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시즌부터 KBL에서 뛰게 된 하승진. 소속팀에서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다시 돌아갈 ‘꿈의 무대’가 있기에 하승진의 얼굴은 여전히 밝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2004년 NBA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46순위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됐던 역대 최장신 센터 하승진(22·연세대). 포틀랜드에서 두 시즌을 보내고 2006년 밀워키 벅스로 전격 트레이드됐다가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2006-2007시즌 개막 직전에 방출된 그는 마이너리그인 NBDL 애너하임 아스날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귀국했지만 다시 출국하지 못했다. 10월 초 미국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국내 복귀를 권유하는 가족 및 지인들의 조언에 어렵게 KBL행을 선택한 것.
지난 10월 30일 수원시 화서역 부근에서 만난 하승진은 전날 기자회견의 여운 때문인지 처음엔 어색한 미소만 짓다가 인터뷰 막바지에 비로소 편안한 모습이 되었다. 소문대로 말솜씨가 뛰어났고 나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 침착함이 인상적이었는데 가장 압권은 실물이 훨씬 잘 생겼다는 사실^^:; 점심 식사를 삼겹살과 오리고기로 ‘거하게’ 먹었던 하승진과의 톡톡 튀는 인터뷰를 정리해 본다.
〈〈〈 NBA 도전은 진행형
하승진의 국내 복귀에 대해선 이미 <일요신문>에서 지난 5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786호에 ‘하승진 KBL 온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당시에 하승진은 국내 복귀설에 대해 다소 불쾌한 반응을 나타냈지만 몇몇 농구인들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올시즌 하승진의 컴백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였다.
하승진으로선 이런 예상들을 멋지게 역전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NBDL에 남아 NBA로의 재등극을 꾀하며 미국에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잠시 돌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밤잠을 설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어요. 국내 복귀를 강권하는 주위 사람들이 야속하기도 했었죠. 막판에 에이전트마저 KBL에서 경험을 쌓고 다시 NBA에 도전하는 방법을 설명하더라구요. 국내 복귀를 발표하고 나면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요.”
하승진은 돌아갈 팀이 없다는 현실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예정대로라면 10월 초에 미국으로 다시 들어갔어야 하는데 소속팀이 없다 보니까 갈 곳이 없었던 것.
“어느 지역으로 가서 훈련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어요. 제가 갈 곳이 어디인지, 어디에 둥지를 틀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심하게 속상했죠. 많은 걸 안고 오고 싶었는데 손에 쥔 게 별로 없는 것 같았으니까.”
〈〈〈 엄청난 기대에 부담
하승진은 고3 겨울, 2003년 12월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샤킬 오닐과 같은 파워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란 목표를 정하고 NBA 드래프트에 지명받기 전 6개월가량 미국 산타모니카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 냈다. 하승진은 2004년 6월 NBA 드래프트에 지명받기 전까지 6개월가량의 시간들이 가장 힘들고 고단했다고 회상한다.
“한국 언론의 관심이 너무 엄청나서 정말 부담스러웠어요. 만약 지명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심지어 제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 스리랑카 사람이라면 NBA에서 뛰든 말든 전혀 신경을 안 쓸 텐데 싶었죠. 그냥 자유롭게 농구하고 싶었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진 조용히 지냈음 했었죠.”
꿈에 그리던 NBA행.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처음 합류했을 때 하승진을 신기하게 바라본 동료 선수들의 시선이 잊혀지지 않는단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키 큰 동양 놈이 왔으니까 ‘어? 쟤 뭐야?’했을 거예요. 처음엔 선수들이 제 실력을 견줘보려고 도발적인 플레이를 많이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도발적으로 반응했죠. 그 틈에서 주눅 들면 ‘왕따’ 되기 십상이거든요.”
〈〈〈 전용기와 경비행기
포틀랜드에서 밀워키 벅스로 옮겨갔다가 얼마 못가 NBDL로 떨어진 하승진. 어떤 차이를 느끼며 생활했는지 궁금했다.
“간단한 예로 NBA에선 원정 경기 때 하루 밥값으로 120달러를 줘요. 열흘이면 밥값만 1200달러가 돼요. 이 돈만으로도 생활이 충분해요. 지갑에 항상 100달러짜리 지폐가 두둑했죠. 그런데 NBDL가니까 하루에 밥값으로 20달러가 나오는 거예요. 밥 한 끼에 몇 십 달러씩 하는데, 너무 배가 고팠어요. NBA에선 원정 경기 때 전용기를 이용하거든요. 선수들 체격이 크니까 침대같이 넓은 좌석과 공간이 확보된 그런 비행기예요. 그런데 NBDL은 프로펠러 돌아가는 경비행기를 타요. 한 번 비행기 타고 내리면 프로펠러 소리 때문에 고막이 터질 듯했어요.”
NBA에선 라커에 신발과 운동화가 준비돼 있었지만 NBDL에선 자신이 직접 유니폼을 빨아서 입고 다녀야 했다. 생활도 불편했지만 무엇보다 한없이 추락하는 자신감이 더 큰 문제였다.
