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 ‘빅2’ 후보와 손학규 문국현 박원순 등 범여권 예비후보들을 싸잡아 비난해, 그 의도가 주목된다. | ||
친노그룹도 조직 재정비 등 연말 대선과 내년 총선에 대비한 독자생존 전략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 분당설’ ‘5월 빅뱅설’ 등이 현실화 될 조짐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정국 주도권 장악 및 대선정국영향력 극대화를 위한 모종의 비밀 프로젝트가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한나라당과 범여권 주자들을 견제하는 동시에 친노주자를 띄우기 위한 고도의 대권전략이 투영돼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진두지휘하고 친노그룹이 적극 지원하는 이른바 ‘대권주자 죽이기’ 비밀 플랜이 가동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력한 범여권 제3후보로 거론됐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또다시 거침없는 행보로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는 노 대통령의 숨은 노림수와 대권 복심을 들여다 봤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찍히면 살아남지 못한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선무대에서 씁쓸하게 퇴장한 이후 정치권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말이다.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고건 전 총리에 이어 정 전 총장마저 낙마하자 ‘살아 있는 권력’과 맞서면 낭패를 볼 수 있음을 빗댄 표현으로 풀이된다.
유력한 범여권 주자로 지목됐던 두 사람이 갑자기 불출마를 결단한 배경에 노 대통령과 친노세력의 입김이 얼마나 깊이 작용했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노 대통령이 고 전 총리와 정 전 총장의 불출마 전에 이들의 대망론을 평가절하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두 사람이 불출마를 결정한 이면에는 노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지난 2월 인터넷 매체와의 회견에서 차기 대통령의 자질을 묻는 질문에 “경제는 단골 메뉴고 특히 정치를 좀 잘 알았으면 좋겠다”고 답해 ‘경제 대통령’을 꿈꿨던 정 전 총장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또 지난 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도 “나섰다가 안 되면 망신스러울 것 같아 한발만 걸쳐 놓고 눈치 보는 자세로는 안 된다”며 정 전 총장의 결단력 부족과 소극적인 행보를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이 글이 작성된 시점은 정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 전인 지난달 23일로 이미 불출마 전에도 노 대통령이 정 전 총장을 대권주자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스스로 “레임덕은 없다”고 천명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이나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감안하면 그의 대권 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노 대통령이 차기 대권주자들을 싸잡아 비판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관측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정치, 이렇게 가선 안 됩니다’는 제하의 글을 통해 “요즘 지도자가 되겠다는 분들을 보면 가슴이 꽉 막힌다”며 한나라당 대권 ‘빅2’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한나라당을 탈당해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손학규 전 지사, 제3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과 박원순 변호사 등 친노주자를 제외한 차기 대권주자들을 싸잡아 겨냥해 집중포화를 날렸다.
그는 “인기 낮은 대통령을 공격해 얻는 반사 이익만으로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를 공격하는가 하면 “대통령이 되고자 하면 정당에 들어가야 한다. 경선에 불리하다고 당을 뛰쳐나가는 것도 할 일이 아니다”며 손 전 지사를 겨냥하기도 했다. 또 “여러 당이 통합하여 자리를 정리해 놓고 모시러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범여권 제3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문 사장과 박 변호사를 겨냥한 듯한 글도 남겼다.
실제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연말 대선정국과 내년 총선을 겨냥한 독자 생존플랜과 맞물린 ‘대권주자 죽이기’ 비밀 플랜을 물밑 가동하고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차기주자들을 싸잡아 비판한 것은 본격적인 네거티브 전쟁을 예고하는 선전포고일 것이란 관측이다.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각 주자별 약점과 아킬레스건을 이미 상당부분 확보하고 자신들의 대권·총선 전략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주자들을 주 타깃으로 정보전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대권 빅2’인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네거티브 전략을 조기에 가동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친노그룹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을 정점으로 각종 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기관들은 가동해 두 사람과 관련한 정보를 전방위적으로 취합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두 사람이 집안 싸움(당내 경선)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최종후보가 결정된 이후에 취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한다는 게 당초 계획인 것으로 추측돼 왔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경선 결과에 승복하고 러닝메이트로 나설 경우 어려운 승부가 될 것으로 판단한 청와대가 조기에 두 사람을 갈라놓는 전략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에게 치명타를 안길 수 있는 고급 정보를 상대방 진영에 흘려 두 사람이 경선 과정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혈투를 벌이다 결국 이별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는 게 이른바 ‘이명박-박근혜 갈라치기’ 전략의 골자다.
정운찬 전 총장이 퇴장한 이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등 최대 수혜자로 꼽히고 있는 손학규 전 지사에 대한 공세도 더욱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3일 ‘범여권 표현, 맞지 않습니다’라는 브리핑을 통해 “열린우리당, 민주당, 국민중심당, 우리당 탈당세력, 심지어는 손학규 전 지사까지도 범여권으로 부르고 있다”면서 “근거도 없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 구분”이라고 주장했다. 손 전 지사는 범여권 후보가 아니고 후보가 돼서도 안 된다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손 전 지사가 정 전 총장 낙마 이후 유력한 범여권 후보로 급부상하자 그의 상승세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함께 ‘대권주자 죽이기’ 플랜의 다음 타깃은 손 전 지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메시지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탈당이냐 잔류냐를 놓고 막판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에 대해서도 비판 강도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탈당 쪽에 무게중심을 싣고 있는 만큼 구여권을 이끌어 왔던 노 대통령과 두 전직 당 의장은 범여권 주도권 싸움과 맞물려 피 말리는 이별전쟁이 불가피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 전 의장이 “(노 대통령이)언젠가 나에게도 비판할 것”이라고 경계하면서 사실상 탈당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이 최일선에 나서 ‘대권주자 죽이기’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배경에는 최근 30%대 까지 치솟고 있는 지지율을 기반으로 임기 말까지 주어진 권력을 최대한 활용해 대선정국에서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친노주자 띄우기’ 전략을 본격화하기 위한 고도의 대권 플랜이 투영돼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과거 정권과는 달리 임기를 10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도 거침없는 행보와 강한 자신감으로 정국 이슈를 주도하고 있는 노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범여권 세력 재편 밑그림과 대권 복심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