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사망원인에 따르면 40~50대 경우 암에 이어 간질환이 2위를 차지했다. 특히 40~50대 남성의 경우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여성에 비해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인체의 해독공장인 간을 미리미리 건강하게 지키는 요령을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간 전문의 이종수(독일 본대학 의대 종신직 교수) 박사로부터 들어보자.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아무래도 술자리 모임도 자연 늘어나는 시기. 피할 수 없는 술자리라면 간을 보호하는 다음의 3가지 원칙만은 잘 지키는 게 좋다. 술로 인한 간질환은 간염 예방접종 등으로 바이러스성 간질환이 줄어드는 것과 달리 더욱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나, 하루에 80g 이상의 알코올을 섭취하지 않는다. 알코올 80g은 맥주는 2ℓ, 소주는 1병, 청주는 0.5ℓ, 위스키는 200㎖ 정도에 해당되는 양이다.
적당한 알코올 섭취량을 지키려면 자신의 하루 음주량을 계산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이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마시는 술의 양을 모두 합하는 것이 원칙이다.
술병에 보면 알코올 농도가 %로 표시돼 있는데, 이 농도를 보면 술 100㏄ 속에 몇 ㏄의 알코올이 들어있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주 농도가 20%라면 소주 100㏄ 속에는 20㏄의 알코올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알코올 용량의 단위인 g으로 바꿀 때는 알코올 1㏄의 무게는 0.8g이므로 20×0.8=16g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보통 건강한 사람의 경우 1시간에 평균 8g 정도의 알코올을 분해해서 처리할 수 있다. 따라서 80g 정도면 간이 알코올을 처리하는 데 10시간 정도 걸리는데, 술을 마신 후 8시간 취침을 하면 자는 동안 마신 술이 거의 분해돼 다음날에 무리가 적다.
둘, 매일 마시지 않고 1주일에 2~3일은 반드시 금주한다. 술에 의해 손상된 간세포가 복구되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연달아 술을 마실 때는 하루 80g이 아니라 절반 정도인 30~50g(성인 남성의 경우) 정도로 양을 줄여서 마시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간이 건강한 사람의 경우에 적당한 음주량이다. 만약 간염, 지방간, 간경화 등의 크고 작은 간질환 특히 알코올성 간질환이 있다면 반드시 금주해야 한다. 이종수 박사는 최근에 완결판을 낸 <간 다스리는 법>이라는 저서에서 “예를 들어 C형 만성 간염이 있으면 20년 이상 지났을 때 약 3분의 1 정도가 간경화증이 된다. 하지만 소량이라도 술을 마시면 빠른 기간에 간경화가 진행된다”고 경고했다.
또 간질환이 아니더라도 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이 있는 경우 역시 적은 양의 음주로도 지방간이 생기는 등 해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셋, 술을 마실 때는 항상 안주를 같이 먹는다. 강한 알코올이 위벽을 손상시켜 위염이 생기는 것을 예방해 준다. 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양결핍 현상을 막는 데도 좋다.
단, 과음을 하면 아무리 좋은 안주를 챙겨 먹어도 간이 손상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흔히 안주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면 과음해도 간에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틀린 생각이다.
따라서 평소 술을 좋아하거나 직업상 술을 자주 마셔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안주를 잘 먹으니까 괜찮겠지’ 하는 방심은 금물이다. 정기적으로 간기능 검사를 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B형 간염에서 진행된 간암을 간이식 수술로 극복하고 다시 활발한 방송활동을 시작한 송지헌 아나운서(55)의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간질환의 주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바이러스로, 80% 이상이 간염 바이러스에 의해 생길 정도다.
그런데 요즘처럼 감기에 자주 걸리는 계절에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급성간염인데도 감기로 알고 대처하기 쉽다. 음식이나 물, 혈액, 체액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간염 바이러스가 침투해 급성 간염에 걸리면 7~10일 정도 감기몸살 때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감기몸살보다는 심하게 피로하고 콧물, 기침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열이 나면서 식욕이 없고 머리가 아프기도 하며 구토, 복통, 설사, 변비 등이 나타난다. 관절염처럼 사지의 관절이 아프기도 한다. 감기 몸살, 위장병과 비슷한 초기 증세가 1주일 정도 지나면 사라져 눈의 흰자위가 황색을 띠는 황달이 오고 피부색도 황색이 된다.
이때 감기몸살 또는 위장병이려니 하는 생각에 약국에서 약만 사먹거나 관절의 이상인가 싶어 정형외과를 찾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급성 간염일 가능성이 있는 만큼 병원을 찾아 혈액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간염의 초기 증상이 가볍게 나타나고 황달을 보이지 않는 무증세 간염인 경우에 주의해야 한다. 단순히 ‘요즘 일이 많아서 피곤한가?’ 하고 간염을 앓았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가지만 과로, 과음 등으로 간염이 완치되지 않으면 만성 간염으로 진행돼 간경화, 간암이 돼서야 발견되기도 한다”는 게 이종수 박사의 조언이다.
다른 장기와 마찬가지로 간도 나이가 들면 줄어든다. 바로 태어난 신생아의 경우 간의 무게는 체중의 4%에 해당되는데, 40세의 성인은 2.5%, 90세의 노인은 1.6%에 불과하다. 보통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간의 평균 크기가 40세 이하 젊은 층보다 25~30% 정도가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간의 기능도 그만큼 떨어지기 마련이다. 간의 혈류량이나 대사작용 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재생력도 떨어진다. 우리가 섭취하는 알코올, 약물 등의 유해물질을 처리하느라 지친 간은 강한 재생력에 의해 손상된 부분을 수시로 보수하면서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한다. 하지만 재생력이 떨어지면 유해물질을 처리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보통 중년 이후에는 당뇨병이나 고혈압, 심장병, 관절염 등으로 한두 가지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간에 무리가 되는지 정기적으로 체크해야 한다. 간기능 수치가 나빠지거나 빌리루빈 값이 상승하는 등 간에 이상신호가 켜지면 간에 해가 되지 않는 약으로 바꾸거나 양을 줄이도록 한다. 몸에 좋다는 각종 건강보조식품도 부작용으로 간을 손상시키지 않는지 미리 잘 확인하는 게 좋다.
한 가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간질환이 있더라도 마셔도 무방하다. 과거에는 간질환이 있으면 위장이 불편한 경우가 많아 무조건 커피를 마시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이후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커피를 마신 경우에 간의 손상이 더 억제되고 당뇨병을 예방한다는 해외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