하승진은 미국 생활 동안 얻은 수확이라면 ‘날라리 신자’에서 독실한 크리스찬이 되었다는 걸 꼽았다. “부모님께도 하지 못하는 말들이 많잖아요.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도 하고 싶고. 그럴 때마다 교회를 찾아갔어요. 저절로 기도를 하게 되더라구요. 거기서(미국에서) 느낀 것 중에 ‘외로움’이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신앙 탓인지 하승진의 성격은 매우 밝다. 트레이드와 방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긍정적인 사고 탓에 크게 좌절하진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말로 ‘정리’를 해준다. “만약 제 성격이 내성적이었다면 자살했을지도 몰라요.”
▲ 카페에서 기자와 인터뷰 중인 하승진. 국내 최장신 센터 하승진의 223cm의 키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 ||
하승진의 롤모델은 샤킬 오닐(마이애미 히트)이다. 농구를 시작하면서 닮고 싶은 사람 0순위로 꼽았던 상대를 직접 농구 코트에서 만났다면 그 기분이 어땠을까.
“진짜 거대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키가 저보다(223cm) 조금 작은 216cm지만 체격이 장난이 아니라 도통 밀리지가 않더라구요. 거의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속된 말로 ‘다이다이’로 꺾을 상대가 아니었던 거죠. 존경심이 들었어요. 그 덩치에 그렇게 빠른 스피드가 나온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정말 부러웠습니다.”
자주 비교됐던 동양인 출신 중 NBA의 유일한 생존자, 야오밍(휴스턴 로케츠)에 대한 질문으로 옮겨가자 하승진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같은 동양인으로서 지금까지 NBA에 남아 있다는 게 존경스럽고 배울 점이 많은 선수예요. 가끔 경기 때 만나면 항상 격려해 줬어요. 서로 잘해보자면서요. 겸손하고 매너도 좋고, 닮고 싶은 선수였죠.”
“(야오밍과) 영어로 얘기했어요?”
“그럼 중국 말로 했겠어요?”
“….”
〈〈〈 보고싶은 장훈이 형
그동안 KBL에서 국내 최장신 센터로 활약한 국보급 센터 서장훈(207cm, 전주 KCC)은 장신으로 인한 남다른 피해 의식을 느꼈다.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심판 판정에 대해 어필을 해도 서장훈의 어필이 훨씬 강도가 세게 느껴졌기 때문에 심판들로부터 표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보다 더 큰 하승진이 KBL에서 뛴다면 서장훈으로선 잠시 숨 고르기를 하거나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하승진에게 돌려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작년 아시안게임 때 장훈이 형을 처음 봤어요. 어렸을 때부터 형의 플레이를 눈여겨봐 오면서 무척 좋아했거든요. 장훈이 형이 대단한 게 다른 선수 같았으면 일찌감치 운동 때려치웠을 거예요. 심판들의 선입견도 그렇고 팀 성적 안 좋으면 혼자 ‘독박’ 쓰고. 국보 센터라는 타이틀 때문에 어쩌지도 못하고 책임감 있게 자기 역할 해내는 거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예요. 같은 장신자로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거든요. 형과 KBL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나요. 어떤 형태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존경의 대상도 극복해야 할 경쟁자가 될 수 있겠네요.”
하승진은 내년 드래프트에서 자신을 데려가는 팀의 우승은 떼논 당상이란 시각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건 아니에요. 제가 결코 완벽한 선수가 아니거든요. 농구는 키만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상대 선수들이 얼마든지 절 제치고 공을 넣을 수 있어요. 솔직히 전 프로농구 흥행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팬들은 저같이 장신의 선수를 제치고 슛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원할 겁니다. KBL이 만만한 무대가 아니라고 들었어요. 제가 들어간다고 해서 그 팀이 갑자기 꼴찌에서 우승을 하는 그런 기적은 쉽게 일어날 수 없다는 걸 말씀 드리고 싶어요.”
한편 하승진은 최홍만으로 인해 불거진 거인병에 대해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집안 대대로 장신들이 많았어요. 아버지도 2m가 넘고 어머니도 170cm거든요. 제가 만약 거인병으로 의심 받았다면 미국에서 뛸 수 없었을 거예요. NBA 들어가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샅샅이 검사해요. 심지어 ×구멍까지 검사하는데 이상이 있었다면 제가 그곳에 갈 수 없었겠죠.”
인터뷰를 끝내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하승진을 본 사람들마다 “정말 크다”란 말을 반복했다. 모두 키 얘기만 하면서 하승진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들에 기자가 너무 민망한 나머지 “괜찮냐”고 묻자 하승진은 “어렸을 때부터 하도 많이 겪어서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빅뱅의 ‘거짓말’이 18번이라고 하는 하승진은 기자의 남다른 노래 사랑을 인지하고 다음 만남에선 꼭 노래방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해왔다. 과연 그 날이 언제쯤일까.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