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맨 왼쪽)의 ‘100일 민심대장정’에 동참한 남경필 박찬숙 정병국 의원(왼쪽부터)이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내촌농협 유통센터에서 풋고추를 선별,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
그런데 이보다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최근 한나라당 내 소장파들을 중심으로 손 전 지사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 중에는 ‘공개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있고 그의 민심대장정에 찬조 출연하는 인사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 내에는 이명박-박근혜 양자구도는 경쟁을 과열시켜 자칫 파국으로 몰지 모른다는 이야기와 함께 여기에 손 전 지사를 포함한 3자 구도를 대선 국면 막판까지 이끌고 가야한다는 소리도 높다. 이러한 정국 전망과 함께 벌어지고 있는 ‘손학규 다시보기’ 움직임은 연말 정국의 또다른 국면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동반상승효과’를 노리는 소장파의 ‘한때 불장난’이라는 지적이 없는 것도 아니며 또 이들의 ‘공생관계’는 언제든 깨질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손 전 지사의 100일 민심대장정 이후가 주목되고 있다.
경기도지사직에서 물러난 직후인 지난 7월 1일 손학규 전 지사는 전국을 돌며 민심을 직접 듣겠다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100일 민심대장정’이라는 타이틀로 시작된 손 전 지사의 민심탐방은 이제 곧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손 전 지사의 야심찬 행보와는 달리 ‘대권주자’로서의 그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밀려 미미한 발걸음을 걷는 듯했다. 언론에서는 박 전 대표, 이 전 시장과 함께 한나라당 ‘빅3’라고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민심대장정을 시작한 지난 7월 무렵,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은 고작 2%대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는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장관 등과 엇비슷한 수치였다.
그런데 지난 80여 일 동안 탄광에서, 수해현장에서, 논과 밭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동안 손 전 지사를 향한 민심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것. 물론 아직까지는 미미한 수준이고 조사기관마다 약간의 차이는 존재하나 대체적으로 지지율 상승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수치인 5%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리서치앤리서치의 9월 21일 조사에 다르면 이명박 25.2%, 박근혜 24.3%, 고건 19.6%, 손학규 4.8%였다. 손 전 지사의 ‘100일간의 전국일주’는 고생만큼 성과를 얻어낸 듯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손 전 지사의 대장정에 ‘한목소리’를 내며 힘을 실어준 이들이 있다. 바로 한나라당 소장파다. 최근에는 ‘손학규-한나라당 소장파 연대론’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정가도 이들의 연대를 주목하고 있다.
신호탄을 올린 것은 예상대로(?) 남경필 의원이었다. 지난 7월 20일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의 새 대표로 선출된 남 의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손 전 지사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남 의원은 또 지난달 30일 CBS <뉴스레이다>에 출연,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지지율이 높아질 필요가 있다”며 “손 전 지사가 가진 역량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 돼 있는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과도한 갈등구조를 피하고 화합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양자구도보다는 삼자구도, 삼자구도보다는 다자구도가 더 좋다”며 이같이 밝혔다. 남 의원은 또 지난 19일 “한 사람이 대권에 승리했을 때 나머지 사람들의 경우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정치적 역할이 분명히 나와줘야 당이 무난히 대선을 치를 수 있지 않겠냐”며 “예를 들어 총리라든지 또는 당권을 갖는다든지 이런 것이 자연스러운 역할 분담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공동 집권론’으로까지 논리를 발전시켰다.
이후 수요모임뿐 아니라 푸른모임, 국가발전전략연구회 의원들도 동참의사를 밝혔다.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과 임태희, 박찬숙, 공성진 의원 등 10명이 넘는 의원들은 민심대장정 현장에 수차례 방문하며 ‘손학규 띄우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런 소장파들의 움직임은 한때 정가에서 손-소장파 신당 창당설까지 만들어 내기도 했다.
▲ 지난 6월 30일 ‘민심대장정’을 시작하는 손학규 전 지사. 연합뉴스 | ||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지지에 대해 손학규 전 지사 역시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2~3%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던 지지율이 최근 5%에 바짝 다가선 것에는 이들의 공개지지가 한몫을 했다는 분석을 내리고 있기 때문.
