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화재의 정규리그 1위를 이끌고 있는 특급용병 안젤코. 인터뷰 중 어떠한 질문에도 소속팀이나 동료들에게 피해가 될 만한 멘트는 하지 않는 ‘노련함’을 보여줬다.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최소 비용의 최대 효과’란 경제 원칙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안젤코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위해 김상우 해설위원이 크로아티아어를 전공한 통역을 대동하고 안젤코를 만났다. 그러나 안젤코는 ‘노련한’ 용병이었다. 어떠한 질문에도 소속팀이나 동료들에게 피해가 갈 만한 멘트는 일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김상우(김): 요즘 기자들 사이에서 안젤코를 ‘천하장사’라고 부른다. 그만큼 체력이 좋다는 얘기인데 그 비결이 무엇인가?
안젤코(안): 별다른 비밀이 있는 건 아니다. 내가 태어난 보스니아는 전쟁 지역이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조숙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열 살 때 아버지가 전쟁에 참가했다. 전쟁을 치르며 생명의 소중함을 배웠고 어린 나이에 가족을 지키는 법도 알았다. 모든 걸 빨리 시작해서 그런지 체력보다는 정신력이 남보다 앞선다고 자부할 수 있다.
김: 맨 처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어떤 마음으로 한국에 들어오게 됐나?.
안: 한국 배구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가 없었다. 대신 아버지 친구 분이 세르비아에서 배를 모는 선장인데 그 분이 한국을 방문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아주 아름다운 나라고 기술이 발달한 나라며 살기 편안한 환경을 구축했다고 하더라.
김: 이탈리아 쪽에서도 입단 제의를 받았다고 들었다. 이탈리아를 거절하고 한국행을 택한 진짜 이유와 혹시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나?
안: 이탈리아는 익숙한 나라지만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고 싶어 한국행을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팀 훈련에 참가한 지 이틀 만에 내 선택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웃음). 그렇다고 포기나 좌절은 생각지도 않았다. 내가 더 열심히 해야 동료들을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감독님 말씀대로 뛰어다녀야 했다. 한 가지 부담스러운 점은 용병이 1명뿐이라 그 책임감이 막중했다는 사실이다.
김: 지난 10월 코보컵이 끝나고 퇴출당할 뻔했었다. 당시 안젤코의 경기를 지켜보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와 지금, 당신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안: 그때만 해도 팀의 훈련 시스템에 적응이 덜 된 상태였다. 알렉스(삼성화재 통역 담당 손정식 씨)가 코보컵이 끝난 후 ‘안젤코 성경’이란 10계명을 적어서 건네줬다. 용병은 점프를 잘해야 하고 스파이크를 위에서 때려야 하고, 블로킹도 잘해야 하고…. 그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보이지 않는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지금은 10계명을 모두 이행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쯤에서 또 다시 새로운 10계명이 전달될 것 같은데 (손정식 씨를 쳐다보며) 긴장되고 기대된다(웃음).
김: 배구 팬들은 삼성화재의 팀 성적이 안젤코에게 달렸다고 본다. 안젤코가 살아나면 팀 성적이 살고 안젤코가 죽으면 팀 성적도 죽는다. 이런 상황이 부담이 되지 않나. 또 이로 인해 자칫 자만심 같은 것도 생길 것 같다.
안: 단 한 번도 내가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팀이 잘 돼야 내가 잘 된다고 믿는다. 동료들의 도움없이 어떻게 내 플레이가 살아날 수 있겠나. 삼성 선수들은 모두가 하나의 ‘심장’처럼 움직인다.
안: 한국은 4개월인데 크로아티아는 6개월간 리그가 운영돼 경기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 배구 시작하고 나서 크리스마스 때 게임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새해를 맞는 1월 1일에도 게임을 했다(삼성화재는 유독 크리스마스, 신정, 설 모두 경기가 있었다). 크로아티아 친구랑 채팅을 하다가 친구가 ‘넌 크리스마스 때 뭐했냐’라고 묻기에 ‘난 시합 끝내고 그냥 잤다’라고 답했더니 기절하려고 하더라.
