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른 박지성 선수의 플레이에서 자신감이 철철 넘쳐 흘렀다. | ||
강하고 또 강한 남자,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축구 인생에 만족보다는 채울 게 훨씬 더 많다고 겸손을 표하는 박지성과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고 아버지 박성종 씨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복귀전을 치른 박지성의 일상과 이런저런 사연들을 새로이 알 수 있었다.
박지성은 지난 12월 27일 선덜랜드전을 앞두고 아버지 박성종 씨에게 다음과 같은 격려를 들었다. “맨유 처음 입단했을 때의 마음으로 뛰어라. 맨유 입단할 당시의 떨림, 두려움보다 이미 맨유 생활을 해본 지금의 복귀전이 경험면에서 훨씬 더 낫지 않겠느냐. 긴장을 떨치고 즐겨라.”
이 얘기를 전하는 박지성은 “복귀전이라 아버지의 조언처럼 축구를 즐길 만큼의 여유는 없었지만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복귀전이 남달랐던 부분은 다른 때와는 달리 기다리는 시간들이 많았다는 점이다”라고 설명한다.
박지성은 운동 시작하고 나서 3개월 이상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부상을 당하거나 수술을 받고 재활하는 과정도 3개월 안에 끝마쳤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굉장히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언론에선 지난해 4월 무릎 수술을 받은 시기를 계산해 270일 만의 귀환이라고 했지만 실제론 지난해 1월부터 게임을 뛰지 않았기 때문에 1년 여 동안 그라운드 밖에서 생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박지성으로선 그 기다림이 어떤 통증보다 더 힘들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박지성은 2003년 PSV에인트호벤 입단 후 크고 작은 부상들에 노출됐었다. 그리고 세 차례나 수술대에 올랐다. 그래서인지 박지성이 유독 자주 부상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도 있었다. 이에 대해 박지성은 “물론 세 번 수술을 했지만 경기 중에 부상을 당해 실려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모두 경기를 다 마치고 나와서 수술을 결정한 터라 부상과 인연이 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란 견해를 밝혔다. 특히 박지성은 “이번 부상은 경기하다 다쳐서 수술을 한 게 아니라 오랫동안 운동하면서 누적된 부상이었다. 날 자주 부상 당하는 선수로 몰아가는 건 좀 불편하다”란 말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성종 씨도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만약 지성이가 그라운드에서 몸을 사리며 축구를 한다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나. 몸을 아끼는 선수가 감독의 신뢰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성이는 부상을 염려하기보단 주어진 기회에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뛰었을 뿐이다. 축구도 잘 하고 부상 안 당하고 감독의 사랑까지 받는다면 그야말로 ‘신이 내린 선수’다.”
부상으로 오랫동안 경기장을 떠나 있었던 선수라면 복귀 후 주전 자리 확보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지성은 이 부분에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맨 처음 맨유에 입단했을 때도 라이언 긱스의 존재로 내 자리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1분이든, 5분이든, 출전만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긱스보다 더 훌륭한 선수가 온다고 해도 그 선수로 인해 내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나니와의 경쟁에 대해 많이들 관심을 보이시는데 선수 입장에선 나니를 의식하기보단 팀내 내 역할에 대해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워낙 게임이 많기 때문에 리저브에 들든, 잠깐 5분을 뛰든 벤치만 지키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박지성은 이번 재활 과정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였는지를 묻는 질문에 “재활 과정보다 수술을 결정하는 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표현했다. 그 이유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보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8~9개월의 기나긴 재활 기간 때문이었다.
“부상당한 선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같은 부위를 또 다치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 공백을 가지고 그라운드에 서면 다친 데 또 다칠까봐 지레 겁을 먹게 된다. 하지만 1군 훈련에 합류 후 선수들과 같이 운동을 시작한 다음부터 그런 걱정들이 사라졌다.”
