났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들(구단 관계자, 코칭스태프)은 제가 옛날에 잘했던 게 불펜이었으니까 그때로 돌리려고 하고 있고, 전 제가 선발로도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하루하루 ‘업 앤 다운’ ‘업 앤 다운’ 하면서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제 구질이 단조로워 보여요? 어렸을 때 던진 것보다 오히려 한두 가지 구질이 늘었는걸요. 단, 이전보다 잘 던지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마이너스 요인이죠. 작년과 재작년보다 올해가 선발로 나왔을 때 훨씬 더 안정적인 느낌이 들어요. 작년에 50 대 50이었다면 올해는 70% 정도? 7게임 잘 던지면 3게임 못 던지는 거죠. 내년 되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거라 믿어요. 절 선발로 내세울지, 불펜에 머무르게 할지는 감독이 결정할 부분이에요. 저도, 또 전문가나 팬들도 결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김병현에게 얼마 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복귀했을 때 두 번의 선발 등판 경기에서 좋지 않은 피칭을 했던 이유를 물었다. 김병현은 당시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안타를 맞아도 아무렇지 않은 기분은 처음이었다”라고. 과연 그 개인적인 아픔이란 무엇일까?)
―애리조나 복귀 후 첫 선발 등판 때 홈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기도 했어요.
▲이상하진 않았어요. 그동안 야유를 많이 받아봐서 그런가? 이젠 아무리 그래도 ‘손가락’을 올리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