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5 재보선 전날인 지난달 24일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왼쪽)이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선거행태를 비판하며 돈선거 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 ||
먼저 40승 무패의 재보궐 신화를 자랑하던 한나라당은 유력 대선주자 2명의 막강 지원에도 불구하고 참패를 함으로써 그들의 본선 경쟁력에도 의문표를 던져주고 있다. 또한 ‘동네북’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빠짐으로써 공격 타깃을 잃은 한나라당 후보들도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결과는 이번 대선이 노무현 정권 심판론보다 북한 변수 등 미래지향적 변수가 등장할 경우 이에 따라 결정날 것임을 암시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4·25 재보궐 선거와 대선의 ‘이차방정식’을 풀어보았다.
“역시 민심은 무섭고 냉혹하다. 정치인들이 잠시라도 방심하면 사정없이 공격하는 정밀 유도탄 같다. 대선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다. 선거 전날이라도 누군가 실수를 해 조그마한 틈을 보인다면 민심의 정밀한 폭격을 받을 것이다.”
한나라당 한 초선 의원이 ‘재보궐 40승 무패’를 자랑하던 자당의 ‘4·25 참패’를 빗댄 말이다. 한나라당은 선거 기간에 돈 공천, 후보 매수, 과태료 대납 등 후진국 정치에서나 볼 수 있는 온갖 비리, 추태들을 남발하다가 결국 민심의 통절한 채찍을 맞고 말았다.
열린우리당도 그 채찍을 피할 입장은 못 된다. 전국 55개 선거구 가운데 기초의원 1곳 달랑 당선시킨 초라한 성적은 차치하고라도 집권여당으로서 변변한 후보 하나 내세우지 못했음에도 야당의 패배에 ‘화장실에서 웃고 있는’ 후안무치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재보궐 선거가 한나라당의 참패로 헤드라인이 뽑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밀 유도탄 같은 민심의 무서움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먼저 선거 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의원 선거구 세 곳과 기초단체장 선거 6곳 중 각각 한 곳에서만 이길 수 있었다. 특히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당의 대선 유력 주자들이 총 출동해 지원했던 대전 서을 선거에서도 큰 표차로 패배, 당을 지도부 사퇴 내홍에 휘말리게 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의 한나라당 의원은 이에 대해 “민심은 참으로 무서웠다. 이번 선거 결과는 높은 지지율만 믿고 구태의연한 금권정치를 자행하던 한나라당을 향해 민심이 그대로 철퇴를 가한 것이다. 조금도 빈틈을 주지 않고 정치권의 잘못을 꾸짖는 민심이 두렵기만 하다”라고 밝히면서 “이번 선거를 두고 국민들이 한나라당의 ‘빅 투’의 싸움에 싫증났다는 의견도 있지만 두 사람 위주로 움직이는 대선 구도에 뭔가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민심의 총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곧 대권주자들의 지지율을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현재 좋아하는 대권 주자들에 대해 지지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그것이 곧 표로 연결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앞으로 그들이 국가 경영 능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언제라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민심의 명령과 같은 것이다”라고 밝혔다.
