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원과 다섯 살배기 딸 수빈이. 팀 숙소에 찾아온 딸과 함께 오랜만에 하룻밤을 지냈다고 한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독한 아줌마’ 전주원(35·신한은행). ‘독하다’는 말을 쓰지 않으려 해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 표현만큼 제격인 수식어가 없을 정도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어떻게 해서든 다시 일어서는 오뚜기처럼 그는 어제 쓰러져도 오늘 다시 일어나 내일부터 코트를 누비고 다니는 ‘여전사’나 다름없다.
지난 시즌 신한은행이 창단 후 첫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데 있어 주역으로 떠올랐던 전주원. 시즌 종료 후 곧장 일본으로 달려가 왼쪽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고 6개월 동안의 재활 훈련 끝에 기적같이 빠른 속도로 다시 코트에 선 그는 ‘아직도 몸이 온전하지가 않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지난 22일 안산 신한은행 농구단에서 ‘독한 여자’ 전주원을 만났다.
소중한 딸 수빈이
인터뷰를 하러 기자 앞에 나타난 전주원이 ‘손님’을 모시고 왔다. 딸 수빈이다. 어제 모처럼 쉬는 날을 맞아 수빈이가 숙소에 놀러왔다가 엄마랑 같이 잤다고 한다. 사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전주원한테서 ‘아줌마’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수빈이를 챙기는 전주원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잠시 그의 ‘직업’을 잊게 될 정도다.
“가급적 아이를 숙소에 데려오지 않으려고 해요. 여기도 엄연히 직장인데 아이 때문에 팀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선수들이 정말 수빈이를 예뻐해 줘요. 아이도 엄마의 이런 생활에 적응이 된 것 같아요. 농구장 구경 오는 걸 소풍 오는 것처럼 좋아하니까. 힘들면서도 행복하고 행복하면서도 또 고민이 생기는 게 일하는 엄마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싶네요.”
수빈이 때문인지 인터뷰의 시작이 자연스럽게 선수 전주원보다는 엄마 전주원으로 포커스가 맞춰졌다. 전주원의 말을 백 프로 공감하면서 지난 4월 수술 받은 무릎 부상으로 화제를 돌렸다.
농구가 너무 재밌어
전주원은 6년 전에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받았다. 재활 기간만 18개월이 걸린 탓에 선수 생활 위기론이 불거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왼쪽 무릎이 고장났다. 나이와 체력, 그리고 주위의 보이지 않는 은퇴 압박 등을 떠올리면 전주원의 다음 행선지는 은퇴였다.
“당연히 갈등이 됐죠. 다시 재활할 걸 생각하니까 끔찍하더라구요. 하지만 부상으로 코트에서 사라지긴 싫었어요. 독하다고 소문난 마당에 뭘 못하겠어요. 수술을 결정했고 재활에 들어갔는데 한 번 경험한 탓인지 노하우가 생기더라구요. 6개월 안에 재활을 마치고 코트로 돌아오니까 다들 쇼킹했나봐요. ‘괜찮겠느냐’는 말을 수십 번도 더 들었으니까.”
전주원은 아직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평상시의 50~60% 정도라는 게 솔직한 표현이란다. 그래서 임달식 감독도 전주원을 코트로 들여보내길 망설인다. 어쩔 수 없이 출전을 시키더라도 “제발 살살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그런데 제가 조절을 못해요. 뛰다 보면 욕심이 생기거든요. 원래 스타일이 장악하는 걸 좋아하는 탓에 몸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마구 휘젓고 다니죠. 다행이라면 우리 팀에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인지 상대 팀 선수들이 절 잘 안 막아요.”
꿈에 그리던 통합 챔피언의 기쁨도 맛봤고 16년 만에 처음으로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던 지난 시즌의 전주원으로선 수술을 앞두고 명예스런 은퇴를 고려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길을,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놔두고 전주원은 또 다시 자신과의 싸움을 선택했다.
“간혹 몇몇 분들은 전주원이란 선수를 징글징글하게 생각하실 것 같아요. 그만둘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그만둘 생각을 안 하니까. 그런데 전 지금하는 농구가 너무 재밌어요. 재밌어 죽겠는데 이걸 어떻게 그만둬요. 할 수 있을 것 같고 분명히 해낼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은퇴보단 선수 생활을 선택했어요. 만약 이 ‘놀이’가 조금이라도 재미없어지면 당장이라도 그만둘 겁니다.”
남편 정영렬 씨와 결혼한 지 10년이 됐다고 말하는 전주원은 “같이 산 시간은 1년도 채 안 되는 것 같다”라며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린다.
