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가대표에 발탁돼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전남드래곤즈 곽태휘 선수.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여튼 곽태휘는 ‘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미완의 대기라고 표현하지만 그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몇 주 동안 대기 상태였던 기자는 그의 주변을 취재하면서 한국 축구계에 드라마틱한 축구 인생을 살고 있는 곽태휘야말로 인터뷰하기에 너무나 좋은 ‘소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름이 독특해서 만나자마자 이름 풀이를 주문했다. 클 태(泰), 빛날 휘(輝) 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는 곽태휘란 이름은 현재 이름대로 크게 빛나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 ‘왜관 촌놈’이라고 말하는 곽태휘의 남다른 점은 축구를 시작한 ‘시기’다.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데 반해 곽태휘는 17세인 고등학교 1학년 여름부터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축구를 워낙 좋아했지만 내가 다니는 학교엔 축구부가 없었다. 그래서 ‘동네 축구’로만 만족했는데 어느날 선배가 축구부에 들어가기 위해 대구로 전학가는 걸 직접 봤다. 그 후 왜관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축구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작전’을 세웠고 대구에서 축구부로 제일 유명한 대구공고로 무작정 찾아갔다.”
1남1녀 중 장남인 아들이 공부가 아닌 축구를 하겠다고 나서자 부모님이 찬성할 리가 만무했다. 왜관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곽태휘의 아버지는 아들의 새로운 도전에 강한 반대 의사를 나타냈고 아들의 인생이 망가지는 걸 보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고집 센 곽태휘를 꺾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맘으로 대구공고를 찾아갔는지 모르겠다. 진짜 그냥 찾아갔다. 운동장 옆에 있는 감독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 ‘왜관에서 온 곽태휘라고 하는데 축구가 너무 하고 싶어 왔으니 축구를 할 수 있게끔 도와달라’며 인사를 드렸다.
감독님 입장에선 얼마나 황당하겠나. 초등학교 1학년도 아닌 고등학교 1학년생이 이제야 축구하겠다고 달려온 꼴이 얼마나 어이없고 우스웠겠나. 그런데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감독님은 내 배짱을 높이 사셨다. 한 게임도 못 뛸 수 있지만 일단 연습생으로 들어와서 훈련에 참여해 보라고 얘기하시더라.”
곽태휘의 축구 인생에 빠질 수 없는 키워드가 ‘실명’이다. 곽태휘란 이름이 ‘짠’하고 뜨자 언론에선 그의 왼쪽 눈이 실명 된 사실을 기사화했다. 곽태휘에 푹 빠져 있던 팬들은 정상인의 시력이 아닌 데도 빼어난 골 솜씨를 보여준 곽태휘에게 감동을 먹었고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에 또 다시 흥분하게 됐다.
“처음 내 눈이 실명이란 기사가 나왔을 때 좀 당황스러웠다. 선수들 중에는 나보다 더 심한 부상을 딛고 재기에 성공한 사람도 있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부상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다. 실명으로 이슈가 되는 건 너무 부담스러웠고 나중에 이 모든 걸 어떻게 감당할까 싶어 걱정스럽기도 했다.”
지금이야 운동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지만 고2 때 처음 왼쪽 눈을 다친 후에 1년간을 재활 훈련하면서 곽태휘는 공과의 거리 감각이 흔들려 상당히 고생했다고 털어 놓는다.
“공이 내 머리 쪽으로 뜬 것 같아 헤딩하려고 하면 ‘헛방’이었다. 한쪽 시력만으로 거리 감각을 되찾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더욱이 헤딩할 경우 혹시나 하는 재부상 위험에 공포에 떨어야 했던 기억도 있다. 1년 넘게 그 감각을 찾는데 집중했고 고등학교 4학년(곽태휘는 눈 수술로 1년을 더 학교에 다녔다)이 돼서야 가까스로 볼 타이밍을 찾을 수 있었다.”
시작도 늦고 한쪽 시력도 잃었지만 곽태휘의 진로는 막힘이 없었다. 고2때 이미 중앙대 진학이 예정돼 있었고 프로팀도 대학 3학년 때 일찌감치 FC서울로 결정났다. 대학에서 프로팀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할 만큼 어려운 상황인데 곽태휘는 너무나 쉽게(?) FC서울을 품에 안았다.
