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난해에 쓰다 남은 독감백신을 싼 값에 불법 접종해 주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독감백신은 매년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따라 새로 만들어지므로 이런 경우에는 아무런 예방효과가 없다. 국산 백신과 수입 백신의 효능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독감 예방주사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독감은 폐렴 같은 합병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경우 독감과 폐렴이 노년층 사망의 6번째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독감 예방접종을 하면 입원해서 치료받는 비율이 70%, 독감으로 인한 폐렴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85% 정도나 줄어드는 것으로 연구되었다. 따라서 합병증에 걸리기 쉬운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거나 저항력이 약한 노약자는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 안전하다.
65세 이상의 노인은 독감 예방접종을 꼭 해야 하고 ▲심장병·만성 폐질환·신장병·당뇨병·심한 빈혈 환자 ▲가정 간호를 받고 있는 곳에 사는 거주자 ▲6개월~18세 미만의 아스피린 장기 복용자 ▲의사, 간호사, 의료 기사 등 예방접종 대상자들과 자주 접촉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예방접종 대상자들과 같이 생활하는 가족 등이다. 담배를 많이 피우거나 과로, 불규칙한 생활로 면역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하는 것이 좋다.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박용우 교수는 “수험생의 경우는 고위험 집단에 속하지는 않지만 독감에 걸렸을 경우 학업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흔히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면 몸이 더 아프다거나 예방접종 후 독감에 걸렸다는 등 오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 국립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심각한 부작용은 없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예방접종 후 약한 감기 증상을 보이거나 드물게 주사 부위의 발열, 통증이 있기도 한다. 단, 계란알레르기가 심한 사람은 접종 후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바이러스 백신을 만드는 과정에서 계란을 배양 매개물로 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란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독감 예방접종을 피해야 한다.
임신한 여성도 독감 예방접종이 태아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따라서 예방접종 대상자라면 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 임신 초기에는 자연 유산의 위험이 높으므로 임신 4~5개월 이후에 접종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은 있다. 젖을 먹이는 경우에도 접종이 아기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독감은 매년 1~3월 사이에 유행한다. 일단 지역적인 유행이 시작되면 약 6~8주 동안은 지속된다. 항체가 생기는 기간과 예방효과가 지속되는 기간을 고려하면 10월에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 좋고, 늦어도 11월까지는 맞아야 한다.
독감 유행시기에 앞서 예방주사를 맞으면 독감 예방 효과를 볼 수 있고, 독감에 걸려도 증상이 가볍게 지나간다. 하지만 일반 감기나 기관지염 혹은 일반 세균에 의한 폐렴 등의 모든 호흡기 감염질환이 예방되는 것은 아니다.
유행성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항원형에 따라 A, B, C 세 가지 형으로 분류된다. 이 중 A형이 가장 ‘항원 변이’를 자주 일으키며, 범세계적인 유행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원인바이러스의 90%를 차지할 정도다.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단백질 혹은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는 RNA가 변화를 일으켜 다른 특성을 갖게 되는 것이 항원 변이. 바이러스가 살아남기 위한, 또는 진화를 위한 생존 전략으로 보면 된다.
지금까지 인플루엔자의 유행 양상을 보면 10~40년을 주기로 새로운 항원이 출현해 왔다. 앞으로도 조금씩 형태가 바뀐 새로운 독감 바이러스가 나오는 만큼 독감 예방접종은 매년 새로 해야 한다. 독감 예방접종을 하러 갔다 국산과 수입백신 중 어느 것을 맞는 게 좋을지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에는 국산 백신과 수입 백신의 약효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국산 백신이나 수입 백신 모두 해외에서 생산한 독감 백신 원액으로 만드는 만큼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매년 초 세계보건기구(WHO)가 그 해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의 종류를 예상해서 발표하면 유럽·미국·일본 등에 있는 9개의 제약회사에서만 독감 백신을 생산한다.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백신 원액을 수입해서 쓴다.
우리나라도 수입한 백신 원액을 국내 제약회사에서 주사약병(바이알)에 나눠 담아 판매한다. 수입 백신이 한 사람에게만 주사하도록 만들어진 1회용 완제품인 데 비해, 국산 백신은 성인 2~6명에게 주사할 수 있는 분량이 하나의 주사약병에 들어간다. 여러 명에게 나눠 주사하므로 백신이 오염되지 않도록 ‘치메로살’이라는 보존제가 소량 들어있다. 치메로살에 수은성분이 들어있다고 해서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지만, WHO는 2003년 ‘치메로살이 든 백신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다’고 결론 내렸다. 1회용 수입 백신에는 치메로살이 들어있지 않다.
유럽 등지에서 1회용 사용 비율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선진국들도 우리나라처럼 1회용과 바이알이 모두 쓰인다. 국산 백신도 개봉한 날 모두 접종하면 오염될 위험이 거의 없지만, 오염이 걱정된다면 접종이 많은 병원을 찾는 게 좋다. 또 치메로살이 정 염려스럽다면 3세 이하 소아나 임신부 경우에는 1회용 백신 접종을 고려해 본다. 가격은 1만~1만5천원인 바이알 백신에 비해 1회용 백신은 두 배 가까이 비싸다. 65세 이상의 노인이나 기초 생활보장수급자는 보건소에서 무료로 접종이 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일반 주민도 5천원 정도의 비용으로 접종을 해준다.
송은숙 건강 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박용우 교수, 을지병원 가정의학과 손중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