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10일 창당 3주년 기념식에서 촛불을 끄고 있는 열린우리당 지도부. 이들 중 조배숙 김한길 의원이 이미 탈당했고 김근태 전 의장 등 다른 의원들도 4·25 재보선 결과에 따라 탈당할 것으로 보인다. | ||
그동안 지리한 힘겨루기와 치열한 눈치작전을 펼쳐왔던 범여권 제 세력들이 5월을 전후해 5개 정파로 재편될 것이란 관측이 점차 힘을 받고 있다. 정치권 주변에서 ‘범여권 5월 빅뱅설’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범여권 지도가 새롭게 재편될 경우 차기주자들의 대권 서바이벌 게임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범여권 지도의 대변화를 예고하는 동시에 차기주자들의 대권 방정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5월 빅뱅설을 진단해 봤다.
여권 5월 빅뱅설’의 정점에는 열린우리당과 범여권 차기주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대규모 추가 탈당 및 범여권 차기주자들의 최종 선택 여부가 빅뱅설을 부추기는 핵뇌관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규모 추가 탈당 등 소문만 무성했던 열린우리당의 핵분열 시나리오는 5월을 전후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기폭제는 4·25 재보선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열린우리당은 이번 국회의원 재보선 3곳 중 경기도 화성에만 후보를 냈을 뿐 대전 서을과 전남 무안·신안에는 연합후보라는 명분으로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화성에서도 한나라당 후보에 밀리고 있어 과정이야 어찌됐든 단 1석의 의석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질적 여당이자 원내 2당의 체면은 차치하더라도 탈당 명분을 찾고 있는 통합파에게는 더 없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재보선 참패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만큼 그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도부 책임론과 함께 강경 통합파의 당 해체론 주장도 거세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재보선 후폭풍은 계파 간 갈등으로 비화될 공산이 크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 탈당이 결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정동영 전 의장계와 함께 당내 지분을 양분하고 있는 김근태 전 의장계는 이미 민생정치모임을 이끌고 있는 천정배 의원계와 힘을 합쳐 개혁신당을 창당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분위기다. 여차하면 탈당 카드를 꺼내들 태세다.
정동영 전 의장도 5월을 넘기지 않고 거취를 결정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탈 여의도 정치’를 끝내고 현실 정치에 복귀한 정 전 의장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인물 중심의 후보 간 연대론에 역점을 두고 있다. 정 전 의장은 자신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탈당은 대통합을 이루는 데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대통합에 걸림돌이 된다면 당적이든 기득권이든 포기하겠다는 의지에 비춰볼 때 이미 탈당에 방점을 찍고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범여권 관계자들은 우리당 최대 주주인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이 탈당을 결행할 경우 40~50명의 의원들이 그 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야말로 열린우리당의 핵분열을 현실화시키는 거사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정세균 의장이 주도하고 있는 제3지대 대통합론도 우리당 사분오열을 부추기는 핵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 의장은 민주당과 통합신당모임의 신당창당 움직임을 ‘소통합’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제3지대 대통합론을 주창하고 있다. 그는 5월 18일과 6월 10일 사이에 대통합의 밑그림이 그려질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정 의장이 주도하고 있는 대통합론에는 당 지도부와 문희상 배기선 등 중진그룹이 힘을 실어주고 있어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 경우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경우 범여권 지도는 친노그룹이 주축이 된 열린우리당, 정 의장 주도의 대통합그룹, 김근태·천정배계와 시민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신당, 통합모임이 추진하고 있는 실용주의 신당, 민주당 중심의 중도개혁그룹 등 크게 다섯 정파로 재편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범여권 5월 빅뱅설이 현실화될 경우 범여권 차기주자들의 대권 서바이벌 게임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투를 벌일 대진표가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낸 만큼 차기주자들도 유리한 대권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어느 진영이든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정파들도 세력 주도권 싸움 및 대권 입지 확보 차원에서 자신들이 지원하는 대권주자 띄우기에 적극 나서는가 하면 유력한 후보가 없는 진영에서는 제3후보 영입에 ‘올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정치적 버팀목인 친노그룹은 소수 정예만 남더라도 열린우리당을 끝까지 사수하면서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강구한다는 방침이다. 대표적인 친노 주자인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정계개편을 원치 않는다”고 천명한 이면에는 친노그룹의 생존 플랜이 어느 정도 투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유 장관이 당으로 복귀해 당 사수를 주도할 경우 범여권은 친노 대 반노·비노 전선으로 재편되면서 핵분열을 부추기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김혁규·이해찬·한명숙 의원, 유시민 복지부 장관 등 친노성향 예비 잠룡들의 대권행보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친노그룹은 다양한 후보군을 경선레이스에 참여시켜 경선 흥행과 함께 차기주자들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방향으로 대권 로드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신당 창당을 조율하고 있는 김근태 전 의장과 천정배 의원은 FTA 반대를 매개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와의 차별화를 꾀하는 동시에 진보·개혁세력을 대변하는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정세균 의장 주도의 대통합그룹과 박상천 민주당 대표와 김한길 의원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실용주의 통합신당이 계획대로 신당창당에 성공할지 여부다. 실제로 실용주의 통합신당 논의는 신당모임이 독자신당 창당 쪽으로 방향을 틀어 사실상 협상이 결렬돼 당분간 각개약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들 세 그룹은 이렇다 할 대선주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대선을 불과 8개월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유력한 대권주자 없이 세력 결집을 기대하기 힘들고 신당 창당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들 정파들이 기존 대권주자인 정동영 전 의장과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제3후보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 세 정파의 세력 전쟁과 맞물려 범여권 주자들의 최종 선택도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범여권 주자를 통틀어 지지율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정 전 의장과 손 전 지사는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5월 빅뱅이 현실화되고 범여권 지도가 새롭게 그려질 경우 독자노선이든 둥지 선택이든 정치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범여권 잠룡들은 물론 정치권 인사들을 두루 접촉하면서 외연을 확대하고 있는 정 전 총장 역시 5월 빅뱅설과 맞물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거취 문제를 결정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 전 총장의 한 측근은 18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정 전 총장은 이미 대권 출마 결심을 굳혔다. 다만 독자신당이냐 제3지대 통합론 등을 명분으로 정치참여 수순을 밟을 것이냐를 놓고 고심 중인 것 같다”며 “범여권 중진들을 두루 접촉하면서 해법을 찾고 있고 5월 중에 자신의 대권 청사진을 제시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4·25 재보선 이후 정세균 의장과 열린우리당 내 중도·개혁성향 의원들이 제3지대 대통합론을 기치로 대규모 탈당을 결행할 경우 정 전 총장이 자연스럽게 이 대열에 합류해 대권행보를 걷게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5월 빅뱅설과 관련해 정치권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각종 시나리오가 현실화될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다만 한나라당 ‘빅2’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대선구도를 감안하면 범여권은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를 모색할 것이고 그 마지노선을 5월로 잡고 있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바야흐로 빅뱅 정국으로 접어든 범여권 제 정파와 대선주자들의 1차 대권전쟁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승부처 5월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