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29일 서울 제이유그룹 사옥. 손을 맞잡고 있는 플래카드가 정·관계 로비 의혹과 관련해 묘한 느낌을 준다. | ||
이재순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 가족에 이어 청와대 경호실 간부인 L 씨의 가족도 이번 사건에 연루된 혐의가 드러나자 청와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과 정치권 주변에선 전직 장관과 전·현직 의원 등 유력 정치인 10여 명의 실명이 ‘JU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또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 고위간부와 여권 실세 몇 명도 JU 파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검찰의 수사 추이에 따라 정치권이 한바탕 격랑에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혐의 내용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이미 이들 인사들에 대한 계좌추적에 돌입하는 등 정·관계 로비 의혹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설마’ 했던 JU 리스트가 ‘살생부’라는 초강력 태풍으로 변해 여의도 정가를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JU 리스트의 실체 및 살생부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정치권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JU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지난 3월 이후 검찰과 정치권 주변에선 정·관계 로비의혹과 맞물린 ‘JU 리스트’가 끊임없이 나돌았다.
특히 국가정보원 직원이 지난해 12월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JU그룹 로비의혹’ 관련 보고서가 지난 5월 초에 공개되면서 JU 측의 정·관계 로비설은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감이 실리기 시작했다. 당시 국회 정보위 소속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이 공개한 ‘JU그룹의 비자금 규모 및 은닉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JU 측은 20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검·경 및 정치권에 100억여 원을 로비자금으로 사용했으며, 중국 베이징과 필리핀에 각각 60억 원과 40억 원을 밀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보고서에는 검찰 경찰 법조계 지방자치단체 인사(62명), 청와대와 여야 정치인(40여 명) 등 모두 150여 명이 등장했다.
당시 <일요신문>이 입수한 보고서 문건에도 주수도 회장(구속)이 정치권 인사들이 정치헌금을 요구할 경우 ‘보험’을 든다는 차원에서 과감하게 자금을 지원했고, 다단계업계에 대한 검·경의 내·수사나 공정위 등의 조사에 대비해 무마비 등으로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문건은 또 주 회장이 지난 2004년 5월 서울지검 아무개 검사가 기업 인수 및 매입 자금 출처와 관련해 내사에 착수한 사실을 인지하고 측근이자 로비스트인 한 아무개 씨 등을 통해 여당 당직자를 대상으로 100억 원대의 비자금을 살포하는 등 내사 중단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적고 있다.
국정원은 이러한 문건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한 후 검찰에 이첩했고 검찰은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설마했던 의혹들이 하나둘 사실로 드러나면서 정치권 인사들을 비롯한 ‘보고서 등장인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검찰이 지난 9월 초 JU그룹의 정·관계 로비를 담당한 핵심 로비스트로 지목받고 있는 한의상 씨의 집에서 ‘선물리스트’를 압수하면서 수사는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이 리스트에는 전·현직 경찰 간부와 법조계 인사, 정치인 등 모두 12명의 실명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국정원 보고서와 선물리스트를 수사에 적극 참고하고 있다. JU 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정승호 총경을 비롯해 박영진 경찰청 정보국장, 민오기 총경 등도 모두 리스트에 등장했던 인물이었다.
또 어머니 등 가족 4명이 JU 사업자로 활동하며 10억 원대의 수당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순 전 비서관과 청와대 경호실 간부 L 씨 등은 국정원 문건에 익명으로 거론된 청와대 관계자일 가능성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그동안 신빙성 논란에 휩싸였던 국정원 보고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전·현직 정치인들의 연루 여부가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검찰은 국정원 보고서와 선물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는 전·현직 정치인 10여 명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주변에선 전직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K 씨, 전직 의원인 S·K·S 씨, 현직인 열린우리당 L·P 의원 등의 실명이 ‘JU 리스트’ 명단에 오르내리고 있다. 또 야권 일각에서는 여권 실세인 K 의원과 청와대 고위관계자 A 씨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사들은 연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11월 30일 의원회관에서 기자와 만난 L·P 의원 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L 의원 측은 “우리 의원이 무보수 명예직 협회장으로 있는 스포츠 단체에 JU 측이 2004년 600만 원 상당의 광고협찬을 해 감사의 뜻으로 주 회장과 딱 한 번 식사자리를 함께한 사실은 있다”며 “후원회 계좌나 명절 선물 명단을 꼼꼼히 체크해 봤지만 주 회장이나 JU 측 관계자들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P 의원 측도 “2000년께 한의상 씨와 함께 시민단체의 이사를 맡았지만 당시 이사회에 한 번 참석한 게 전부이고 이후에는 한 씨와 만난 적도 없을 뿐더러 주수도 회장과는 일면식도 없다”며 “선물은 물론 단돈 10원도 받은 적이 없는데 의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억울하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다른 정치인들도 대부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정치인 수사를 직접 밝힌 배경에는 이들 인사들이 연루된 정황을 이미 상당부분 확보했다는 자신감이 묻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 실세와 청와대 고위인사 연루설도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확실한 물증 없이 정치권을 상대로 무리수를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란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JU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이춘성 동부지검 차장은 11월 29일 “압수물과 계좌추적을 통해 확인해봐야 할 점들이 발견됐다”며 일부 정치인들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를 쥐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정상명 검찰총장은 11월 28일 선우영 동부지검장의 보고를 받은 뒤 “사상 최대의 사기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수사팀 확대를 긴급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서울동부지검은 서울중앙지검 소속 부부장 검사와 금융조세조사부 검사를 수사팀에 추가로 투입하는 한편 JU그룹이 주도한 서해유전개발 사업과 관련한 각종 의혹에도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특히 유전개발 사업 과정에서 여권 실세인 K 의원과 청와대 고위인사 A 씨 등 다수의 정치인이 주무부서인 산업자원부에 외압과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어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JU그룹은 지난해 8월 경영위기에 직면하자 전북 군산 앞바다에 300조 원대의 유전을 개발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이후 JU그룹 관련 주식은 급등했다. 하지만 산자부가 지난 4월 “유전은 없다”며 시추공 폐쇄 명령 방침을 밝히자 JU와 관계된 정치권 인사들이 산자부 관계자에게 압력성 전화를 거는 등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유전사업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주 대상은 전·현직 정치인이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11월 29일 기자와 만난 한 정보 관계자는 “유전사업은 정부기관을 상대로 한 사업이고 이와 관련해 주가조작 등 혐의를 받고 있는 만큼 주수도 회장이나 JU 관계자들이 정·관계 유력 인사들의 영향력을 활용하려 했을 개연성이 높다”며 “그동안 시중에 나돌았던 ‘JU 리스트’는 검·경과 법조계, 지방자치단체 인사들이 주류를 이뤘지만 유전사업과 관련해서는 여권 실세 등 정치인 다수가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은 아직까지 소속 의원들의 실명이 거론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일단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여러 정황에 비춰볼 때 한나라당도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우려감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은 11월 27일 국회 예결위에서 “JU그룹이 뉴라이트 계열인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서경석 목사에게 5억 원의 자금을 제공했다”며 정치자금 유입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서 목사가 지원받은 자금을 정치자금으로 비화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으나 한나라당 의원들도 결코 ‘JU 리스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며 “유전사업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본 궤도에 오르면 여야를 망라한 다수의 정치인이 수사선상에 오르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