평발인 데다 중간 중간 크고 작은 부상이 곽태휘를 괴롭혔지만 프로 입단 전까지 그의 축구 인생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러나 2005년 FC서울에 입단한 곽태휘는 동기생 박주영이란 대형 신인 선수에 가려 존재조차 미미했다. 주전으로 경기에 출전한 시간보다 교체 출장 전문으로 자리를 굳혔다. 당시 박주영과 룸메이트였던 곽태휘는 “박주영이 언론의 엄청난 관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 했던 모습을 직접 지켜보며 ‘스타’가 되는 게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니란 것도 알게 됐다”고 설명한다.
2006년 두 살 연상의 강수연 씨와 결혼한 곽태휘는 2007년 7월 갑작스런 트레이드 통보를 받게 된다. 전남에서 뛰고 있던 김진규와 맞트레이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비록 FC서울에서 주전으로 뛰진 못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던 그에게 전남으로의 트레이드는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내 생활 신조가 ‘긍정의 힘’이다. 어려운 상황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겨내면 좋은 결과가 온다는 마인드가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엔 ‘내가 김진규보다 못한 선수인가’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용의 꼬리보단 뱀의 머리가 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고 당시 허정무 감독님 밑에서 제대로 배우자고 결심했더니 FA컵에서 결승골을 터트리게 되더라. 돌이켜 보면 진짜 한 편의 드라마 같다. FC서울에서 전남으로 이적해 온 뒤 허정무 감독님을 만나게 됐는데 그 감독님이 대표팀 감독이 되실 줄 누가 알았겠느냐. 나에게 태극마크는 꿈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 꿈같은 일이 불과 몇 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다.”
지난 1월 17일 곽태휘는 생애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최종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된다. 허정무 감독이 곽태휘를 직접 가르치고 지켜봤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예비 명단이 발표됐을 때만 해도 애써 기대를 갖지 않으려고 했는데 최종 명단 발표일이 다가올수록 하루하루가 불안 초조 긴장감의 연속이었다고 털어 놓는다.
“처음엔 아내가 문자로 알려줘서 태극마크를 달게 된 걸 알았다. 기분은 좋았지만 그때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파주트레이닝센터에 도착해서 가방을 들고 숙소로 향하는데 수많은 취재진들이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비로소 ‘아, 내가 정말 국가대표가 됐구나’하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국가대표팀 선수가 돼 첫 출전한 칠레와의 평가전은 한 마디로 ‘우왕좌왕’만 하다 끝났다고 한다. 대표팀 첫 출전이라는 압박감에다 처음 호흡을 맞춰본 선수들이다보니 평가전에서 서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
그러다 곽태휘는 2월 6일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1차전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전반 44분 A대표팀의 577분 골 침묵을 깨며 결승골을 터트린 것이다. 이어진 동아시아선수권대회 한-중전에서도 또 다시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작렬시켰다.
하지만 곽태휘는 동아시아대회 북한과의 경기에서 정대세에게 잡힌 마지막 골에 대해 “내가 좀 더 노력했다면 안 먹을 수도 있는 골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정대세는 참으로 인상적인 선수였다. 발전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고 머리도 샤프한 것 같고, 무엇보다 저돌적인 파워가 무시무시했다. 다음에 정대세를 만나면 지난 번과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곽태휘는 ‘골 넣는 수비수’라는 타이틀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자칫 잘못하면 수비보다 공격에 치중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조직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혹시나’하는 기대심리를 애써 외면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곽태휘는 왜관군청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서 한국대표팀을 응원하며 달뜬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나 2010년의 남아공월드컵 때는 ‘관중’이 아닌 ‘선수’가 돼 월드컵 무대를 누비고 싶은 바람을 숨기지 못한다.
“먼저 K리그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팀 주장이기도 하고 올시즌 중요한 대회도 많이 있기 때문에 소속팀 경기에 충실하고 싶다. 월드컵은 내 인생의 꿈의 무대다. 그래서 K리그에 더 올인하고 싶다. 세상은 열심히 뛰는 자를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누구 누구 닮았다는 얘기가 절로 나올 만큼 곽태휘의 외모는 근사하다. 그래서인지 그가 유부남이란 사실에 어떤 네티즌은 ‘훈남은 조기품절 된다’며 한탄의 글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기자는 그가 ‘조기 품절’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곽태휘가 미혼이었다면? 아마도 숱한 유혹의 손길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대표팀에선 허정무 감독의, K리그에선 소속팀 박항서 감독의 황태자로 실력을 인정받겠다는 곽태휘의 전성시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올시즌 K리그를 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을 것만 같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