“전 농구 때문에 남편은 미국 유학 생활과 사업 등으로 서로 바빴어요. 그렇게 오래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부부지만 독립적인 성향이 강해요. 저보단 남편의 이해심이 오늘의 절 있게 만들었어요. 시즌 때는 경기 중이라서, 시즌 후에는 훈련과 부상 치료 등으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편이거든요. 남편을 경기장에 오지 못하게 해요. 남편이 나타난 날이면 게임에 지곤 해서 징크스가 생겼어요. 서운해도 뭐 어쩔 수 없는 거죠.”
어쩌면 전주원보다 농구 스타 전주원을 아내로 둔 남편의 마음 고생이 훨씬 더 컸을지 모른다. 특히 이런저런 소문이 많은 농구계에서 남편 정 씨는 행동반경에 여러 제약을 받았을 터인데 내색 않고 잘 참고 있다고. 스포츠 스타의 아내로 사는 것도 힘들지만 스포츠 스타의 남편으로 생활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영주 감독과 루머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전주원은 남모를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신한은행의 통합 우승을 일궜던 이영주 감독이 구단과의 마찰로 전격 사임하면서 농구계에 출처 분명의 다양한 소문들이 나돌았던 게 사실이다. 팀의 플레잉 코치로서 흐트러져있는 선수들의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전주원으로선 고통스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선수들에게 이번 시즌까지 귀 막고 입 닫고 살자고 부탁했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문도 많았고 저에게 비수로 꽂히는 풍문들도 들렸어요. 우리 팀이 너무 잘 나가다보니 시기하는 세력들이 많은 것 같아요. 모함을 즐기는 자들의 루머라고 생각했고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습니다. (이영주)감독님이 중도 하차하신 건 구단과 감독님의 문제지 선수들과는 상관이 없는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올시즌 악착같이 뛰려구요. 우리를 모함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건 성적내는 일밖에 없으니까.”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됐지만 수술 후 재활하는 과정에서 들리는 팀과 관련된 소문들이 강단있기로 소문난 전주원을 자꾸 주저앉게 만들었다. 그러나 플레잉코치라는 타이틀이 방황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후배들 챙기기가 더 바빴기 때문이다.
짜릿한 농구의 맛
“10대 때는 멋모르고 농구를 했던 것 같아요. 농구란 운동이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뛰어 다녔어요. 20대 때는 미친 듯이 했죠. 제 농구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려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돈, 인기, 명예, 모든 걸 이룬 시기였고 농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나이였죠. 30대요? 농구에 대해 제대로 눈을 뜬 시기예요. 노련미가 생기니까 경기를 조율할 능력도 생기더라구요. 마음 같아서는 40대에 하는 농구의 맛도 느껴보고 싶은데 그때까지 유니폼 입고 있으면 농구 팬들이 뭐라고 하시겠죠? 욕심이 과하다고…(웃음)”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여섯 살의 나이. 그중 3분의 2를 농구와 함께했다는 전주원은 10대, 20대보다 ‘아줌마’ ‘엄마’란 타이틀을 달고 뛰는 지금이 농구하는 재미를 더 크게 느낀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농구에 대한 욕심을 조금씩 줄여야 은퇴 후의 삶이 평화로울 것 같다며 걱정을 털어놓는다.
“사실 저, 그렇게 독하지 않거든요. 친구들이 그래요. 그냥 주원이랑 농구하는 전주원이랑 완전 딴판이라구. 엄마도 제가 농구할 때는 당신 딸이 아닌 것 같으시대요. 운동할 때만 독해요. 농구 공만 잡으면 미치게 돼요.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았잖아요. 좋은 마무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모든 질문에 시원스런 대답이 쏟아진다. 기자와 여러 가지 면에서 코드가 맞아 떨어지는 편이라 공식적인 타이틀을 벗고 만나면 훨씬 편해질 것만 같다.
전주원=아줌마, 강하다, 독하다란 시선들 속에 한 가지를 더 덧붙인다면 전주원=씩씩하다는 것. 그 숱한 편견과 선입견과 오해 속에서도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켜온 걸 보면 전주원은 참으로 씩씩하고 건강한 마인드의 소유자다. 그래서 그가 대단해 보이고 프로다움의 강한 포스를 느끼게 한다.
장시간의 인터뷰를 지켜보며 나름 인내심을 발휘했던 수빈이가 “엄마 배고파요. 밥 주세요!”하는 소리에 ‘여전사’와의 리얼토크를 끝마쳐야 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