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여전히 암과 같은 전통적 질병 앞에서 무력하다. 벌써 40년 전 달나라에 발자국을 찍었다는 인류 사회에서 아직도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실과 비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의술의 발달을 자랑하는 과학자나 의사들도 당장 암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환자들 앞에서는 과학기술의 혜택을 논하기가 무색할 것이다. 최근 통계들은 해마다 세계 전역에서 죽어가는 사람의 4분의 1이 암을 사인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암은 단일 질환으로서 가장 많은 환자들의 사인이다. 병원 현장에서 암을 치료하는 의료인들이 암 치료의 효율과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지식과 정보를 함께 나누고 연구하기 위해 연구단체를 결성했다.
암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과 연구는 이미 수십년의 성과를 쌓았고 미국에서는 70년대부터 암 퇴치만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국가기관이 설립되어 해마다 막대한 재정을 지원해왔다.
이런 과정에서 항암제가 개발되었고 90년대 이후에는 인체에 보다 안전하고 효과있는 신약들이 속속 등장하여 그때마다 암 환자들의 기대를 모았다. 외과적인 수술법과 항암화학요법, 그리고 방사선 치료 등을 3대 축으로 하는 항암치료 연구는 점차 세련되어가고 있다. 항암제, 혹은 암 수술을 받고도 건재하게 살아남았다는 사례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암 환자들이 전적으로 병원치료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들은 나름으로 항암효과가 있거나 면역기능을 높여준다는 민간의 건강식품이나 약재들을 복용하면서 병원 치료만으로 마음이 놓이지 않는 부분을 보완하려 애쓰고 있다.
“병원에서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마친 후 환자에게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암치료 전문의 백남선 박사(원자력병원 외과)는 말한다.
암치료를 마친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으로 암의 위협이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암은 치료 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재발 가능성이 높고, 그것도 치료가 어려운 형태로 다른 여러 부위에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을 환자들은 걱정한다.
하지만 암 치료 후 관리에 대해 체계적인 지도를 해주는 의료기관은 흔치 않고, 고작해야 재발 여부를 추적하기 위해 정기 검진을 받도록 하는 것이 전부다. 때문에 환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암에 좋다고 소문난 건강식품이나 약재들을 찾아 전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도 엄청나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찾는 식품들의 대다수는 항암효과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것이고, 또 부적절한 관리로 인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백남선 박사는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수술이나 항암치료뿐 아니라 환자들의 치료 후 관리에 대해서도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근거없는 치료로 인한 부작용과 경제적 손실을 막아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9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창립총회를 갖는 대한임상암예방학회(회장 백남선 박사)는 이 같은 취지에 뜻을 같이하는 전문 의료인들의 연구단체다. 의사 의학자 한의사 약사 간호사 영양사 등 암 환자의 치료나 사후 관리에 관여할 수 있는 전문인들에게 문호가 개방되어 있으며, 창립 전후로 회원수는 1천여 명에 이를 전망.
학회는 이날 통합의학 면역요법 세미나도 갖는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암 예방식품, 비타민요법, 통증관리, 정신신경요법, 운동요법 등을 소개할 예정. 오후에는 선진국의 암 치료 동향, 아로마요법을 위시하여 대체의학적 치료방법에 대한 전문가 그룹(회원)끼리의 심포지엄도 개최할 예정이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암 치료 전문의들이 중심이 돼 대체요법 면역요법을 포함한 암 치료법을 연구하고 일반인에게 정보를 제공키로 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희소식이다.
이 학회에는 국내 의과대학 최초로 대체의학대학원을 설치한 포천중문의대의 김병수 총장과 전세일 대체의학대학원장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세일 원장은 심포지엄에 손수 좌장을 맡는다.
“암으로 생명을 잃는 사람은 매년 세계적으로 5백만 명을 헤아리며 그 중 우리나라 사람도 6만여 명이 포함돼 있다.” 학술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장석원 원장(서울내과)은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적절한 통증치료도 받지 못하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죽음의 날만을 기다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이러한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통증완화치료와 세계적 추세인 면역요법 등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가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소개한다.
이날 일반인(환자 및 가족) 대상 오전 강의에서는 ‘암환자의 통증관리’(이상철 교수·서울대 마취통증의학)도 하나의 주제로 다뤄질 예정.
보고에 의하면 극심한 통증과 싸워야 하는 말기 암 환자의 경우 통증을 줄이면 생명이 연장된다고 한다. 통증 관리를 통해 말기 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어야 한다는 것은 환자의 인권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과제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이밖에도 암환자의 비타민요법, 암환자를 위한 면역증강식품의 유용성, 정신신경요법, 암환자의 운동요법 등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발표된다.
장석원 원장은 암 환자 전문 클리닉의 중요성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대개의 암 치료가 대형병원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앞으로는 각 분야별로 체계적 치료가 가능한 소규모의 전문 의료기관을 활용하는 방향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장 원장의 견해다. 환자가 암과 스스로 싸워 이길 수 있도록 가까이서 보살피고 도움을 주는 것도 첨단 기술 못지 않게 중요하며 소규모 전문기관은 이 같은 밀착관리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는 것.
한편 의료인 회원들의 심포지엄에서는 면역요법의 중요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전세일 박사를 좌장으로 진행되는 이 심포지엄에는 임상 전문의들이 면역요법과 암 예방 및 치료효과를 증진시키는 식물성 화학물질 등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다.
암의학 전문가인 요코야마 교수(일본 구르메의대)와 박상회 교수(도쿄대) 등은 세계의 암 치료 경향과 일본의 암 치료 보완요법 등을 주제로 발표한다. 박상회 교수는 “인체의 면역기능은 뇌 시상하부와 신경의 작용으로 강화된다”며 “연구 결과 인체 면역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경세포 면역요법이 유효한 것으로 보아진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날 발제를 통해 최근 일본에서 면역강화 효능이 입증된 버섯 종균배양물질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 물질은 뇌 시상하부와 신경전달 물질에 직접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암 환자들이 식품이나 대체요법에 의존하는 것을 막연하게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환자들에게는 비쳐졌다. 그런 만큼 암 전문의들을 중심으로 식이요법과 대체 면역요법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이루어지게 됐다는 것은 의미 깊은 사건이다. 어떤 결실이 맺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