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여권의 통합이 가닥을 잡지 못하는 가운데 친노그룹이 비밀리에 만들었다는 ‘1219 전략’이 이미 가동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5월 8일 국무회의 모습. 앞엔 유시민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 ||
최근 청와대 만찬 행사에 참석했던 열린우리당의 한 영남권 의원은 “노 대통령이 현재의 정치상황을 극히 비정상적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정치인 노무현’이 가지는 어떤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혼돈의 상황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싶었고, 솔직히 (대선후보로) 누굴 생각하는지가 궁금했다”면서 “하지만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특정인을 꼽고 있다기 보다는 정치구도에 더 관심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이 생각하는 구도를 유추해 보니 (후보로 생각하는) 사람도 보이더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이 생각하는 대선구도 속에 담겨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캐물었지만 그는 말을 아꼈다.
친노직계로 분류되는 또다른 열린우리당 의원은 “대통령이나 참모진의 나이, 정치적 사명의식 등을 고려하면 다음 대선은 ‘그냥 넘기기 어려운 사안’이라며 “조만간 청와대에서 직접 대통령의 의중을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1219 전략’이라는 게 문서로 정식으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노 대통령이 쓴 글(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에서 어느 정도 그 모습이 보이지 않더냐”고 반문한 뒤 “개헌이 무산된 직후 (청와대) 정무팀이 좀 바빠진 것 같더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두 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노 대통령의 ‘1219 전략’은 실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구체화된 시기는 ‘원포인트 개헌’이 불발로 끝난 직후쯤으로 이 구상의 일단이 노 대통령의 ‘글’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개헌정국 직후부터 이강철 정무특보,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이해찬 전 총리, 김혁규 의원 등 친노인사들의 활동반경이 확대되면서 열린우리당 내 친노-비노 간 대립이 격화된 점도 주목된다. 친노인사와 청와대 참모 출신들이 대거 참여한 참여정부평가포럼(참평)이 출범한 것도 이 시기다.
김두관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은 자신이 추구해온 정치적 가치와 자산을 소중히 생각할 뿐 아니라 그것이 곧 역사와 국민의 뜻으로 믿고 있다”면서 “대통령은 (한나라당 일변도인) 현 대권구도가 그대로 갈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1219 전략’의 내용은 뭘까. 이는 노 대통령의 ‘글’과 함께 거꾸로 노 대통령과 정면충돌을 불사하고 있는 정동영 김근태 두 전 열린우리당 의장 측의 주장에서 역으로 추론해 들어갈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이란 글에서 호남-충청 서부벨트 승리론이 환상이라는 점과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부벨트 환상론의 근거는 영남을 본거지로 한 한나라당이 분열하면서 대권을 쟁취했던 지난 두 번의 대선경험에서 나왔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필생의 과업으로 추구해온 전국정당만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고, 이를 위해 영남을 파고들기 위한 전략이 ‘1219 전략’의 뼈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개헌정국 직후부터 열린우리당에서 김혁규 의원 유시민 복지부 장관 김두관 전 장관 등 이른바 ‘영남후보론’이 제기된 것과 관련지어 분석하는 인사들도 있다.
그러나 서부벨트에 이어 영남까지를 파고드는 노 대통령의 의지가 비 영남권 의원들에게 ‘영남 신당론’으로 부풀려져 왔다는 것이 친노 의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처럼 불안감을 느낀 충청 호남권 의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정치후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탈당을 결행하는 상황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내부 사정도 ‘1219 전략’의 파괴력을 말해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경선 룰 문제로 한지붕 두가족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4자 필승론이니, 3자 필패론이니 하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분열을 전제로 한 이런 분석은 범여권 후보가 사실상 ‘부재’한 상황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런 정치적 상황은 여의도에서 오래전부터 예견돼 왔던 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219 전략’에도 이를 감안한 정계개편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계산에 들어있는 정계개편의 내용은 우선 한나라당의 분열이 제1 요소이고 열린우리당의 재편이 제 2요소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열린우리당의 김혁규 의원은 “한나라당은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하나로 가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만에 하나 단일 후보를 낸다 하더라도 내부 역학관계로 볼 때 영남의 힘을 그대로 대선까지 유지해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향후 재편과정과 관련,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은 당을 떠날 것”이라며 “그렇더라도 한나라당에 맞서는 대표정당은 열린우리당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노직계로 분류되는 김 의원은 정당은 ‘양보다는 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노 대통령이 지원하는 열린우리당이 50명 안팎으로 쪼그라든다고 해서 정치적 파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면서 “노 대통령의 정치적 가치를 계승하는 세력이 일사불란하게 새로운 정당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한 얘기다.