박지성의 재활을 도왔던 맨유 피지컬 트레이너가 하루는 박지성에게 이런 칭찬을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러 명의 무릎 부상 선수들을 봐 왔지만 박지성처럼 수술한 부위와 몸 상태가 최고로 좋은 선수는 보질 못했다”면서 박지성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는 것. 아들로부터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박 씨는 “내 아들이지만 겪고 이기고 견디는 것만큼은 정말 타고났다”라면서 “지루하고 힘든 시간들을 오직 완전히 재기하겠다는 일념 하에 모든 걸 참아내는 걸 보면서 ‘내가 참 아들 하나는 잘 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 지난 1일 프리미어리그에서 맨유의 박지성이 버밍엄의 수비를 뚫고 공을 몰고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 ||
“재활 막바지에 구단에서 치료가 너무 잘 되고 있다면서 지성이에게 일주일간 휴가를 줬다. 당시 난 한국에 있었는데 지성이가 전화를 걸어와선 ‘아빠, 구단에서 휴가를 줬는데 한국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면 안 되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괜히 한국 나왔다가 이상한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으니까 정 놀고 싶으면 네덜란드 가서 영어 선생이랑 놀라고 말했다. 지성이로선 천금같은 휴가라 얼마나 한국에 오고 싶었겠는가. 그런데 내가 절대 안 된다고 하니까 결국 런던 시내의 한인 식당에서 밥 먹는 걸로 휴가를 대신했다. 아직까지 부모의 말을 거스르지 않고 존중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박지성은 이에 대해 “유명한 선수라는 게 불편할 때가 많다. 그래서 행동 하나 하나 조심하는 편이다. 아버지가 워낙 말 나오는 걸 싫어하시는 편이라 가급적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따르려고 한다. 하지만 100%는 아니다. 때론 내 생각을 밀어붙일 때도 있고 남들 시선 의식하지 않고 생활할 때도 있다”라고 속마음을 나타냈다.
1981년생. 우리나라 나이로 스물여덟 살이다. 박지성도 자신의 나이가 실감이 안 난다고 한다. 여전히 20대 초반의 마음으로 생활하기 때문이라며 농담을 곁들인다.
“나이 먹었다는 걸 실감할 때가 대표팀에서다. 이전에는 내 위의 선배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후배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순서를 밑에서 세는 것보다 위에서 세는 게 빨라졌으니까^^. 나이는 먹어도 축구를 보는 시각이나 즐거움, 재미는 여전한 것 같다. 그래서 축구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지난해 결혼한 절친한 친구 정경호의 웨딩사진 촬영 때 들러리로 참가한 박지성은 그 후로 부쩍 결혼과 관련된 질문이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11월 초 맨체스터의 한 백화점에서 20대 미모의 여인과 쇼핑하는 장면이 교민들 눈에 띈 이후 ‘박지성 여자친구 생겼나?’란 타이틀로 열애설 기사가 나온 탓에 박지성의 결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먼저 20대 미모의 여인의 실체에 대해 아버지 박 씨는 “그 여자 분은 20대가 아닌 30대 초반의 한국 공무원 부인”이라면서 “그 기사 나간 후 그 분이 굉장히 좋아했다. 자신을 20대 미모의 여성이라고 봤으니까 얼마나 자랑스러웠겠나? 우리랑 친하게 지내는 가족 중 한 분인데 그 기사 때문에 많이 웃었다”라고 설명했다. 대한축구협회 가삼현 총장의 딸이 맨체스터에 유학 중이라 가끔 박지성과 식사를 한 적도 있지만 이성 친구로 만나는 여자는 한 명도 없다고 한다.
박지성도 여자친구를 만들지도, 만나지도 못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물론 시간이 없는 탓도 있지만 내 생활권이 한국이 아닌 영국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어렵다. 더욱이 어설픈 열애설로 나보다 상대방 입장이 곤란해지면 만남을 지속하기가 어려운 게 아닌가.”
그래서 만약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공개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박지성은 “굳이 숨길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있는 데 없는 척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이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나 혼자 이런 모든 관심을 받고 있지만 결혼을 하면 어쩔 수 없이 내가 받는 관심의 일부를 배우자도 받을 것이다. 일반적인 삶을 살지 않는 남자와의 결혼으로 인해 여자 분이 많은 부분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들을 인내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인지 박지성은 올해부터 ‘소개팅’에 적극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아버지 박 씨는 “휴가때 기회가 되면 선을 보겠다고 하더라. 이전에는 질색하며 사양했던 데서 많이 발전한 모습이다. 중매 자리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지성이에게 어울릴 만한 분을 선택해서 자리를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기대감을 부풀렸다. 박 씨는 잘나가는 집안, 잘 생긴 여자보단 겸손과 희생을 아는 차분한 여성이 아들과 인연을 맺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박지성은 정경호의 아내같이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를, 아버지는 김두현의 배우자처럼 따뜻한 미소가 매력적인 스타일을 이상형으로 꼽았다.
인터뷰 말미에 박지성에게 2008년 새해 소망 세 가지를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박지성의 멘트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부상없이 축구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팀에 많은 공헌을 하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가족과 친한 모든 분들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지금은 비어있는 저의 여자친구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