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
헤르페스는 증상이 가볍거나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모른 채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는 사람들도 많다는 게 더큰 문제다. 미국에서도 헤르페스에 감염된 사람들의 80%가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보고가 있다.
헤르페스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성병들은 건강에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어서 치료를 소홀히 할수 있지만, 한번 감염되면 평생 잠복해 있으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염되거나 때때로 관련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소리없이 퍼지는 헤르페스의 문제점과 대책을 알아본다.
항생제의 발달 때문에, 에이즈와 같은 무서운 성병을 조심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성병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사회적 경계심이 느슨해진 사이 헤르페스를 비롯한 전통적 성병들이 소리없이 번쳐가고 있다.
국립보건원과 별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성병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공단의 2001년 보험 급여 기록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성병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2000년엔 전년에 비해 11.7% 늘어났으며, 2001년에는 증가세가 한층 두드러져 35.6%나 증가했다. 이 자료는 한동안 거의 자취를 감추던 임질도 다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성병의 원인균은 30여 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성병이라고 하면 임질이나 매독만을 떠올렸지만 페니실린 등장 이후 매독이 크게 줄어들면서 성병은 거의 정복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수그러들었던 임질과 함께 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이 가장 흔한 성병 질환으로 떠오름에 따라 사회적 경각심이 요구되고 있다.
헤르페스는 Ⅰ형과 Ⅱ형 두 종류가 있다. Ⅰ형은 입가에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주로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구강에 침입해 발생된다. 피곤할 때마다 입술 주변이 헐고 물집이 생기는데,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헤르페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증상이 심각하지 않고 일단 치료하면 재발이 거의 없으므로 크게 염려할 것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성기에 나타나는 Ⅱ형. 헤르페스를 치료받는 환자의 90%가 Ⅱ형이다. 외음부가 헐어 비뇨기과를 찾는 환자 가운데 절반 정도가 바로 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자다. 동서울연합비뇨기과 전문의 김진홍 원장은 “적어도 하루 한두 명은 헤르페스 환자가 찾아온다”며 이 바이러스가 폭넓게 퍼져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헤르페스 감염자의 절반 정도는 한동안 아무 증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라도 헤르페스에 대한 지식이 일반화돼 있지 않아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국내 상황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아직 없다. 미국의 경우 전체 성인중 약 20%가 Ⅱ형 헤르페스를 가지고 있으며 50∼80%는 구강형인 Ⅰ형 헤르페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60% 이상은 자신의 감염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헤르페스는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피부가 상대방의 점막에 접촉하면서 전염된다. 점막이 아닌 피부끼리는 닿는 것만으로 전염되기 어렵다. 그래서 헤르페스는 주로 내부 표면이 점막으로 이뤄진 구강이나 성기를 통해 전염되고 이 부위에 기생한다.
헤르페스는 구강에서 구강으로, 성기에서 성기로 옮아갈 뿐 아니라 구강과 성기를 자유롭게 옮겨다닌다.
헤르페스는 특정 증상없이 잠복해있는 동안에도 전염될 수 있다. 헤르페스의 전염률이 높은 것이 그 때문이다.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상태라 하더라도 청결성을 보장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면 반드시 경계를 해야 한다.
성기에 헤르페스가 감염됐을 경우 평균 잠복기간은 4∼7일 정도. 처음 헤르페스에 감염되면 전신 무력감, 열, 두통 같은 증상이 나타나다가 감염된 피부와 점막 부위에 작은 수포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통증이 심해진다.
성기나 항문 주위에 뻐근한 통증이 생길 수도 있고 양 사타구니의 임파선이 붓고 아프기도 하다. 소변 보기가 불편해지고 가려우며 여성의 경우 냉 대하가 생긴다. 시간이 지나면 수포들은 터지고 회색빛 진물이 생긴다. 보통 다른 상처들처럼 진물이 굳고 딱지가 생기면서 아물어간다. 완전히 아물기까지 약 2∼3주 정도 걸린다.