사실 지지율로만 보면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열린우리당 후보 없이 ‘한나라당 대 비한나라당’ 대결로 치러진 대전 서을 국회의원 및 서울 양천 등 6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의 득표율이 35% 안팎이라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50%대를 기록 중인 한나라당의 ‘진짜’ 지지율이 확인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10~15%는 ‘거품’이 끼어있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심이 한나라당의 구태정치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점도 거대 야당의 지지율에 거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대전지역 한 언론인은 이에 대해 “대전 서을의 경우 이재선 후보가 워낙 약체였고 인지도도 많이 떨어졌다. 다른 선거구도 공천 헌금 등으로 얼룩져 능력 있는 후보가 아닌 돈 많은 후보가 대거 나섰기 때문에 그들의 자질면에서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본다. 당의 지지율에 거품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대선과 이번 선거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인물 경쟁력과 지역 상황 등에 의해 선거 결과가 결정되었지, 한나라당 전체의 총체적 무능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가 인물 중심이 아닌 구도가 중요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중심에는 이른바 ‘무노선거’(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뒤 치러진 첫 번째 선거라는 뜻으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책임론이 선거 이슈로 떠오르지 않았음)가 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 선거는 유령과의 싸움이었다. 당 지도부는 선거 전략을 짜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후보들을 공격하면서 ‘정권심판론’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선거가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구도’라는 새로운 대결구도에서 치러졌음에도 당 지도부는 종전의 ‘반노무현 정서’나 ‘정권심판론’과 같은 안일한 이슈로 선거를 치렀다는 점에서 패배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 4·25 재보선 참패 다음날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정형근 전재희 이재오 김형오 강재섭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런데 범여권의 이러한 통합과 ‘노무현 벗어나기 전략’이 그대로 이번 대선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먼저 현재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50%대를 기록하는 주요 이유는 그들만의 자생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 싫어서’ 얻었던 반사이익 성격이 강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완만한 상승세를 지속할 경우 당 지지율은 그 반대로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선거 전략 전문가는 이에 대해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고전한 이유는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했고 한미 FTA 합의 이후 노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가 올라간 상황에서 치러졌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지난 다섯 번의 재보궐 선거에서 노 대통령은 도마 위의 생선이었다. ‘뒤로 자빠져 코가 깨져도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이 유행할 때였다. 한나라당의 압승에는 노무현 대통령 때리기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그런 점이 부각되지 않았다. 한미 FTA 타결 뒤 보수언론에서도 호의적인 상황이고 지지율도 30%대를 유지하는 등 좋은 상황이 계속되자 노무현 때리기가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간파하지 못한 당 지도부의 전략 부재는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향후 대선에서는 노무현 때리기의 효과가 더욱 약해질 것이라는 점이 한나라당을 한숨짓게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 친노그룹 인사는 이에 대해 명확한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는 “대선 판이 가까워질수록 노무현이라는 존재는 보이지 않게 된다. 아무리 그가 실정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대선에서는 그리 중요한 잣대가 되지 못한다. 이는 지난 선거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는 아들 비리와 대북송금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김대중 정권의 심판을 줄기차게 외쳤지만 국민들은 정치개혁을 주장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민들은 전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평가보다는 차기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으로 투표장에 간다. 그런 만큼 한나라당이 현 정부의 낮은 인기로 인해 누려온 프리미엄은 정작 대선에서는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정치 전문가들도 이에 대해 “이번 재보궐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유권자들이 차기 대선을 의식한 전망적인 투표를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국민들은 역대 대선에서 현 정부에 대한 회고적인(retrospective) 평가보다 미래를 염두에 둔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를 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로선 그 전망적 투표의 발판이 북한 변수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국민들이 전망적 투표를 한다면 노무현 정권 심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여권에서 추진중인 남북정상회담 개최, 전쟁 종결과 평화 선언 등의 해빙 무드 조성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은 이러한 시나리오에 대해 반박할 재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높은 당 지지율과 빅 투의 지원유세에도 큰 표차로 떨어진 재보궐 선거 패배자가 한둘이 아니고 그들이 일종의 ‘징후’로 나타난다면 당 차원의 대선 전략에도 일대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점은 한나라당의 참패에 가려져 있는 열린우리당의 무력함이 대선까지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만 ‘주워먹기’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비판은 열린우리당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무임승차하려는 것 같다. 대통합 운운하며 누가 깃발을 들어줄지 눈치만 보는 것 같다. 국민들은 열린우리당 또한 한나라당의 패배에 따른 반사이익이나 줍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차갑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재보궐 선거 뒤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먼저 문화일보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전 시장의 지지율(45.5%)이 박 전 대표(23.4%)보다 월등히 앞서며 안정적 지지율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 후보들의 지지율과 당 지지율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이는 이번 재보궐 선거가 한나라당의 구태정치에 대한 반감일 뿐이지 그것이 그대로 열린우리당 지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 결과가 한나라당에 오히려 ‘보약’이 되고 열린우리당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선거 결과 발표 뒤 일부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마치 통합이 눈앞에 온 듯 승리감에 도취된 것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앞으로 열린우리당의 ‘자기 개혁’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웅변해주고 있다. 또한 현재 중구난방으로 진행되고 있는 통합 작업이 예전 3김 시대의 강력한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진행될 것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여권의 완전한 통합은 18대 총선과 맞물리면서 이미 물 건너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