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대권주자들이 부동산 해법 마련에 공들이고 있다. 위는 13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현장의 사진기자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손학규 전 지사와 박근혜 전 대표. 아래는 10일 열린우리당 창당 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천정배 의원. | ||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등 여권 대권 주자들은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면서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 ‘빅 3’는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서 “정권 교체만이 가장 확실한 부동산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여야 대권 주자 모두 부동산 문제가 차기 대선의 핵심 이슈로 보고 정책 개발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일부 정치 전문가들은 “땅이 차기 대권을 가를 핵심 이슈”라고까지 이야기한다. 부동산 문제와 차기 대선의 이차방정식을 계산해봤다.
현재 국민들은 2007년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이슈를 ‘경제’로 보고 있다.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3.9%가 ‘경제 회복 및 활성화’를 내년 대선의 가장 큰 이슈로 꼽았다. ‘정치 개혁’은 정치권에선 주요 화두지만, 대선에서 큰 이슈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응답자는 5.7%뿐이었다. ‘남북 및 한미 관계 등 외교안보 현안’도 4.5%에 그쳤다.
그런데 부동산 문제가 경제 정책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면서 정치권에서는 ‘땅’을 둘러싼 변수들이 내년 대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지방선거는 정부 정책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다. 반면 대통령 선거는 후보가 제시하는 미래와 비전에 크게 좌우된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가 개혁세력 대 기득권 세력의 구도로 진행돼 노무현 후보가 시대정신을 얻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지난 1997년 대통령 선거는 IMF 위기를 초래한 김영삼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의 성격도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는 2007년 대통령 선거도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도 어느 정도 ‘표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특히 북한 핵실험 파문에도 차분했던 민심이 이번 부동산 폭등 때는 민란 운운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부동산이 내년 대선 때까지도 안정되지 않는다면 대선의 핫 이슈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올해 초 아파트 반값 분양 정책을 제시해 호평을 받았던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부동산 문제가 내년 대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문제를 잡지 못하면 15년 동안 장기 복합 불황을 겪었던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 여야 대권 주자들은 전혀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 내가 제출할 예정인 아파트 반값 분양 관련 법안에 여야 의원 50여 명이 서명했다. 여야 대권 주자들이 나의 정책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면 아이디어를 차용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가 대선의 주요 이슈로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연구실장은 이에 대해 “현재의 부동산 문제는 정부 정책 실패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내년 선거에서 각 후보들은 부동산 정책들을 쏟아낼 것인데 그것이 당락을 가를 정도의 변별력을 가졌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야의 부동산 정책이 크게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심리적인 요인이 크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가 부차적인 변수는 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선거 결과가 결정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부동산 문제가 노무현 정권 성패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여야 대권 주자들은 저마다 해법과 대안을 내놓고 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등 여권 대권주자들은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비판하며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노리고 있다.
그런데 정 전 의장의 경우 자신이 집권 여당의 의장을 지내면서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미쳤음에도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이에 대해 여권의 한 전략 관계자는 “정 전 의장으로서는 이제 물 불 가릴 처지가 못된다. 여전히 지지율은 한 자릿수를 맴돌고 있고 독일 ‘유학’ 뒤에도 이렇다할 이슈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국민들 머릿속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는 대권 주자의 이미지를 다시 각인시키기 위해 앞으로 계속 강수를 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천정배 의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반면 한나라당 주자들은 대체로 “정권 교체만이 가장 확실한 부동산 정책”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노 정권의 정책 실패를 적극 거론할 전략을 세우고 있다. 현재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내는 후보는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다. 손 전 지사는 최근 “조세개혁특위가 내놓은 안으로 인해 한나라당이 ‘부자비호정당’이라는 소리를 듣도록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한나라당의 주택정책은 무주택자와 1가구 1주택자를 대변하는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부동산 급등으로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다주택자나 건설업자를 대변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두고 당 일각에서는 “손 전 지사가 민심대장정을 통해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대변자가 된 것 같다. 특히 한나라당이 커버하지 못하는 중도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전략으로 보인다. 이-박 두 주자들과의 정책과는 차별화된 측면도 있어 지지율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개발과 공급 확대를 더 강조하고 있다. 두 주자는 부동산 정책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박 전 대표 측은 “부동산 문제가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일 것으로 본다. 노무현 정권이 세금폭탄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발상에 동의할 수 없다. 박 전 대표는 이런 점에서 부동산 정책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교육 등 모든 정책과 조율해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용적률 상향조정 등 주택 공급 물량 확대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 전 시장은 건설업체 CEO 출신이라는 강점 때문에 ‘부동산 난국’을 가장 잘 헤쳐 갈 리더로 꼽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그는 국내 건설사의 막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국내 유수의 한 건설업체 임원은 “이 전 시장의 경부대운하는 건설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 아이디어다. 그가 집권하게 되면 건설업에 활기가 돌면서 경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측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내비친다.
그런데 부동산 문제가 향후 대선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또 다른 요소가 있다. 전국이 부동산 광풍에 휩싸이자 집값을 잡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는 순수 시민들이 주도하는 ‘아내모(아파트값을 내리기 위한 모임)’ ‘아파트 분양가 30% 내리기 운동’ 등의 커뮤니티가 최근 온·오프라인 모임을 활성화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정의실천연합회(경실련)는 최근 ‘부동산 시국선언 및 국민행동’을 선포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특히 경실련은 내년까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부동산 정책 요구안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대선 주자들을 대상으로 공약선택운동을 벌이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후보에 대해 당선반대운동을 벌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부동산 폭등이 단시일 내에 해결되지 않을 경우 시민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동산 변수는 대선 주자들에게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