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비교적 나이가 젊은 중년층에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치매는 술·담배 등을 많이 하는 데에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진은 경미한 치매증상을 보이는 환자와 상담진료를 하고 있는 김정은 을지대 교수. | ||
그런데 60대 이상의 노인에게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치매가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기인 40~50대 중년층에서도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 결과 40~50대 치매환자는 지난 99년에 비해 3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흡연, 스트레스, 음주 같은 요인이 남성들을 뇌졸중에 많이 노출시키고, 그 후유증으로 치매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60대 이상에서는 여성의 절반에 불과했던 남성 치매 환자의 비율이 40대에서는 오히려 높아진다.
스스로 과거에 비해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 때는 병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문의들은 “치매는 불치병이 아니다”며 “조기에 발견하면 다른 성인병과 마찬가지로 약물치료 등으로 진행속도를 늦추고 합병증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가벼운 뇌졸중으로 입원한 일이 있는 H씨(51세). 평소와 다름없이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일어난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출근 준비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으면서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내가 “어디 아프냐”고 묻자 “왜 그래?”라는 말만 반복할 뿐 적절한 대화를 할 수 없었고 발음도 많이 어눌해졌다. 놀란 가족들이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하니 걸음거리도 기우뚱거렸다. 병원에서 뇌 MRI를 촬영한 결과 왼쪽 뇌에 급성 뇌경색이 생겨 치매 증상과 오른쪽 마비가 온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40~50대 치매환자가 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서 나타나는 치매는 주로 혈관성 치매다. 을지대학병원 신경과 김정은 교수는 “흡연이나 과음을 자주 하고,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등의 심혈관계 성인병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들 요인은 모두 혈관성 치매의 발생을 부추긴다. 혈액 속에 콜레스테롤이 지나치게 많은 고지혈증, 비만, 짜게 먹는 식습관, 운동부족, 스트레스 등도 혈관성 치매의 발생 원인이다. 가족 중에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있는 경우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다.
“40~50대의 건강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정신과 질환인 우울증, 알코올 중독이 있는 경우, 이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극단적으로는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고, 치매를 촉진할 수도 있다.” 연세대의대 정신과 오병훈 교수의 경고다.
혈관성 치매는 갑작스런 기억력 장애나 판단장애가 신호다. 한쪽 팔 다리에 마비가 오거나 걸을 때 자세가 구부정하고 다리를 질질 끌기도 한다. 갑자기 말을 못하고 못 알아들으며 발음도 나빠진다. 의욕이 줄어들고 게을러져 세수나 목욕도 잘 하지 않는다.
이와 함께 표정이나 감각이 무디어지고 의욕과 호기심이 없어지면 치매가 의심된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자주 잊어버리거나 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하기도 한다.
사실 어느 정도의 건망증은 정상인에게도 흔하다. 특히 40~50대에는 기억력 등 사고력이 20대에 비해서 크게 감소하는 반면 업무량은 더 가중된다. 여기에 우울증 스트레스 폐경기증후군 화병 불면증 과음 흡연 등까지 더해 건망증 요인은 늘어난다.
단순 건망증은 뇌에 이상 없이 단순히 기억력만 떨어지는 것이지만, 치매는 뇌의 특정부위 세포가 손상돼서 생긴다. 만약 없던 건망증이 갑자기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생길 정도로 심하게 생길 때는 치매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병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매의 종류도 여러 가지.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세계적으로 가장 많아 전체 환자의 60% 정도를 차지한다. 뇌세포가 죽어 서서히 기억력, 언어기능 장애, 방향감각, 판단력 등이 상실된다.
다음으로 많은 것이 바로 혈관성 치매. 전체 치매 환자의 약 20% 정도를 차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혈관성 치매가 더 많거나 알츠하이머성과 같은 정도라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혈관성 치매가 많다. 이 외에 운동중 사고나 교통사고 등 두부손상으로 생기는 치매, 미만성 루이소체 치매, 전측두엽성 치매, 뇌수두증이나 우울증으로 오는 치매 등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치매에 잘 걸릴까. 대부분의 치매는 노인병이므로, 일단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치매에 걸리기 쉬운 제일 위험군이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오강섭 교수는 “60세 이후에 주로 발생하여 5세 증가할 때마다 치매의 발생빈도가 2배 증가한다. 따라서 60세 이상이 되면 암검진을 하듯이 매년 기억력 검사나 치매진단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치매 노인의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65세 이상의 10%, 85세 이상의 47%인 4백만 명이 치매로 고생하고, 매년 10만 명 이상의 노인이 치매로 사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65세 이상 노인의 약 10% 정도가 치매노인이라는 통계가 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두뇌활동의 경험이 적거나 두뇌를 잘 사용하지 않고 사는 경우, 직계 가족 중 치매 환자가 있는 경우,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거나 앓고 있는 경우, 심한 머리 손상이나 약하지만 반복적으로 머리 손상을 받는 경우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다운증후군 환자는 40세 이상까지 생존하는 경우 거의 100%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된다. 또 여성이 남성보다 1.3~1.5배 많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다 젊은 나이에 발생률이 높은 혈관성 치매는 여성보다 남성 환자가 많다.
혈관성 치매는 뇌졸중과 마찬가지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위험인자가 있는 경우에 잘 생긴다.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남용도 위험요인이다.
흔히 치매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당연히 조금씩 나빠질 수밖에 없는 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원인에 따라 적절한 치료법이 많이 개발되어 있으므로 조기에 치료를 하면 종류에 따라서는 완전하게 치료가 되기도 하고, 최소한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질환처럼 잘 관리하여 진행 속도를 늦출 수가 있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치매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상식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정상적인 노화과정에서는 병적인 기억력 장애가 발생하지 않는다.
가장 흔한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뇌 신경세포의 손상으로 인해 부족해진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뇌에서 부족해지는 것을 막는 아세틸콜린 에스테라제에 대한 억제제를 사용하면 병의 진행이 상당히 느려지고, 일부 손상된 인지기능이 좋아지기도 한다.
혈관성 치매는 뇌졸중과 마찬가지로 항혈소판 응집제나 항응고제를 사용해 진행을 늦추거나 호전시킬 수 있다. 원인 질환인 고혈압이나 당뇨병, 심장병 등 질환도 함께 치료해야 한다.
인지기능 장애의 변동이 심한 미만성 루이체성 치매는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에 사용되는 아세틸콜린 에스테라제 억제제와 항파킨슨 약으로 많이 호전된다. 보행장애, 요실금이 함께 나타나는 뇌수두증에 의한 치매는 뇌에 고인 뇌척수액을 일부 제거하면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다. 이 외에도 비타민 결핍으로 생기는 치매는 부족한 비타민을 공급해주면 되고, 간성 뇌증처럼 내과질환이 원인이 되어 2차적으로 오는 치매는 원인질환을 치료하면 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오강섭 교수, 연세대의대 정신과 오병훈 교수, 을지대학병원 신경과 김정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