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염병은 주로 세균에 감염된 손으로 호흡기 주변을 만지 거나 음식을 요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손만 잘 씻어도 대부분 예방된다고 한다. 아래쪽은 한 어린이의 예방접종 장면. | ||
식중독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고 세균에 감염된 음식을 섭취한 사람에게만 질병을 일으키고 끝나는 것이므로 예방법은 단순한 편이다. 그러나 이질,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콜레라 같은 전염성 세균은 아주 적은 숫자만 있어도 공기나 곤충, 물 등을 통해 사람에게 쉽게 감염되며 감염된 사람으로 인해 또 다른 사람에게 쉽게 감염되므로 식중독보다 한층 위험성이 크다. 이 때문에 전염성 질병에 걸린 사람은 곧바로 격리치료를 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
올 여름은 특히 일찍 찾아온 장마와 고온현상 등으로 세균성 이질과 일본 뇌염 등 전염병에 대한 경계가 요구된다.
[세균성 이질]
세균성 이질, 장티푸스, 장출혈성 대장균, 콜레라 등은 대표적인 수인성 전염병이다. 그중에서도 발병률이 가장 높은 것이 세균성 이질이다. 국립보건원 공식집계 기록에 의하면 2000년 2천4백54명으로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했던 세균성 이질은 2001년 9백27명, 2002년 7백29명으로 잠시 누그러드는 추세를 보였으나 올해는 5월까지만 7백42명을 넘어, 장마기간중 환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세균성 이질은 현재 제1군 전염병(전파속도가 빠르고 국민건강에 미치는 위해가 가장 큰 질병)으로 분류돼 있다. 10∼100개 정도의 극히 적은 세균만 있어도 전염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이질 환자가 생기면 급속히 전파된다. 장티푸스 등은 매개물(물, 오염된 식품 등)안에서 균이 증식한 후에야 사람에게 감염되는 데 비해 이질은 손에 붙어 있는 세균으로부터도 곧바로 전파된다.
전파 경로는 다양하다. 배변 후 손톱 밑까지 깨끗하게 손을 씻지 않는 사람들이 음식을 오염시켜 간접적으로 전파되거나 다른 사람들과의 신체 접촉을 통해서도 전파된다. 식수, 바퀴벌레, 파리에 의한 전파도 있다.
선진국에서는 보통 양변기에 묻어 있는 이질균이 피부에 옮겨지며 전파되거나 화장실 문의 손잡이를 통해 전파되는 사례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물이나 식품을 통해 전파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때문에 한 가족이나 집단에서 단체로 발병하는 예가 많다. 위생상태가 불량하고 사람들이 밀집해 사는 집단 보육시설이나 복지시설, 교도소, 캠프, 선박 등에서 집단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이질의 주요 증상은 설사다. 일반 설사병과 달리 이질의 경우에는 균이 만들어내는 독소로 인해 경련, 구토를 동반하며 혼수, 환각, 뇌막자극 증세 등 신경계 이상을 동반하는 경우도 40%나 된다. 위장이 아닌 호흡기 계통 장기에 합병증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세균이 붙은 손으로 눈을 비비면 각막결막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낫고 난 후에도 각막결막염, 포도막염, 홍체염 같은 안과 질환이나 관절염 같은 합병증이 올 수 있다.
이질을 일으키는 세균은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균의 부류가 달라진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A형(S. dysenteriae)에서 B형(S. flexneri)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D형(S. Sonnei)으로 바뀌었으며 일본에서도 주로 D형이 나타난다. 증상은 A형이 가장 심하고 D형으로 갈수록 약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B형이 많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나타나는 이질균의 차이 때문에 유행하는 이질균의 종류를 알면 선진국인지 후진국인지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예방 백신은 아직 실용화되지 않아 가장 확실한 예방책은 손 씻기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는 일이다. 국립보건원은 요즘 ‘손씻기 범국민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립보건원 신혜성 계장은 “전염병을 예방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손을 열심히 씻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는 물론 식사, 간식 등 음식물을 먹기 전 반드시 물과 비누로 손을 씻어야 한다. 손톱 밑에 붙은 균은 비누로 20초 이상 충분히 문질러야 죽는다. 주부, 식당조리사 등 음식을 다루는 사람은 음식물을 만지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하며 음식물을 서빙하는 사람들도 주의가 필요하다. 음식은 끓이고 익힌 것, 과일은 껍질을 벗긴 것이 안전하다. 유행지역에서는 반드시 물을 끓여 먹는다.
감염된 사람은 함부로 설사를 멈추는 지사제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지사제로 인해 장운동이 더뎌지면 세균이 장에 머물며 번식하는 시간이 길어져, 병을 더 악화시키고 세균이 내뿜는 체내 독소가 증가해 중태에 빠질 수도 있다.
▲ 전염 예방과 대책 | ||
국내에서는 90년대 초반까지 감염자가 거의 나타나지 않다가 97년부터 보고되기 시작했는데, 지난해에는 4백8명이나 파라티푸스균에 감염됐다. 매년 3백∼4백명씩 나타나던 장티푸스 환자가 지난해 2백17명으로 줄어든 것과 대조된다. 장티푸스에 대한 예방에는 주의를 기울인 반면 감염자가 없는 파라티푸스에 대한 경계가 소홀했던 탓이다.