처음 수요모임에서 민심대장정 동참의사를 전해왔을 때 손 전 지사 측에서 ‘말을 아끼던’ 모습에서 나아가 좀 더 여유 있는 기색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손 전 지사 측 관계자는 “소장파들의 도움은 고마운 일이다. 손학규 전 지사가 갖고 있는 개혁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에 그들도 동의하고 공감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소장파들의 고민도 엿보인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지난 7·11 전당대회에서 권영세 의원을 단일후보로 내세웠지만 참담하게 패한 뒤 침체 분위기를 이어왔다.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으로 양분된 당내에서 더 이상 역할이 없어진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한때 수요모임의 ‘해체설’까지 나돌 만큼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이런 가운데 소장파들이 내린 선택이 바로 손학규였던 것. 즉 제3의 인물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이다.
수요모임이 손학규 전 지사를 택한 근간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야당 내 야당적’ 존재로서 뼈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한 이유였다고 한다. 소장파들이 가진 개혁적 마인드와 비주류적 입장 또한 ‘양강’인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과는 맞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친박’이나 ‘친이’ 등 ‘계파분류’를 원하지 않는 색깔이 결국 어쩔 수 없이 ‘친손’이라는 입장을 취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날수록 수요모임 주요 멤버들 중 “손학규만한 인물이 없다”며 대권후보로서의 손학규의 자질에 높은 점수를 매기는 인사들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요모임의 한 의원은 “우린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소장파의 색깔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가. 우린 주류가 아니므로 좀 더 당당하게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손학규 전 지사 지지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이 일치단결해서 손 전 지사를 끝까지 밀리라고 보는 것은 아직은 이르다는 분석도 없지는 않다.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손 전 지사의 지지 이유로 내세우는 점이 ‘손학규에 대한 호감도’보다는 ‘대권구도의 바람직한 3자구도 만들기’에 더 명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3자구도가 달성되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말을 바꿔 탈 가능성이 언제든 존재하는 것이다. 수요모임의 한 의원도 “당분간 손 전 지사를 지지할 생각이지만 본격적인 대권경쟁이 시작될 즈음까지를 일차적인 시점으로 보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한 수요모임 내 멤버들 사이에서도 손학규 전 지사에 대한 미묘한 입장 차이를 충분히 느길 수 있다. 수요모임이 손 전 지사 지지를 ‘공식입장’이라고 못 박지 말아달라는 주문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손 전 지사 측 역시 “연대니 세력이니 하는 용어는 부적절하다”며 다소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무튼 현재로선 손학규 전 지사나 한나라당 소장파 모두 ‘공생관계’로서 도움을 얻은 것으로 분석되며 앞으로 손학규 전 지사의 향후 지지율 변화나 정국의 움직임에 따라 그 관계가 좀 더 복잡한 지형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정계의 일반적 분석이다. 결국 문제는 손 전 지사의 지지율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대장정이 끝나가고 있는 손 전 지사 측도 조급한 심정이다. ‘저평가 우량주’라는 말을 듣고 있는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할 경우 소장파들의 확실한 충성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이를 넘어 당내에 확실한 지분까지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 손 전 지사 측의 희망이다.
손 전 지사의 민심대장정은 대권후보로서의 손학규 이미지 심기에도 성공적인 성과를 얻어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애초 예정되었던 100일이 되는 시점은 추석연휴기간인 10월 7일. 그러나 예정일을 며칠 넘긴 12일께 그 ‘종지부’를 찍게 된다고 한다. 손학규 전 지사 측의 이수원 공보관은 “9월 30일부터 대장정의 마지막 일정으로 광역시를 돌게 되는데 한 도시를 이틀 정도씩 잡으면 100일이 되는 10월 7일을 넘기게 될 것 같다. 추석기간의 민심을 읽는 것도 좋은 마무리 일정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때가 되면 바람이 불지 않겠느냐”며 현재의 지지율에 일희일비 하지 않겠다는 손 전 지사가 과연 ‘손풍’을 몰고 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