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에 정계개편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왼쪽)와 한나라당 지도부. 가운데는 지난달 27일 “한나라당과의 통합은 없다”고 밝히는 한화갑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국민들도 궁금하다. 서민들에게 올해 추석 분위기는 왠지 을씨년스럽다. 장기간 불황으로 서민들의 삶은 불안하고 궁핍하다. 9일 연휴에도 ‘그냥 집에 있겠다’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개구리’ 정치권은 2007년 대통령 선거와 정권재창출, 정계개편 등의 뜬구름 잡는 일에만 매몰돼 있다. 국민들은 답답하다. 그러나 정치는 그래도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첫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또한 천리 길 멀다하지 않고 달려간 고향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척끼리 모처럼 장래 국가의 미래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국가 장래를 위한 중요한 담론일 수 있다.
<일요신문>은 추석을 맞아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떠돌던 각종 정계개편의 핫 이슈들을 종합, 집중 분석해 봤다.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의 운명은 해체론과 사수론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해체론부터 살펴보자.
해체론은 열린우리당이 중도파와 개혁세력으로 분열돼 해체되는 시나리오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대철 고문의 통합신당론과 신중식 의원 등이 주장하는 민주당 합당론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이 주장하는 대 통합 신당창당론. 정 고문은 “여당 주도로 민주당 등을 흡수해 통합하는 것보다는 기득권을 버리고 신당을 창당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열린우리당 해체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열린우리당 외에 민주당, 국민중심당, 고건 전 총리 모임 등 ‘반 한나라 연대’의 가능성이 있는 집단이 그 대상이다. 특히 한나라당 일부 세력도 아우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 고문은 특히 “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통치만 잘 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노 대통령은 적극적 장면에서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용 정당을 만드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언급해 정 고문이 주장하고 있는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정 고문이 주창하는 신당창당론은 노 대통령 동승 여부가 최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염동연 의원의 ‘민주당 통합론’도 결국 정 고문의 신당 창당론과 비슷한 맥락이다. 염 의원은 최근 “우리가 민주당 보고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거나 민주당이 우리 보고 들어오라면 들어갈 수 있겠느냐”며 열린우리당 ‘해체’와 ‘제3지대론’을 역설한 바 있다. 이는 정통 민주개혁세력과 지식정보화 세대·전문가 집단이 모여 ‘새로운 집(제3의 정당)’을 짓자는 것으로, 여당의 발전적 해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1%가 ‘열린우리당이 현재의 틀로는 안 되며 중도개혁세력과 통합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정 고문과 염 의원의 ‘통합론’이 매우 설득력이 있음을 말해준다. 현재 노 대통령과 열린 우리당의 지지율을 보아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친노그룹’은 사수론이다. 당을 ‘사수’하면서 중도세력을 영입해 외연을 확대해 나가자고 주장한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한 “당과 함께하다가 죽겠다”는 발언과 무관치 않다.
친노그룹의 김형주 의원은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에도 통합에 반대하는 기류가 3분의 1 정도 된다. 외형적으로 통합이 되더라도 내부적으로는 산산이 부서지는 결과가 올 것”이라며 무원칙한 통합 논의에 제동을 걸고 있다. 특히 이들은 노 대통령을 배제한 통합론을 ‘민주세력 분열’이라며 심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결국 통합을 강행할 경우 당의 분열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친노그룹의 당 사수론과 맥락을 같이 하는 또 다른 시나리오는 바로 김근태 의장이 주장하고 있는 민주개혁대연합론이다. 이는 열린우리당이 온전히 유지되는 가운데 민주당, 고건 전 총리, 심지어 손학규 전 지사 까지 총 결집해 ‘반 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하는 구상이다. 특히 김 의장은 민주개혁대연합세력의 지지로 차기 대권 후보가 되든지, 킹메이커로 변신할 것인지 고민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절충론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가능성에 의문이 있다.