장티푸스와 파라티푸스는 살모넬라속(屬)에 속하는 세균에 의해 발병되는 전신성 질환으로, 무력감 발열 복통 발진 설사 백혈구감소 등 증상이 비슷해 파라티푸스를 ‘유사 장티푸스’라 부르기도 한다.
장티푸스는 S.typhi, 파라티푸스는 S.paratyphi균에 의해 각각 발생한다.
파라티푸스는 균의 종류와 합병증 유무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가벼운 복통과 열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심한 복통, 설사, 탈수로 인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피고름이 섞인 설사를 심하게 하기도 한다. 위장 질환은 일으키지 않고 신체 다른 부위로 전염되어 패혈증 뇌막염 골수염 농양 등 생명에 위험한 파라티푸스균성 전염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파라티푸스는 보균자나 환자의 대소변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전파된다. 보균자의 손에 의해 오염된 조개류, 우유, 유제품 등 음식물로 전파되는 경우도 많고, 달걀 껍질이나 생달걀에 묻어 전파되기도 한다. 시장에서 파는 익히지 않은 닭 돼지고기 쇠고기 달걀에도 파라티푸스균이 오염되어 있을 수 있다. 오염된 음식물을 완전히 익히지 않은 상태나 날것으로 먹을 때 감염된다.
파라티푸스균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 위장 속에 다소의 파라티푸스균을 지니고 있지만 아무 증상 없이 지내는 경우도 많다. 감염된 파라티푸스균의 수나 독성의 정도, 감염된 사람의 저항력 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역시 예방 백신이 나와 있지 않다. 노민관 가정의학과의원 원장은 “파라티푸스의 경우 혈청 유형이 많아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기 어려운 것”이라며 “그러나 한번 앓고 나면 몇 년간은 재감염이 잘 안되며 같은 균주에 대해서는 면역항체가 생긴다”고 설명한다.
역시 최선은 예방이다. 보균자의 대변을 통해서 나온 파라티푸스균은 몇 개월 또는 몇 년 뒤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될 수 있으므로 평소 용변 후에는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음식은 익혀 먹고 물은 끓여 마신다. 특히 환자를 간호하는 사람은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환자가 입원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킨다. 환자와 접촉한 경우에는 손을 잘 씻고 위생관리를 잘 하는 것 이외에 달리 특별히 할 것은 없다.
[비브리오패혈증]
지난 5월 이미 비브리오패혈증 주의보가 내려졌다. 인천 강화와 전남 영광, 함평 등지 해안에서 채취한 해수와 개펄에서 비브리오 패혈증 원인균인 ‘비브리오 불니피쿠스균’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비브리오패혈증은 주로 6∼9월에 발생하는데 바닷물의 온도가 높은 여름철에 균에 오염된 어패류를 날로 먹으면 감염된다. 해안에서 낚시를 하거나 어패류를 손질하다 피부에 상처를 입는 경우 상처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
비브리오패혈증은 다른 질환에 비해 발생 건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발병하면 48∼72시간 내에 사망하며 치사율이 40∼50%에 이르기 때문에 위험하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1년 41명의 비브리오 패혈증 환자가 발생, 24명이 숨졌으며, 지난해에는 59명의 환자 중 33명이 사망했다. 특히 40대 이상 연령층과 알코올 중독자, 당뇨병 등 저항력이 약한 만성 간질환자들이 취약하다.
비브리오 패혈증 예방은 간단하다. 피브리오균은 섭씨 56도 이상의 열을 가하면 쉽게 파괴되기 때문에 어패류는 반드시 조리해 먹도록 한다. 단 어패류가 상한 것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아무리 싱싱하더라도 날로 먹는 것은 위험하다. 피부에 상처가 있을 경우에는 되도록 바닷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일본뇌염]
부산에서 첫 일본뇌염 모기가 발견된 지난 5월 국립보건원은 전국에 일본뇌염 주의보를 발령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일본뇌염이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국내에서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본뇌염은 모기의 활동이 많은 여름철과 초가을에 많이 발생한다. 대개 7월 중순부터 8∼9월 사이에 가장 많이 발생하고 10월에 가야 줄어든다. 모기에 물린 후 7∼20일의 잠복기를 거쳐 고열 두통 현기증 구토와 무욕상태 또는 흥분상태 등이 나타나며, 병이 진행되면 의식장애 경련 혼수상태를 거쳐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치사율은 5∼30% 정도. 그러나 완치 후에도 20∼30% 정도에서 기억상실, 판단력 저하, 사지운동 장애 등 후유증이 남는다는 점이 무섭다.
우리나라에서는 98년부터 한두 명씩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6명이 감염됐다. 환자가 적은 것은 일본뇌염에 대한 예방접종이 보편화돼 있기 때문이다. 노민관 원장은 “어떤 백신도 100% 효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90% 정도는 예방되기 때문에 접종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일본뇌염은 흔히 15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잘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노인 등 면역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모두 조심해야 한다. 노민관 원장은 “피로 과식 불면 설사와 고온에 노출되는 등 저항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모기에 물릴 경우 발병하기 쉬우므로, 연령에 관계없이 건강상태에 따라 예방 접종을 해두는 것이 좋으며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모기는 해진 후 1시간 동안의 활동이 가장 왕성하므로 이 때 특히 주의한다. 모기가 번식하지 않도록 환경을 깨끗이 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변에 가축사육장이나 웅덩이 등이 있는 경우 살충소독을 강화한다.
윤은영 건강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