바로 이 지점에서 ‘1219 전략’의 핵심인 친노세력의 신당이 등장하고,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으로서는 참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의장계인 김현미 의원은 “참여정부평가포럼이 (비노 그룹이 탈당한 뒤) 열린우리당의 인력공급 풀”이라며 즉각적인 해체를 요구했다. 친노세력이 열린우리당을 리모델링해서 신당으로 새롭게 만들어 활동하는 한 범여권에서 정 전 의장을 비롯한 비노 대선주자군이 범여권의 대표 주자로 올라서기는 쉽지 않다. 열린우리당의 창당 주역이면서 열린우리당 후신인 미니 열린우리당과 싸우는 상황은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김 두 전 의장이 열린우리당을 단순히 탈당하는 게 아니라 열린우리당을 해체시켜야만이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향후 범여권은 친노그룹의 열린우리당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선진평화연대, 중도개혁통합신당, 민주당에 정 전 의장의 신당, 김 전 의장과 민생정치모임 천정배 의원의 신당 등이 공존하는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 역시 ‘1219 전략’에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여권 관계자의 이야기다. 친노계인 한 의원은 “무슨 대선 전략이 별도로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정치는 흐름이고, 그런 흐름을 이끄는 힘이 있다”면서 “비노 측으로서는 그런 힘의 근원을 청와대로 의심하며 무슨 전략 무슨 전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범여권이 갈라치기를 하고 있고, 이는 결국 범여권의 ‘파이’를 키우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청와대로서는 나쁠 게 없다고 볼 수 있고 반면 정 전 의장 등이 보면 아주 나쁠 수도 있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열린우리당의 분화 과정을 포함한 범여권의 ‘빅뱅’이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에게는 정치적으로 손해날 게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왜 그럴까.
열린우리당의 한 최고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얼마 전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났더니 대뜸 ‘대통령 생각을 묻지 말고 열심히 하시면 되지요’라고 말하더라. 두 전직 의장이 탈당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당으로서는 아주 절체절명의 상황인데도 말이다. 청와대가 이번 일(정 김 전 의장과의 갈등)에 대해 표면적으로 보면 아주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너무 차분한 것 같다”고 말해 이미 청와대 측은 이런 모든 상황에 대한 대비가 갖춰졌을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겼다.
김혁규 의원이 “범여권은 어차피 분화될 것이다. 그리고 각자 진영에서 후보를 뽑을 것이고 한나라당 후보에 맞서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오픈프라이머리 등을 통해 단일후보를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10월경에 범여권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때 어느 쪽이 더 유리한가 하는 부분은 그때 가봐야 하겠지만 흥행요소는 열린우리당이 높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정가에서는 손 전 지사의 정당이나 정·김 전 의장의 신당 등은 후보가 당을 만드는 형식이어서 사실상 흥행을 기약하기 어려운 구도라고 보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다르다. 우선 김 의원을 비롯해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복지부 장관,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등 잠룡들이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나타날 자연스럽게 범여권 대표주자로서의 흥행과 가능성 모두 열린우리당 후보가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또 한 가지 열린우리당 후보는 남북문제에 있어 노 대통령의 간접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도 있다. 또한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1219 전략’의 마지막 한 페이지는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협력이라는 카드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서부벨트를 넘어 영남으로 진격해 필승한다’는 구도는 호남의 지지를 전제로 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접촉은 남북정상회담 전후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서로 소원할지 몰라도 어차피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노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김 전 대통령과 접촉하면서 정치적으로 햇볕정책의 계승자로 부각되고, 그런 흐름이 자연스럽게 열린우리당 쪽으로 연결시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이런저런 상황을 보더라도 ‘1219 전략’은 실재여부를 떠나 이미 현실화되고 있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과연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구상하고 있는 ‘1219 전략’대로 정국이 흘러갈 것인지는 아직 속단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범여권과 한나라당의 복잡한 움직임을 놓고 볼 때 점차 현실성을 더해 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강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기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