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고건 전 총리(왼쪽)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2006 여성발명인 걷기대회에 참석, 몸을 풀고 있다. 연합뉴스 | ||
고 전 총리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10여 개 공·사조직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앞으로 창당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이는 가칭 ‘북촌포럼’도 창립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의 정치적 이념과 노선에 동조하는 여야 현역 의원 30여 명도 신당 참여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고 전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독자신당 노선이 열린우리당 의원 절반 이상이 동조하고 있는 ‘헤쳐모여식’ 통합신당론과 일정 부문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고건 신당’은 여권 분열을 촉발하는 화약고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에도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고 전 총리를 정점으로 고구마 줄기처럼 뻗어 있는 이른바 ‘고건 인재풀’ 및 신당의 성격과 파괴력 등을 중심으로 고 전 총리가 구상하고 있는 대권 마스터플랜을 진단해 봤다.
“중도실용개혁 세력을 하나로 모으는 국민통합 신당의 주춧돌 역할을 하겠다”.
지난 2일 청주에서 열린 충북 미래희망포럼 창립기념식에서 고 전 총리가 밝힌 신당 청사진이다. 신당 창당 시점과 관련해서는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께 창당 작업을 본격화할 것”이란 구상도 제시했다.
그동안 답답할 정도로 대권과 관련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던 고 전 총리가 대권구상이 끝났다는 듯 자신감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북핵 사태 이후 지지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헤쳐모여식’ 통합신당론이 공론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밀리면 안 된다”는 위기감과 함께 본격화되고 있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나름의 포석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고 전 총리가 자신의 대권구상을 공개하면서 열린우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와 관련해 “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특정 정당에서 하는 오픈 프라이머리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히면서 기존 정당 간 통합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대목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여권과 확실한 선을 그음으로써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란 일부 정치권의 비판적 시각을 해소시키는 동시에 자신을 중심으로 한 통합신당을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고 전 총리는 신당 성격과 관련해서는 “국민을 통합하고 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이 시대 최고의 개혁이며 이를 위한 국민대통합 신당의 창당이 시대적 요청”이라며 “중도실용개혁에 뜻을 같이하는 양심적 인사라면 정파와 지역을 넘어 누구와도 손을 잡겠다”고 말했다. 이는 열린우리당 내 통합신당론자들의 구상과 상당부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고 전 총리의 대권구상이 여권 분열을 촉발하는 매개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정계개편론에 불씨가 지펴진 여당 내부에서도 고 전 총리를 포함한 범여권의 중도개혁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통합신당파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2일 의원총회를 통해 정계개편 논의를 정기국회 이후로 미루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 일시 봉합 국면을 맞이하고 있지만 이미 지펴진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기국회 기간이라는 점과 이탈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는 통합신당파 중 일부 의원들이 ‘고건 신당’에 전격 참여할 경우 정계개편 불씨는 거대한 산불로 번지면서 여권 분열을 부추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2일 기자에게 “답답할 정도로 신중한 고 전 총리가 자신의 대권구상을 전격 공개한 배경에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신당창당 및 내년 대선정국 셈법과 관련해 여야 일부 정치세력과 이미 조율을 마쳤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고 전 총리와 가까운 안영근 열린우리당 의원은 3일 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고건 신당’의 교섭단체 구성 여부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국민들이 염원하는 안정적인 중도실용주의 개혁세력이 현재 각 당에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묶여 있는 상태”라며 “이 분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집이 신당인데 이쪽으로 함께 모일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놓으면 거의 100여 명 이상이 함께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도 “민주당이 추구해온 정계개편은 제3지대에서 중도개혁 세력의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이라며 “고 전 총리도 그런 의미에서 신당을 창당할 것으로 본다”고 원론적인 공감을 표시했다.
고 전 총리 캠프에서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한 인사는 2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지금 당장은 눈치를 보고 있지만 신당창당 작업이 본격화되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등 여야 현역 의원들의 참여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며 “최소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조건(20명)은 충족시킬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인사는 또 “고건 신당은 ‘고건+여권 이탈세력+민주당+국민중심당+α’ 라는 큰 틀 안에서 국민통합을 이끌어 내는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고 전 총리 인맥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고 전 총리는 현재 10여 개의 공·사조직을 포함해 광범위한 인재풀을 형성하고 있다.
4만 50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우민회’를 비롯해 고 전 총리의 전위부대를 자임하고 있는 ‘국민통합을 위한 고건 대통령후보 추대 전국청장년연대’(고청련), ‘고건과 함께 희망을 여는 사람들’(GK PEOPLE), ‘대한민국 희망 이끔이 청년 클럽 YGK’ 등이 대표적이다.
또 고 전 총리의 싱크탱크로 통하는 ‘미래와 경제’ 외에도 ‘다산연구소’와 ‘동숭포럼’은 정책 조언을 담당하고 있다. ‘미래와 경제’는 고 전 총리를 비롯해 이세중 전 대한변협 회장, 김영환 션인터내서날 대표,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김용정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 150여 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바 있다.
‘동숭포럼’은 김상하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재순 전 국회의장, 강홍빈 서울시립대 교수 등이 핵심 멤버인데 오래전부터 동숭동에서 고 전 총리와 모임을 가져왔다.
박석무 이사장이 주도하고 있는 ‘다산연구소’는 고 전 총리의 후원조직임을 부인하고 있지만 고 전 총리가 이 연구소 고문을 맡고 있고 고 전 총리와 가까운 상당수 인사들이 이곳에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 향후 고 전 총리의 대권행보에 적잖은 우군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비공식적인 사조직도 방대하다. ‘초당회’는 고 전 총리가 전남도지사를 하던 시절에 인연을 맺은 인사들의 모임이고 ‘상록회’는 미국 하버드대학 유학시절에 만난 사람들이 모여 구성한 테니스 모임이다. 또 ‘보름회’는 전남도지사를 하던 시절에 알게 된 사람들이 만든 모임으로 매월 보름날 자리를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고건 맨’으로 분류되고 있는 신중식 최인기 의원 등이 이 곳 멤버다. ‘문경회’는 문민정부 시절 마지막 내각 각료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모임이다. 이밖에도 ‘경기고 동창모임’ ‘서울대 정치학과 동창모임’ ‘고시 13회 동기모임’ 등 학연을 매개로 한 모임도 고 전 총리 인맥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고 전 총리의 주도로 지난 8월 말 발족한 ‘희망한국국민연대(희망연대)’는 고 전 총리와 참여 인사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치결사체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발기인 106명의 면면에 비춰 볼 때 ‘고건신당’ 창당 과정에서 막후 역할을 담당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 <일요신문>이 최근 단독 입수한 가칭 ‘북촌포럼’ 발기인 명단도 고 전 총리의 정치결사체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 명단에는 고 전 총리와 가까운 전직 의원들과 장관 출신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신당의 밑그림 등을 담당하는 고 전 총리의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심 끝에 독자신당 카드를 꺼내든 고 전 총리가 막강한 인재풀을 자산으로 범 여권통합을 주도할 키워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아니면 장밋빛 청사진에 그치고 말지 그의 대권행보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