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지대에서 ‘질서 있는 대통합’을 주장하고 나선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왼쪽)과 문희상 전 의장. | ||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이 최근 입수한 열린우리당의 ‘대통합·국민경선 일정안’은 핵분열을 기정사실화하면서도 당 지도부와 중진그룹이 각 정파와 교감을 갖고 대통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간다는 새로운 방안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2차 핵분열을 코앞에 두고 통합 주도권 장악에 나선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중진그룹이 구상하고 있는 대통합 로드맵에 담긴 내용과 실제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지 들여다봤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대통합·국민경선 일정(안)’은 열린우리당 수뇌부가 5월 말 작성해 정세균 의장과 문희상 전 의장 등 일부 중진의원들과 핵심 당직자 몇 명에게만 배포한 대외비 문건이다. 문건에는 6월부터 10월까지 세부 계획안이 담겨져 있는데 8월까지는 한나라당 경선 추진일정도 함께 적시해 놓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6월 초·중순에 시민사회창당 선언과 제3지대 통합을 완료하고 △7월 초·중순에는 대통합신당 창당과 경선룰을 기획하고 미팅하는 것으로 적시돼 있다. 또 △범여권 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범여권 경선에 참여할지 여부를 결정짓는 데드라인은 7월 말이나 8월 초로 잡고 있으며 △선관위에 경선룰을 통보하는 데드라인인 8월 9일을 기점으로 정책토론을 한 달간 진행하고 △9월 8~9일 전국유세에 돌입해 10월 6~7일에 전국유세를 마감한다는 게 골자다.
통합 방법론 및 주도권 장악을 놓고 당내 제 정파 간 치열한 기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일부 정파가 제시한 추상적인 로드맵과는 달리 문건에 적시된 로드맵은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일정안을 담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문건 작성자 및 문건에 적시된 대통합·국민경선 로드맵을 주도하고 있는 핵심 세력이 열린우리당의 핵심 당직자라는 점에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로드맵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또 제3지대 통합과 대통합신당 창당 등 범여권 빅뱅과 맞물린 민감한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시점을 잡아놓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추진세력이 이미 오래전부터 관련 주요 인물과도 물밑 교감을 가지며 ‘거사’를 진행해 온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문건은 열린우리당 수뇌부의 지시로 핵심 당직자가 작성했으며 아직까지는 정 의장과 문 전 의장 등 중진그룹 핵심인사 몇 명에게만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역으로 정 의장 등 중진그룹이 오래전부터 대통합신당에 교감을 갖고 은밀하게 구상해 온 로드맵이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면서 공개 시점이 임박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동안 통합 논의 과정에서 조용한 행보를 보여 왔던 정 의장과 문 전 의장이 대규모 2차 탈당 움직임 등 범여권 빅뱅이 가시권에 접어들자 약속이나 한 듯 ‘질서 있는 대통합론’을 주창하며 통합 주도권 장악에 나서고 있다.
정 의장은 정대철 고문과 문학진 의원 등이 신당창당추진위를 결성키로 한 지난달 30일 열린우리당 107명 의원 전원에게 친전을 보내 “대통합의 윤곽은 지도부에 주어진 시간 내에 구체화될 것”이라며 “대통합의 가장 중요한 축인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으며 6월 14일을 기점으로 모든 대통합세력들이 새로운 정치의 장을 열 것”이라고 주장했다. 명분 없이 성급하게 탈당 대열에 합류하지 말라는 당부와 더불어 지도부가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으니 믿고 따라 달라는 강한 자신감이 묻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뿐만 아니라 범여권 일각에서는 정 의장과 당 지도부가 6·10 민주항쟁 20주년을 전후해 당내 초·재선 의원 20여 명을 기획 탈당시키고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당적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제3지대 대통합추진기구에 합류하는 방안을 물밑 추진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문건에 적시된 로드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문 전 의장도 정 의장 등 당 지도부와의 ‘교감’ 하에서 ‘질서 있는 대통합론’을 설파하고 있다. 문 전 의장은 31일 당 통합추진위 회의에서 자신의 탈당문제와 관련해 “어제 오늘 추가 탈당파의 수괴로 제가 거론되는 것 같다”며 “당이 뭐라든 탈당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정대철 고문 등 탈당파)을 질타하는 뜻에서 말씀드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당 지도부인 최고위원회가 의결해서 선도탈당해서라도 대통합에 대한 선언이나 창당 선언을 하라고 명령하면 발 벗고 나서겠다”고 말해 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줬다.
이처럼 중진그룹이 통합 주도권 장악에 나서면서 우리당 2차 핵분열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와 중진그룹이 문건에 적시된 로드맵대로 대통합신당을 추진하면서 세몰이를 본격화할 경우 범여권 빅뱅 기류는 급물살을 타게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도부와 중진그룹이 대통합 주도권을 쥐면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 등 당내 대권주자들도 통합 대열에 참여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탈당 쪽에 마음을 굳히고 있는 상황이지만 개별 탈당이 아닌 현 지도부가 주도하는 통합 기류에 편승할 경우 ‘탈당’이란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고 친노그룹과 자연스럽게 결별하는 모양새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진그룹이 대권주자들은 대통합 과정을 지켜본 뒤 마지막에 합류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나 손학규 전 지사나 문국현 사장도 대통합신당을 창당하고 경선룰을 기획한 다음 7월 말이나 8월 초쯤 합류 여부를 결정하도록 문건에 적시한 것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문건의 일정대로 범여권의 통합이 흘러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대철 고문이 주도하는 추가 탈당 움직임이 가장 큰 변수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대통합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집단 탈당할 경우 문건은 사실상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동영 김근태 두 전 의장의 향배야말로 열린우리당이 사실상 해체의 길을 걷느냐, 아니면 문건의 목표대로 ‘질서 있는 대통합’의 길로 가느냐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이 비록 미미하다고 해도 아직은 이들만 한 대선주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친노그룹의 선택도 변수다. 당초 친노그룹은 당 사수 입장을 천명해 왔으나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전 총리가 대통합론에 다소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한 이후 일단 지도부의 대통합 추진을 지켜보겠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이 전 총리는 지난달 29일 대통합론을 주장하고 있는 문희상 전 의장과 친노 중진인 유인태 의원과 만나 대통합론 등과 관련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친노그룹은 당 지도부 및 중진그룹이 추진하는 대통합 작업을 지켜보면서 우리당의 골격을 유지한 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한 대통합신당에 무게를 두고 협상을 벌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친노그룹의 합류 여부는 여전히 정파 간의 첨예한 논란거리다. 중진그룹이나 추가 탈당파가 당 해체를 전제로 할 경우 친노그룹은 소수로 남더라도 끝까지 우리당을 사수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결국 현재 범여권 통합은 시간과의 싸움이 돼가고 있는 형국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로드맵이 급물살을 타고 진행돼 추가탈당파의 탈당 시점 보다 앞설 경우 주도권은 지도부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6월 14일을 넘겨 일부라도 탈당할 경우에는 열린우리당의 해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만약 후자일 경우에는 범여권은 5~6개의 정파로 분열돼 대선 직전까지 치열한 주도권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