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은 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간 시행된 국내 의료기관에서의 각종 수술 실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항문(치질) 수술이 유난히 큰 폭으로 증가한 사실을 밝혀냈다.
항문 수술은 99년 6만여건에서 2000년 11만8천여건, 2001년18만4천여건으로 3년 사이 무려 3배나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안과의 백내장 수술은 99년 6만2천건에서 2001년 14만건으로 2.24배가 늘어났고 맹장 수술은 같은 기간 동안 단지 6%만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 최근 들어 수술치료가 부쩍 늘고 있는 치질에 대해 과잉 치료 논란이 일고 있지만 ‘여성들의 적극적인 치료가 늘 어난 탓’이라는 주장도 설득력 있어 보인다. 사진은 대장내시경을 사용해 항문직장 질환을 검사하는 장면. 을지병원 제공 | ||
최근의 항문수술 급증현상에 대하여 건강보험공단 측은 한국인의 식생활 변화가 치질 환자의 증가와 관계있을 것이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과잉의료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올해부터는 치질과 백내장에 대하여 수술의 적절성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병원 관계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장항문외과를 개업하는 전문의들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참고 지내온 ‘숨어있던 환자’들이 마침내 적극 치료를 받게된 것일 뿐 결코 과잉의료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라파엘클리닉 이선미 원장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항문과가 늘어난 것도 치질 수술 증가의 또다른 한 요인으로 꼽았다. “여성 전문의가 많이 배출되면서 여성 치질환자가 병원을 찾기가 쉬워졌다. 병원 및 홈페이지에 여성환자들의 방문 횟수가 몇년 사이에 부쩍 늘어난 것도 충분한 증거”라며 “새로운 환자가 갑자기 늘었다거나 안해도 될 수술을 했다기보다 숨어 있던 환자들, 특히 여성들이 미루던 수술을 받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선미 원장은 “성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높아져 외치질이 성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해 수술받는 사례도 있고, 치질처럼 보이지만 의학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피부 꼬리를 제거하려는 환자도 간혹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외과 분야 중에서도 대장항문질환만 전문으로 다루는 병원이 늘어나 환자 유치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외과 전문의는 “경기에 따라 수술 실적이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라며 상황에 따라 할 수도 안할 수도 있는 환자들이 있음을 인정했다. 보통 치질수술 1건당 진료비는 환자 부담 10만원에 공단 지급 50만원선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질병이 마찬가지지만 치질질환 역시 조기에 치료해야 수술을 피할 수 있다. 증상에 따라 1∼4기로 나누는데, 3~4기로 발전되면 약물치료만으로는 재발없는 완치가 어렵기 때문이다.
치질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온 오랜 질환이면서 현대인에게도 아주 흔한 질환이다. 전문의들은 우리나라 성인 10명중 4명 정도가 심하든 약하든 치질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치질은 본래 질환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사람의 항문 안쪽에는 촘촘한 정맥혈관과 탄력섬유질, 근육 등으로 이루어진 도톰한 말단조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치질이란 기관이다.
치질은 배변시 항문 안쪽이 다치지 않도록 쿠션 역할을 해주며, 설사일 경우엔 화장실에 갈 때까지 새어나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치질을 이루고 있는 혈관이나 근육이 부풀어올라 항문 밖으로 삐져나오거나 염증이 생기면 치질 질환이 된다. 대개 치질이 항문 밖으로 밀려나와 환부가 커지지만(외치질) 항문 내부에서 진행되는 경우(내치질)도 있다.
정확한 의학적 병명은 치핵, 치루, 치열, 탈항 등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를 통칭하여 치질 질환, 또는 치질이라 부르고 있다. 치질 질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치핵이다.
치핵은 항문에 피가 나거나 치핵의 덩어리가 빠져나오는 증상을 보인다. 발생 형태나 위치에 따라 내치핵, 외치핵으로 나누는데, 보통은 두 가지가 복합된 혼합치핵이 가장 흔하여 70% 정도를 차지한다. 가벼운 초기증일 때는 집중적인 좌욕과 약물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통증 출혈이 심해지거나 치질 덩어리가 많이 빠져 나오게 되면 수술 등 보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항문직장 주위의 농양이 터져 고름이 흐르는 것이 치루다. 치열은 배변시 항문이 파열되는 증상으로 일단 파열되면 치질 부위가 세균에 감염돼 만성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극심한 통증을 가져다 준다.
치질이 손상되거나 조직이 붓고 염증이 생기게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가장 흔한 원인은 역시 배변과 관련하여 가해지는 물리적 압박이다.
하루학문외과 서인근 원장은 “치질 발생은 배변습관과 관련이 크다. 변이 딱딱해져 배변시 힘을 과하게 주게 되거나 잔변감을 없애기 위해 끝까지 화장실에서 오래 버티고 앉아 힘을 주다 보면 곧잘 치질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여성의 경우는 임신과 출산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임신 출산 과정에서 태아가 산모의 골반과 항문 주위 혈관을 누르기 때문이다.
미혼 여성의 경우는 무리한 다이어트로 변비가 악화돼 치질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딱딱한 의자에 오랜 시간 앉아 있는 직업도 치질을 부르기 쉽다. 항문에 압력이 많이 가해지다 보니 항문 정맥에 울혈이 생기기 때문이다.
치질은 일단 생기면 최대한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다. 상태가 심해져 말기로 진행할수록 환자들의 고통도 커진다. 치료가 이를수록 간단한 치료법을 쓸 수 있다.
치질이 심해지면 암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치질과 암은 별개다. 이선미 원장은 “치질과 직장암을 동시에 가진 환자가 치질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직장암 진단을 받으면 치질이 암으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치질과 암이 별개라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다. 직장암은 심한 치질 증상과 유사해 감별이 힘들다. 내치질과 직장암의 증상은 특히 유사해 암 여부가 의심스러운 경우 자가진단만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반드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한다. 간단한 검사를 통해 5분이면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다.
맵고 짜고 자극성 강한 음식이나 알코올도 항문정맥의 울혈을 촉진시키기 때문에 치질을 유발할 수 있으며 꽉 끼는 청바지 코르셋 거들 역시 항문 혈액 순환을 위해서는 좋지 않다.
고춧가루 겨자 후춧가루 카레가루 등은 거의 소화가 안돼 그대로 배출되는 수가 많으므로 배변시 항문을 자극하고 충혈을 일으켜 염증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일단 치질질환이 생긴 환자에게는 술도 금기다. 항문조직은 미세혈관이 그물처럼 얽혀 있어 술을 마시면 쉽게 충혈이 되면서 혈액순환에 장애가 온다. 결국 항문혈관이 부풀어오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방바닥 등에 장시간 앉아서 술을 마신다면 치질은 더욱 압박을 받게 되며 기존에 치질질환이 있는 경우는 단 한번의 술자리도 직접적인 악화의 계기가 될수 있다. 담배, 커피, 초코렛 등도 좋지 않다.
치질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변비를 예방하는 식단과 규칙적인 배변습관이 중요하다. 평상시 샤워나 좌욕 등으로 항문을 청결히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항문과 치질을 위해서는 비데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윤은영 건강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