최근 열린우리당이 확정한 ‘100% 개방형 국민참여 경선제’도 변수다. 정치권에서는 오픈프라이머리가 여당의 분당을 막기 위한 노 대통령의 비책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노 대통령은 이미 올해 초부터 제3의 외부인사를 차기 대권주자로 염두에 두고 오픈프라이머리를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그가 계속 주장해온 ‘외부선장론’의 사전 정지 작업이 오픈프라이머리 실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유시민 강금실 김혁규 등 제3의 후보들이 ‘대권 스타’의 꿈을 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고건 전 총리 등이 합류해 자연스런 정계개편을 이룬다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희망이다.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여당발 정계개편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러면서도 한나라당이 모든 당력을 집중해 정계개편에 대비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한나라·민주 연대’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적극적인 구애 공세를 펴는 데는 민주당을 먼저 끌어안아 정계개편 가능성에 대비하고 그것이 안 된다면 여당과 민주당의 ‘틈새’를 계속 벌려 ‘반 한나라 전선’을 구축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한·민 공조’는 정치적 제스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먼저 한나라당에 대한 호남 민심의 뿌리 깊은 불신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호남에 대한 편견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부감을 과연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또한 민주개혁세력의 적자임을 강조해 온 민주당이 수구보수 이미지의 한나라당과 ‘연대’를 할 경우 민주당의 전통 지지층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동교동계도 대부분 “50년 전통 민주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불가”라는 입장이다.
▲ 고건 전 총리. | ||
문제는 각 대권 주자들이 오픈프라이머리 수용 여부를 두고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여론조사에서 앞서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쪽이 오픈 프라이머리에 강한 호감을 갖는 반면, 당내 지분율이 높은 박근혜 전 대표 쪽은 현재의 당헌당규에 따른 선출방식을 원한다. 한나라당에 결합할 뉴라이트 진영도 정권탈환을 위해선 오픈 프라이머리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시장이 오픈 프라이머리 수용 여부를 두고 박 전 대표와 담판을 한 뒤 협상이 결렬되면 그것을 명분으로 탈당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이 현실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정계개편의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카드는 뉴라이트와의 연대다. 최근 뉴라이트 전국연합 김진홍 상임의장이 내년 3~4월께 한나라당을 포함한 정치권과의 연대 계획을 밝혀 당내의 큰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한나라당으로선 뉴라이트를 매개로 보수 진영의 외연 확장을 꾀할 필요가 있고, 뉴라이트도 한나라당을 발판으로 정치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가 있다.
그러나 장밋빛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뉴라이트 운동의 본류를 자임하는 ‘자유주의연대’의 신지호 대표는 김진홍 목사 등을 겨냥해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자민련이나 한나라당에서 낙마한 사람들 위주로 구성된 정치적 유랑아에 가깝다. 자신들의 정치권 입성을 노리는 소위 ‘간판만 뉴라이트’”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는 한나라당이 외연 확대를 위해 마구잡이식 영입 작업을 벌여 오히려 당의 정체성을 훼손할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다.
고건 전 총리
고건 전 총리가 던질 수 있는 정계개편의 카드는 세 가지다. 모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관심의 초점이다. 고건 신당을 창당해 독자 후보로 대선에 나서든지, 아니면 여야의 정당에 직접 뛰어들어 대권 후보 자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통합신당이 만들어질 때 그곳에 합류하는 방법도 있다.
고 전 총리는 ‘희망연대’를 띄웠지만 준 정치결사체이기 때문에 독자 신당 창당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지지율 하락에 따른 부담으로 여당 입성이나 통합신당 합류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모습이다.
최근 그의 영입에 매달려온 민주당 신중식 의원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던 고 전 총리가 지금은 기존 정당과의 접촉을 강화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다. (최근 정계개편 논의가 달아오르자) 조금 조바심이 있었던 것인지, 위기의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 전 총리가) 12월 정계개편론에 동조하고 나선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고 전 총리가 김한길 원내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중도개혁연합세력 구축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피력한 것도 ‘심경의 변화’가 읽혀지는 대목이라고 본다. 또한 고 전 총리는 열린우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해 “대선 후보 선정을 위해 진일보한 제도 개선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내 주자들의) 기득권이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겠느냐”며 구체적 관심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가 “고 전 총리가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한다면 흥행에 도움이 될 순 있어도 승리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오픈프라이머리에 참여하는 순간 열린우리당의 마이너스 효과를 볼 것이기 때문에 그의 오픈 프라이머리 참여는 그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전망이다.
한편 고 전 총리 측의 김덕봉 전 총리공보수석은 “고 전 총리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파와 연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며, 열린우리당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라며 김 원내대표와의 회동에 대한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고 전 총리가 가장 유력하게 검토하는 안은 통합신당을 통한 입지구축으로 보인다. 고 전 총리는 최근 “열린우리당 내에서 나오는 중도통합 신당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 부분은 의미심장하다. 이 발언은 그가 기존 정당과 거리를 둬 온 점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고 전 총리는 신당 창당이나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한 여당 입성과 같은 방법이 아니라 여권의 해체 후 대통합이라는 정계개편 속에서 만들어지는 신당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무임승차’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