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의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서양에서도 암환자의 치료율을 높이기 위해 침술 등 한의학적 방법을 많이 수용하고 있다. 사진제공=경희대병원 | ||
매년 발생하는 새로운 암환자만 해도 매년 10만 명 이상이다. 이 중에는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완치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길어야 몇 개월이라는 시한부 진단을 받고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말기 암환자들도 많다. 보다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의학계의 노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부쩍 건망증이 심해지고 감기에 자주 걸리자 아내의 권유로 종합병원을 찾았다가 2003년 8월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은 신경균 씨(60). 그것도 교모세포종이라는 악성 뇌종양으로, 항암제나 감마나이프라는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는데 크기가 너무 커서 어렵다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남은 시간은 6개월에서 길어야 1년. 여러 번의 항암제 치료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철저한 식이요법을 병행한 덕분에 2004년 2월에는 4㎝이던 종양이 1.3㎝로 크게 줄어들고, 2005년 2월에는 암 덩어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유방암 권위자인 한 종합병원의 L 교수 역시 말기 대장암을 수술, 항암제, 방사선 치료와 함께 식이요법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이들처럼 현대의학, 즉 서양의학과 한의학 같은 정통의학에 기존에 우리가 대체의학이라고 부르는 각종 식이요법이나 명상, 마사지, 미술치료, 음악치료, 웃음치료 등의 다양한 방법을 응용하는 것이 통합의학이다. 보완통합의학이라고도 한다. 처음 대체의학(Alternative Medicine)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 무렵으로, 그 후 보완의학(Complementary Medicine)으로 불리다가 보완대체의학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지만 요즘은 어느 한 분야가 다른 분야를 보완하고 대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함께 재창조된 제3의 의학이라는 점에서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이라는 용어를 주로 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통합의학, 통합치료법이 대두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대의학의 한계 때문이다. 현대의학은 암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라는 세 가지 무기를 사용한다. 이러한 현대의학적인 치료방법은 이미 눈에 드러나는 암은 잘 잡지만, 암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세포, 또 이미 어디엔가 숨어있는 암세포까지 잡아내지는 못한다. 수술 후에 항암치료를 해도 다시 재발하거나 전이되는 환자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통합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암을 정복하는 데는 현대의학적인 방법으로 암 자체를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료율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을 동시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의학의 난제인 암뿐만 아니라 알레르기, 성인병 등의 만성질환 역시 통합의학적인 치료를 하면 치료율과 환자의 삶의 질을 모두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경희대가 최근 문을 연 동서신의학병원 통합암센터 윤성우 교수의 설명이다.
2004년 미국의 경제지 <포춘>(Fortune)은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이 해마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연구비를 쏟아 붓고도 결국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며 ‘암과의 전쟁에서 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 현대의학의 한계를 일깨운 적이 있다.
이런 자성이 미국 내에 널리 퍼지면서 미국암학회(AACR)는 현대의학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지난해에 이미 통합의학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미국의 3대 암센터로 불리는 하버드의대 다나파버 병원, M. D. 엔더슨 병원, 메모리얼 슬롱케터링 병원이 주축이 되어 만든 통합암학회도 기존의 대체의학을 넘어선 통합의학으로의 발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다.
실제로 미국 내 많은 병원에서 통합의학센터를 개설해 환자에게 침술, 마사지, 식품보조제, 심신의학 등의 통합의학적인 치료를 하고 있다. 특히 그들이 효과를 인정하는 분야는 침술로 대부분 보험적용이 된다.
멕시코의 경우에는 통합의학의 세계적인 산실로 유명한 오아시스 홉 병원이 있다. 이곳의 콘트레라라 박사는 현대의학적인 치료 방법에 식이요법과 관장, 침술, 기공, 명상 등의 방법을 두루 병행해서 암환자들의 치료율을 높이고 있다.
한편 이웃 일본의 경우는 이미 약 15년 전부터 일부 의사들이 주축이 돼 굳이 현대의학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환자를 살려내는 데는 어떤 것이라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 아래 통합의학을 활성화시켜 오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의학계는 어떨까. 그동안 양방은 양방대로, 한방은 한방대로, 보완의학은 보완의학 분야대로 따로따로 성과를 내기 위해 배타적이던 국내 의학계도 차츰 통합의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대한의사협회 산하의 대한보완대체의학회 외에도 한국통합의학학회(회장·전세일), 국제통합대체의학협회(회장·조성준) 등 의료인들과 전문가들을 주축으로 한 여러 단체가 활동 중이다.
윤성우 교수는 “한의학을 정통의학의 범주로 보지 않는 외국보다는 우리나라의 통합의학이 양방, 한방의 장점을 충분히 결합시킨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통합의학학회의 전세일 회장도 “한국의 동양의학이나 서양의학은 모두가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러니 한국만큼 동서양의학을 접목하고 대체의학을 포괄해서 통합의학을 완성할 수 있는 나라도 없다”며 의견을 같이했다.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원장을 맡고 있는 전세일 회장은 1970년대에 이미 세계침술학회 회장을 지낼 정도로 양방과 한방, 대체의학까지 두루 섭렵한 전문가로 유명하다.
통합의학의 가장 큰 목표는 무엇보다 환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했을 때 가장 최선의 치료를 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어떤 환자에게 어떤 치료방법을 썼을 때 최고의 효과를 나타내는가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가 보다 많이 진행되어야 통합의학도 발전할 수 있다.
만약 통합치료를 받고자 할 때는 좋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무조건 섞는 것은 피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좋다는 치료방법도 암의 종류나 진행 속도, 합병증, 형태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만큼 전문가와 상의한 후에 자신에게 맞는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다른 치료법과 마찬가지로 슈퍼 해결사는 아니라는 점, 어떤 치료법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세일 박사는 “아직까지 효과가 검증이 안 된 부분이나 부작용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는 암환자의 심리를 이용하는 비윤리적인 상술에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동서신의학병원 통합암센터 한방내과 윤성우 교수, 한국통합의학학회 전세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