그러나 아물었다고 해서 헤르페스가 완치된 것은 아니다. 바이러스의 일종인 헤르페스는 완치가 안된다.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간혹 전신감염, 폐렴, 간염, 뇌수막염 같은 합병증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헤르페스라는 성병 자체가 그리 심각한 질환은 아니다. 하지만 완치가 안 되고 평생 재발한다는 점에서 귀찮기 짝이 없는 질병임에 틀림없다.
김진홍 원장은 “헤르페스 균이 성기를 통해 우리 몸속에 들어오면 척추 근처 감각신경 세포가 모여 있는 신경절에 둥우리를 튼다.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항바이러스제로 증상을 가라앉힐 수는 있지만 신경절에 자리잡은 바이러스를 완전시 소멸시킬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신경절이라는 안전한 곳에 평생 살 수 있는 ‘집’을 장만하고, 숙주(사람)의 면역력이 떨어질 때마다 신경을 따라 옮겨다니면서 증상을 일으킨다는 것. 주로 성기 음낭 고환 항문 질에 나타나지만 골반신경은 허벅지, 엉덩이까지 닿아 있기 때문에 허벅지, 엉덩이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치료후 재발하는 빈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나 보통 1년에 5∼8회 정도 나타난다. 성기 헤르페스 환자의 80%는 첫 감염 후 1년 이내에 재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동안 재발이 없다가 갑자기 재발이 잦아지는 경우도 있다.
재발의 경우 처음보다 증상이 가볍고 아무는 기간도 짧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재발하다 보니 헤르페스 자체보다 심리적 스트레스가 더 커진다. 배우자에게 말도 못 하고 끙끙 앓으면서 잠자리를 피하다 괜한 불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신혼부부의 경우는 특히 더하다. 결혼 전 헤르페스에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부인에게 헤르페스를 옮기는 사례가 많고 임신할 경우 태아에게 감염시키는 경우도 있다. 통계적으로 임산부의 20∼25% 정도는 헤르페스에 감염돼 있다. 다만 바이러스에 대한 산모의 항체가 태아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태아가 헤르페스에 감염된 채 태어날 확률은 약 0.1%에 불과하다.
하지만 임신 전이 아니라 임신 도중 산모가 헤르페스에 감염된다면 여린 태아가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은 아주 높다. 산모가 태아에게 전해줄 항체를 만들 시간이 없기 때문인데, 심하면 태아가 사망하기도 한다.
증상이 나타나고 있을 때는 성관계나 깊은 키스를 피해야 하며, 어느 한쪽이라도 보균 가능성이 의심될 때는 오럴섹스를 자제해야 한다.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전염률은 낮출 수 있지만 확실한 안전을 위해서는 성 접촉을 피하는게 좋다.
성기 헤르페스의 감염여부는 항체검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진단 키트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진단이 간편해졌다. 혈액을 통한 이 검사법은 5분 이내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으며 정확도도 높다.
일단 감염이 확인되면 헤르페스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헤르페스는 다른 질병이 생기거나 영양이 결핍된 경우, 과로, 스트레스가 있는 경우 등 면역력이 떨어질 때마다 재발한다. 평소 생활습관 및 식습관을 조절하면서 면역력을 키운다면 헤르페스 재발을 억제할 수 있다.
술과 당분은 헤르페스 환자에게 좋지 않다. 고기 유제품 같은 산성 음식도 자제해야 한다. 산성 음식을 먹을 때에는 알칼리성 음식(과일, 채소, 콩류)을 2∼3배 정도 같이 섭취해 준다. 땅콩, 초콜릿, 밀 등에 들어 있는 ‘알기닌’이라는 필수아미노산은 헤르페스 바이러스를 증식시키는 효과가 있으므로 삼가는 것이 좋다.
알기닌을 억제하는 라이신 성분을 함유한 마늘 등 채소, 닭, 생선, 콩, 계란을 많이 먹으면 재발을 방지하는 데 효과가 있다. 바이러스와 싸우는 백혈구의 기능을 증가시킬 수 있는 비타민C도 충분히 섭취한다.
비타민 무기질 등은 면역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다. 마늘, 올리브 잎, 감초 인삼 등도 면역기능을 강화시킨다. 감초와 인삼은 스트레스로 인해 일어나는 인체 내부 증상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 회복력이 강해지는 밤 11시부터 수면을 취하면 면역기능을 돕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윤은영 건강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