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예비대표팀 골키퍼 김병지 선수가 8일 구리FC서울구장에서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시즌 K리그에서 개인 연속경기 무교체 출장(153경기), 개인 최다 무실점 경기 기록(165경기), 개인 통산 최다 출전(465경기) 등 ‘기록의 사나이’로 불릴 만큼 최고의 실력을 보여준 김병지는 ‘이운재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대표팀 예비 명단에 포함될 수 있었다며 몸을 낮춘다. 2002년,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외면받았던 아픔들을 오기와 성숙으로 승화시켰다는 김병지를 지난 8일,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김병지는 여전히 말을 잘 했고 의외로 솔직했으며 오랜만에 기자를 편하게 해줬다.
┃대표팀 비록 예비 명단 이었고 최종 엔트리에 합류할지의 여부를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김병지란 이름이 허정무호 1기 명단에 포함된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김병지도 최종 ‘간택’ 유무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매우 ‘바람직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축구인생에 ‘한’으로 작용한 대표팀과 관련된 얘기를 먼저 꺼내 들었다.
김병지는 “2003년 이후 대표팀과 나와는 인연이 없었다”면서 “그로 인해 힘들기도 했지만 K리그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기회도 됐다”고 설명했다.
“선수 선발 기준이 기량보다 나이를 먼저 내세우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컸다. 2003년 이후 몇 차례 내 이름이 대표팀 후보 명단에 거론된 적은 있었지만 나이에 걸려 정리돼 가는구나 싶었다. 이번에 다시 명단에 오르면서 나이보단 실력으로 평가받은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이번에 같이 뽑힌 구자철이 19세 아닌가. 19세든 38세든 동등한 위치에서, 진정한 실력으로 가늠한다면 노장이라고 해서 불가능한 건 아니다. 대표팀 선발 기준에 선입견이 배제된 것 같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이왕 대표팀 얘기가 나온 이상 질문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예 대놓고 “이운재를 뽑을 수 없었기 때문에 김병지가 들어갔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럴 수도 있다. 운재가 없기 때문에 나에게 찬스가 온 건 맞다. 그러나 만약 허정무 감독님이 순수하게 경기력만 놓고 평가를 했다면 운재가 있었다고 해도 내가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이천수도 못 들어가지 않았나. 그걸 보면 운재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히딩크 김병지는 오랜만에 히딩크 감독을 회상했다. 자신에게 쓰라린 좌절을 맛보게 한 장본인이지만 이젠 그를 ‘추억’할 수 있게 됐다며 이렇게 표현해 냈다.
“내 축구 인생에 좋지 않은 기억이지만 그 일로 인해 지금까지 열심히 운동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두렵고 거칠 게 없었다. 내가 최고라는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잘못 변화됐던 것 같다. 솔직히 난 (월드컵에서) 이운재가 아닌 내가 주전으로 뛸 줄 알았다. 주전이 안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만큼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추스르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아픔이 깊고 진했지만 그래도 그 일로 인해 축구선수 이전에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김병지는 외국인 감독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비즈니스적인 마인드가 강하다는 귀띔에 히딩크 감독에게 냉정한 태도로 일관했다. 감독의 지시가 있어도 자신의 주장을 앞세웠고 숙소에서 마주칠 때도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그땐 많이 건방졌던 것 같다. 내 성격이 선수를 강하게 압박하는 지도자한테는 나도 강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하지만 날 다독거리고 친근하게 대하면 한없이 약해진다. 히딩크 감독과는 그런 부분에서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귀네슈 감독과의 관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귀네슈 감독과는 사석에선 마치 친구처럼 가까이 지낸다. 내가 먼저 다가갔고 먼저 미소를 보였다. 상당히 친절한 분이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편하다.”
“0.7미만의 실점률이라든가 21경기 무실점 기록 등은 정말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38경기 만에 21경기 무실점 기록을 이뤄냈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시즌 동안 150경기 연속 출전 기록을 세우기 위해 30경기 정도는 몸이 아픈 데도 불구하고 게임에 출전했다. 물론 경기 출전에 대한 결정은 감독님의 몫이지만 감독님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보내셨을 것이다. 얼마 전 와이프가 이렇게 말하더라. ‘당신 몸은 점점 좋아지고 있는데 나이는 멈추지 않는다’면서 안타깝다고 했다. 나이는 내 능력 밖의 일이라 날 무겁게 짓누른다.”
