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게다가 노 대통령은 정치권을 또다시 폭풍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개헌안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 “레임덕은 없다”고 천명했듯이 FTA와 개헌안이라는 두 개의 칼을 손에 쥐고 보수와 진보 진영을 넘나들며 위험한 외줄타기를 강행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거침없는 강 드라이브를 감안하면 정치권 일각에서 나돌고 있는 6월 한미 정상회담이나 10월 남북정상회담 추진설도 전혀 근거 없는 낭설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노 대통령과 범여권 핵심세력들의 재집권 전략과 맞물린 대도박 플랜이 은밀하고도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탄핵사태에 버금가는 메가톤급 태풍이 서서히 여의도 정가를 향해 북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역시 노 대통령이다.” “거대한 음모의 전주곡이다.”
FTA 훈풍을 타고 일순간에 정국주도권을 장악한 노 대통령의 승부수에 대한 정치권 관계자들의 관전평이다. 노 대통령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빛을 보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대선정국을 겨냥한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도 적지 않다.
실제로 FTA 카드는 노 대통령의 지지율을 30%대로 급상승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고 노 대통령을 경계선으로 한 기존의 보혁 정치구도를 뒤엉키게 하는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물론 탄핵 주역이었던 조순형 민주당 의원, ‘노무현 저격수’로 명성을 날린 전여옥 한나라당 최고위원,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주요 당직자 등 대다수 보수 진영 인사들은 한목소리로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조중동 등 이른바 보수언론들도 이번만큼은 노 대통령의 결단을 지지하는 논조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노 대통령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개혁·진보 세력과 구여권을 이끌어 왔던 동지들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탄핵’이란 용어까지 동원하며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고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으로 현 정부에서 장관까지 역임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민생정치모임을 이끌고 있는 천정배 의원은 결사 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열린우리당 최대 주주인 정동영 전 의장을 비롯해 범여권 예비 잠룡으로 분류되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도 노 대통령의 결단에 비판적인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어제의 적’들은 지원군이 되고 있는 반면 동지들은 등을 돌리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의 예상치 못한 호평과 관련해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이 “어리둥절하다. 시차 적응을 못하고 있다”고 말한 대목은 FTA발 정치구도 변화 기류를 잘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현상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야의 뒤집힌 반응은 18일로 예정된 개헌안 발의까지일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개헌안이 나올 경우 여야의 노 대통령에 대한 입장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17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 발의안을 상정해 의결키로 방침을 정했다. 지난 5일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은 “당초 실무적으로 개헌안 의결 날짜를 10일로 검토한 바 있으나 한미 FTA에 대한 국회 평가와 대정부 질문 일정 등을 감안해 17일 개헌안을 의결하자는 한덕수 총리의 건의사항을 대통령께서 재가했다”며 “국무회의 의결 후 관보 게재까지 빠르면 하루 정도 시간이 걸리는 만큼 발의는 빨라야 18일로 볼 수 있는데 일정은 협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노 대통령은 개헌안 발의 시점에 맞춰 국회 대국민연설을 추진할 방침이어서 한나라당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경우 개헌 시안 홍보와 관련해 임상규 국무조정실장과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을 국민투표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동시에 개헌안 부결에 ‘올인’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FTA 타결로 조성됐던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화해 무드가 개헌안 카드로 또다시 대결구도로 급반전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왜 진보와 보수 진영을 넘나들며 위험한 도박게임을 펼치고 있는 것일까. 또 노 대통령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FTA와 개헌안 이면에 숨겨진 복심과 정치적 노림수는 무엇일까.
정치권 관계자들과 선거 전문가들은 노 대통령이 전개하고 있는 도박게임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고도의 정치적 노림수가 투영돼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즉 재집권 전략과 맞물린 대선 마스터플랜이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이들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노 대통령의 승부수와 맞물린 각종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FTA와 개헌 카드로 보혁구도를 뒤흔들어 놓은 뒤 양측의 지지를 바탕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대선정국 막판에 대반전을 시도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탄핵 때와 같은 상황을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음모론이 내포돼 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FTA 타결로 든든한 정치적 버팀목이었던 진보세력과 등을 지게 됐고 개헌안이 발의될 경우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의 강도 높은 공세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범여권과 한나라당을 모두 끌어 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권 제세력으로부터 외면을 당해 고립무원의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경우 노 대통령은 또다시 탄핵에 버금가는 정치적 시련에 직면할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음모론은 바로 노 대통령이 처할 이러한 극한 정치상황과 맞물려 있다.
즉 노 대통령과 범여권 핵심들은 국가의 미래와 정치개혁을 당리당략과 대권 이해득실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정치권보다 일관된 소신과 원칙을 유지한 노 대통령에게 민심의 저울추가 기울 수 있다는 점을 노리고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은 물론 범여권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한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동정 여론도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5일 기자와 만난 한나라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층인 진보 진영과의 결별을 불사하면서까지 FTA를 밀어붙였고 보수진영의 거센 반발을 예단하면서도 개헌안 발의 의지를 꺾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분명 정치적 노림수가 내포돼 있을 것”이라며 “정치권이 노 대통령의 승부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휘말릴 경우 대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박근혜 전 대표와 가까운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도 “노 대통령은 보수 진영에 ‘트로이 목마’가 될지 모른다”며 노 대통령의 거침없는 승부카드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 주변에서 FTA와 개헌안을 둘러싸고 각종 시나리오와 괴담이 나돌고 있지만 청와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원칙과 소신’ 기조를 끝까지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지지층 착시현상과 관련해서도 일시적인 현상일 뿐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원대복귀’할 것이란 원칙론을 강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에 국민들이 공감한다면 음모론 차원이 아니더라도 보수와 진보 모두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북핵 문제 등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정상화되고 있어 연내에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경우 FTA와 개헌안으로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진보나 보수 세력 모두 대승적 차원에서 노 대통령의 임기말 정책에 지지를 보내게 될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기대감처럼 노 대통령이 등 돌린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키고 본격적인 개헌정국을 앞두고 다시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을 끌어안을 수 있을지 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또 정치권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음모론 등 각종 시나리오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도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다만 노 대통령이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위험한 외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탄핵’이라는 핵폭탄으로 열린우리당을 일약 원내 1당으로 만든 노 대통령의 승부사 기질에 비춰볼 때 FTA-개헌안-정상회담-대선정국으로 연결되는 강 드라이브 이면에는 뭔가 고도의 정치적 노림수가 농축돼 있을 것이란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임기말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도 거침없는 드라이브로 정국 주도권을 놓지 않고 있는 노 대통령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고 있는 걸까. 또 그가 그리고 있는 임기말 국정운영 그림 뒤에 숨겨져 있는 노림수는 무엇일까. 노 대통령의 좌충우돌 행보에 정치권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