김: 유럽에선 이해가 쉽지 않은 경기 일정일 것이다. 안젤코에게 한국배구가 쉬운 건가, 아니면 당신이 경기를 잘하는 것인가?
안: 한국 배구는 결코 쉽지 않다. 수비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막강한 수비 상황에서 좋은 공격수가 되기 힘들다. 내가 한국 와서 가장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수비다. 처음엔 형편 없었는데 지금 많이 좋아졌다.
김: 한국에서 지낸 7개월 동안 가장 힘든 시기가 있었다면?
안: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호주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정말 많이 힘들었다. 하도 많이 뛰어서 내가 배구선수라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였다. 그때는 축구선수 안젤코였다(웃음).
김: 팀 훈련 중에서 러닝을 굉장히 힘들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사실인가?
안: (크로아티아 통역자에게) 당신은 모를 것이다. 러닝이 얼마나 힘든지. 이렇게 많이 뛰어본 건 한국에서 처음이다.
김: 신치용 감독은 어떤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나? 솔직하게 말해 달라.
안: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나.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으니까. 한마디로 정리해서 말하겠다. 내 인생에서 이런 분을 만난 건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김: 신치용 감독에게 이번 인터뷰를 통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 굉장히 치열하게 훈련을 시키면서도 지도자로선 정말 프로페셔널한 분이다. 그동안 몸은 힘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얻은 게 많았다. 모두 감독님 덕분이다. 냉정하고 엄숙해 보이는 외모임에도 흥분 잘하는 나를 제대로 다스려주실 줄 아는 ‘힘’이 있다.
김: 세터 최태웅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세터와 용병이라는 평도 있다.
▲ 안젤코와 김상우 해설위원. | ||
김: 지난 번 여자친구 미렐라(190cm)가 한국에 왔다가 뛰어난 외모로 인해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같은 배구 선수 출신이라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을 것 같은데.
안: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 평범한 여성 같으면 이해 못할 부분도 잘 이해해준다. 그리고 만나서 할 얘기가 많다. 내 여자친구가 예쁘다는 사실보다는 내 외모가 그녀에 비해 함량미달이란 사실은 잘 알고 있다(웃음).
김: 두 사람이 결혼하면 ‘슈퍼 베이비’가 태어날 것만 같다^^. 결혼 계획이 있다면?
안: 여친이 1년 정도 더 선수 생활을 한 다음 결혼하길 바란다. 1~2년 정도 후에 결혼할 것 같다.
김: 안젤코에게 돈과 배구 중에서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안: 당연히 배구다. 배구 다음은 가족이고 친구, 건강도 중요하다. 돈은 가장 마지막 부분이다. 난 돈을 쌓아둔 적도 없었고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적도 없었다.
김: 헤어스타일이 독특하다. 머리숱이 적어서 그런가? 아니면 원래 이렇게 삭발하는 걸 좋아하나?
안: 원래 곱슬머리다. 머리카락이 길면 굉장히 지저분해 보인다. 혼자서 바리캉으로 머리를 깎을 때도 있고 미용실에 가서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김: 다음 시즌에도 한국에서 안젤코를 볼 수 있었음 좋겠다.
안: 서로 만족한 상황이라면 안 있을 이유가 없다. 아직 (재계약에 대해선) 깊이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지금은 남은 시즌에만 충실하고 싶다.
안젤코는 한국 생활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으로 아침 7시에 일어나 단체로 아침 식사를 하는 스케줄이라고 꼽았다. 힘든 스케줄에도 한국 생활에 120% 만족하고 있다는 안젤코에게 ‘진정한’ 속내를 끄집어내기란 역부족이었다. 김상우 위원도 어쩌지 못할 만큼 심하게 ‘반듯한’ 대답이었지만 그 행간의 의미에서 안젤코의 인간적인 매력을 엿볼 수는 있었다.
KBS N 스포츠 해설위원
정리=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