김병지는 44세에 현역에서 은퇴한 골키퍼 신의손이 자신의 축구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시인했다. 신의손이 뛸 때만 해도 그의 존재의 의미가 와 닿지 않았는데 자신이 최고령 골키퍼의 자리에 들어서면서 신의손이 큰 일을 해놨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운재는 나에게 밥 한 끼 사야 한다. 나이 든 골키퍼도 얼마든지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걸 내가 증명해 보이지 않았나. 이번에 운재가 수원과 재계약했는데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 정도면 밥은 사야 한다.”
이운재에게 농담삼아 진심을 전한 김병지는 지금의 페이스라면 앞으로 4~5년은 현역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천수 대표팀 예비 명단에 빠진 선수들 중 김병지는 이천수의 반응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축구 외적인 구설수에 휘말려 비난의 중심에 섰던 선수가 대표팀 탈락을 놓고 “소속팀에 집중하라는 감독님의 배려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부분이 굉장히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뉴스를 통해 천수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 순간 어이가 없었다. 만약 내가 이천수였다면 ‘그동안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걸 깨우치라는 감독님의 사랑의 매로 알겠다. 소속팀에 복귀한 후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축구로 인정받는 이천수로 거듭나겠다’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감독님의 배려 운운했던 부분은 분명 천수가 실수한 발언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에 뽑힌 박지성은 뭐냐? 천수는 인간적으로 더 성숙해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구단탓, 동료탓, 감독탓이 아니라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자신이다. 능력이 있는 선수가 자꾸 다른 데서 겉도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김병지는 2002년 이후 히딩크 감독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 원인을 자신한테서 찾았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나보다 잘난 선수가 없다는 안이함, 내가 최고라는 자만심이 대표팀에서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냉정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2006년 월드컵대표팀 최종 명단 발표 전에도 김병지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그는 또 다시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그때는 별로 아프지 않았다고 한다. 대표팀을 축구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았던 이전과는 삶의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기록도 중요하지만 팀의 성적이 좋아야 기록도 빛이 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정말 그 중요한 의미를 왜 이제야 절감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아는 것과 깨닫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난 비로소 팀 성적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앞으로 모든 목표를 팀 성적, 팀 우승에 맞춰 놓았다.”
┃김병지 부산 아이파크의 황선홍 감독과 두 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김병지. 나이와 관계없이 현역 생활을 왕성하게 이어나가기 위해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기자가 쉽게 ‘술, 담배’를 거론하자 술, 담배는 하지 말아야 할 백 가지 것들 중의 한두 가지밖에 안 된다며 미소를 지었다.
“밤 10시 이후론 술집에 안 간다. 체력을 위해서라기보단 이미지 관리 차원이다. 학부모 모임에도 구설수에 오를 것을 우려해 나가지 않는다. 훈련 끝나면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부부애도 좋아야 하고 휴가 중에도 개인훈련을 쉬지 않아야 한다. 참으로 많은 부분을 참고 극복하고 노력해야 성실한 축구선수, 모범이 되는 축구선수로 평가받는다. 난 다른 부분보다 이런 부분들을 중요시했다. 언제 은퇴할지는 모르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성실한 자세만큼은 잃지 않을 것이다.”
인터뷰 내내 유독 나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여러 차례 토로한 김병지는 만약 20대 중반으로 돌아간다면 돈에 연연해하지 않고 해외진출을 시도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땐 해외에서 오퍼가 오면 구단에서 날 잡기 위해 외국에서 제시한 몸값을 연봉으로 보전해줬다. 돈을 좇지 않고 도전을 꿈꿨다면 그냥 주저앉지 않았을 텐데…,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뷰 말미에 김병지는 “내 인생은 마흔다섯 살 이후부터”라며 다음과 같은 멘트를 흘린다. “은퇴 후엔 여행도 다니고 밤늦게 돌아다니기도 하고 술도 마시면서 인간답게 살 거예요. 기록, 경쟁, 승부란 단어와 상관없이 맘 편하게 일상 생활을 즐기면서 참고, 안하고, 외면했던 생활을 누려보고 싶어요.”
마흔 살 이후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김병지의 은퇴 후의 삶이 참으로 소박하다. 그만큼 현재의 삶이 치열하다는 뜻이리라. 축구인생도, 봉사와 선행의 삶도,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생활까지 모범적으로 이뤄나가는 김병지의 그릇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