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0년 평양에서 만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 ||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최근 몇 달 전부터 검찰이 론스타 매각과정 수사를 하면서 대북 송금 특검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나머지 5억 달러’에 대한 단초를 밝혀냈고 그 돈이 외환은행을 통해 북한으로 보내졌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돌았다. 여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한 소문도 들어있어 사건의 규명 여부에 따라 향후 정국의 핵폭탄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론스타 사건에 얽혀있는 대북송금 미스터리를 추적해봤다.
지난 11월 20일. 국회에서는 김만복 국정원장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김만복 내정자에게 “김대중 정권 때 남북정상회담 성사 대가로 5억 달러를 주었는데 그 외에 5억 달러를 더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김 내정자는 “당시 정상회담 실무자였기 때문에 그런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3일 뒤 정 의원은 국정원장 청문회 때 주장했던 것보다 한 발짝 더 나간 얘기를 꺼냈다. 그는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해 북한에 거액을 송금했다는 사실이 나왔다. 엄청난 막후 비리가 발견됐다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최고의 사법기관인 검찰과 법원이 서로 존중하며 사건의 실체 규명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해 조용했던 회의장에 일순 긴장이 감돌았다는 전언이다.
한편 검찰은 정 의원의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채동욱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은 “어디에서 어떻게 나온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검찰 수사과정에서 그런 돈이 나온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일요신문>은 이 문제와 관련, 정 의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사실 정치권에서는 정 의원의 주장과 비슷한 ‘소문’들이 이미 떠돌고 있었다.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정보계 관계자 A 씨는 이에 대해 “최근 한 소식통으로부터 검찰이 론스타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대북송금 특검 때 밝혀진 5억 달러 외에 현대의 해외법인 비자금 수조원이 외환은행 해외지점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갔을 ‘심증’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아직 물증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검찰이 작심하고 파면 금방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고 밝혔다.
또한 A 씨는 “론스타 사건과 관련해 검찰 주변에서 회자되는 또 다른 이야기는 김대중 정권이 비밀리에 보낸 대북송금 사건이 다음 정권에서 드러날 것을 우려, 외환은행을 외국에 팔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송금 창구였던 외환은행을 국내 은행에 매각해도 비밀이 탄로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예 외국에다 외환은행을 매각할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외환은행이 서둘러 헐값에 매각되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덧붙여 외환은행의 대북송금 과정에서 국정원이 관련이 돼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전문가 B 씨는 이에 대해 “80년대 이전에는 환전이나 해외송금업무 등을 외환은행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정원이 외환은행 계좌를 해외송금 루트로 활용했고 그 관행이 2000년 대북송금 당시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었기 때문에 국정원도 대북송금 과정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정형근 의원. | ||
먼저 지난 2003년에 있었던 대북송금 특검의 전후 과정을 잠깐 살펴보자. 당시 특검팀은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원장은 2000년 3월 중국 상하이에서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2차 예비접촉을 가진 뒤 고 정몽헌 현대 회장을 별도로 만나 정상회담과 남북경협의 대가로 모두 10억 달러를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에 정 회장이 “우리에게 그런 돈이 어디 있느냐”면서 거부하자 송 부위원장은 “돈이 안 되면 정상회담을 못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한다. 그 뒤 남북 양측은 ‘협상’을 통해 대북 송금액을 5억 달러로 최종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특검 과정에서 대북 송금액이 5억 달러가 훨씬 넘을 것이라는 의혹이 계속 제기된 바 있다. <중앙일보>는 현대그룹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현대상선이 2000년 6월 미국 현지법인인 미주본부를 통해 3억 달러를 북한에 더 보냈다”고 밝힌 바 있다. <월간조선>도 정몽헌 회장 친척의 말을 인용해 “당시 현대그룹은 5억 달러가 아닌 8억 달러를 북한에 보냈다. 송금 경로는 현대계열사의 유럽 법인이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특검팀은 “5억 달러 외에 추가 송금된 ‘플러스 알파’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혀 그 부분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 정 의원이 또 다시 문제의 ‘플러스 알파’를 건드리는 발언을 해 앞으로 그것의 규명 여부에 따라 정국은 제2의 대북송금 사건 정국으로 급속히 휩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북송금의 ‘플러스 알파’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적극적인 의지로 수사를 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결국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대북송금 의혹이 제기되면 될수록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도 재정립될 수 있다. 한나라당은 벌써부터 외환은행 매각 사건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연결 지으려는 의도도 내보인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형근 의원이 주장하고 있는 외환은행 매각 사건의 이면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도 연결된 부분이 있다고 본다. 김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청와대 출신 인사 K 씨가 외환은행 매각 결정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조성된 해외펀드 자금 가운데 일부가 김대중 정권의 유력 정치인 소유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앞으로 검찰이 이런 부분에 대한 수사도 철저하게 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론스타 수사는 법·검 갈등을 야기하더니 마침내 정치권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물론 대북송금 문제는 북한 핵실험으로 복잡해진 남북 사정을 감안할 때 쉽사리 건드릴 수는 없는 사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자금이나 다른 사안의 경우라면 다르다. 그 경우 이 그림자는 자칫 대권구도에도 엄청난 파문을 드리울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 11월 24일 비공개로 열린 국정원 국정감사 과정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가 도마에 올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 정보위원은 이에 대해 “지금 항간에는 최근 김 전 대통령이 활발하게 정치행보를 하는 배경에 자신이 정권 재창출에 기여해 비자금의 은닉 사실을 덮으려 한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 미국 FBI에 소환될 예정이고 하원의 국제관계소위원회에서도 다루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친북단체 등을 통해 북한으로 넘어간 흔적이 있는지 조사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국정원은 이 사안에 대해 ‘모른다’고만 대답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상을 조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핵심 인사를 만난 C 씨는 이에 대해 “최근 동교동 측에 김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를 물어봤다. 그쪽 반응은 ‘모두 뜬소문일 뿐이다. 아무런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더라. 그래서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